앰버 이야기
‘장맛비가 내리는 대낮의 단상(https://brunch.co.kr/@nadograe/160)’이 업로드 된 지도 벌써 한 달 넘게 지났다. 그 때만 해도 길어야 2주면 끝을 볼 것 같았는데. 지지부진 길어지는 장마는 어두운 하늘에 끈질기게 들러붙어 있다. 매일매일이 꼭… 더운 백열등으로 밝혀진 어항 속을 걷는 것 같다. ‘매일의 습도가 이 정도라면 우린 포유류가 아니라 양서류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도 해 본다.
흐린 날씨가 너무 오래 지속되면서 기분의 그래프는 오른쪽 아래를 향해 완만하게 기울어진다. 싫지 않은 흐린 날씨라도, 장마가 습한 입김과 함께 가져오는 것들까지 끌어안기는 어렵다.
시멘트 벽을 덮은 벽지가 우글거리고 덜 마른 빨래에서 물 비린내가 나면 그게 꼭 나 같다는 생각을 한다. 지겹고 구질구질한 면이 있는 게. 지나쳐온 사람들을 놓아주지 못하는 내가 그렇다. 과거의 어떤 괜찮았던 시간들을 붙잡고 늘어지는 나도 그렇다. 흐르는 시간과 함께 나아가려면 앞을 봐야 하는데 자꾸 뒤를 돌아보고 있는 눅눅한 내가 우습다.
지난 주의 어느 새벽에는 베개 없이 놓인 머릿속으로 유쾌하지 않은 기억과 기분들이 차올랐다. 가끔 이렇게 수많은 기억과 함께 자기연민과 혐오까지 물결처럼 밀려드는 날이 있다. 긴 장마처럼 새벽에 들러붙어 축축하게 질척이는 걸 두고는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네 시가 다 되어서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내가 나약해서 이런 시간들이 종종 찾아오는 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는 그게 나 혼자만의 잘못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오래된 것들이 현재를 물들이는 것만 해도, 내가 나를 동정하고 싫어하는 것만 해도 너무 싫은데 그게 전부 내 탓이라면 많이 슬플 것 같다. 그러니 그게 나 혼자만의 잘못은 아니었으면 한다.
사실은 내 것이란 걸 알지만 말이다.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은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란 걸 알면서도 그런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편해지니까. 원인이 밖에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깨끗해지는 것 같으니까. 그러니 침대에 깊게 누워 눈을 감아 보는 거다. 장마 같은 우울은 장마 때문에 온다고 핑계를 대 보는 거다.
- 앰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