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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Aug 28. 2020

요즘 읽은, 인상적인 책

하다 이야기 

편도 30분 남짓한 출, 퇴근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다. 앉아서도 읽고, 서서도 읽는데 놀랍게도 집에서 읽는 것보다 집중이 잘 된다. 일주일에 평균 한 권을 완독 하고, 밑줄 그은 부분을 인스타그램에 기록한다. 최근 석 달 동안 읽은 작품 중 인상적인 것을 소개하려 한다. 



1. 사람, 장소, 환대 – 김현경 [문학과지성사]

김현경 인류학자가 쓴 이 책은 이주에 걸쳐 읽었다. 어려운 문장은 아니나 모든 문장이 ‘사유’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한 줄 읽고 생각하고, 한 줄 읽고 생각하는 것을 반복해야 그나마 흐름을 좀 따라갈 수 있다. 책 제목 그대로 사람이, 장소가, 환대가 어떻게 얽혀있으며 우리 개개인이 그것과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또 사회와 집단은 어떻게 형성되는지 담겨있다. 인문학은 무의미하다 여겨지고, 혐오 범벅인 세상이지만, 그러니까 더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인상적인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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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는 점점 더 선진국의 부유한 시민들과 그들을 위해 허드렛일을 하러 온 이주노동자들의 관계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백인들과 원주민의 관계와 비슷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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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라는 범주에 언제나 붙어 다니는 더러움과 오염의 관념 -그에 따라 여성은 더러운 여성과 깨끗한 여성으로 나누어진다-을 우리는 이런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여성은 신발이나 밥그릇과 같은 방식으로 더러워지지 않는다. 즉 그 자체로는 더럽지 않지만 제자리에서 벗어나면 더럽다고 여겨지는 게 아니다. 가부장제도 하에서 여성은 사회 안에 어떤 적법한 자리도 가지고 있지 않다. 여성은 단지 스스로를 비가시화한다는 조건으로, 물리적인 의미에서 사회 안에 머무르는 것을 허락받고 있을 뿐이다. 여성이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면서 동등한 사람으로서 사회 안에 현상하려는 순간, 이 허락은 철회된다. 여성이 보이기 시작하자마자 사회는 여성이 잘못된 장소에 있다는 것, 정확히 말하면 잘못 인쇄된 글자처럼, 여성의 존재 자체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시 말하면 여성은 장소를 더럽히는 존재로서만 사회 안에 현상할 수 있다. ‘깨끗한’ 여성이란 보이지 않는 여성이다. 





2. 킨 – 옥타비아 버틀러 [비채]

SF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SF 소설, 영화 둘 다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이 책은 순식간에! 와라라라라락! 읽었다. 정말 와라라라라락! 

저자인 옥타비아 버틀러는 흑인이고, 여성이며, 가난했다. (지금은 고인이시므로.) 그런데 글을 썼고, ‘흑인 여성’이라는 소수자성을 담아 SF 소설을 썼고, 손꼽히는 상을 다 받았다. ‘드라마틱’한 인생이라 할 수 있을 삶을 산 옥타비아 버틀러는 ‘비관주의자, 흑인, 언제나 페미니스트’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글이 자신을 구원했다 말하고, 작가가 된 후에도 공장에서 일하며, 슈퍼마켓의 쓰레기통을 비웠다. 단 하나를 위해 그 외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오로지 하나만 보며 걷고 또 걷는 사람에게 광적으로 빨려 들어가는 나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옥타비아 버틀러가 이런 인물임을 알게 된 후 당연히 작품이 궁금해졌고, 그중 킨을 읽었다. ‘역시나’는 ‘역시나’였다. 

킨은 현대의 흑인 여성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타임슬립 소설이다. 지금은 비교적 인종차별이 사라졌다 할 수 있으나(그렇다고 세상이 완전히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과거는 아니다. 그러니 현대의 흑인 여성이 과거로 가면 인종차별을 겪을 수밖에 없고, ‘흑인 여성’이기에 생기는 문제들이 발생한다. 게다가 과거에서 만난 인물들이 주인공의 조상이라 갈등은 더 풍요롭다. 

책이 두껍긴 하지만, 가독성이 뛰어나니 꼭 읽어 보시길. 


인상적인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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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여자를 강간한다고 부끄러울 것은 없어도, 흑인 여자를 사랑한다면 부끄러울 수 있는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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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가끔 그의 사회가 합법적이고 적절하다고 말하는 괴물 같은 짓을 하는 평범한 남자일 뿐이었다. 

“이게 우리의 강이에요?” 조가 물었다. 

“아니, 이건 북동쪽에 있는 마일즈 강이야. 이 지도에 우리 강은 나오지 않아.”

“왜요?” 

“너무 작아서.”

“뭐가요?” 조는 루퍼스를 올려다보았다. “우리 강이요, 이 지도가요?” 

“둘 다 인 것 같구나.”





3. 가재가 노래하는 곳 – 델리아 오언스 [살림]

고전이 아닌 ‘요즘 소설’은 가볍고, 얕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출판사와 서점에서 ‘굉장히’ 거창하게 해 대는 홍보가 나의 편견을 더 견고하게 했다. 화려한 홍보 문구와 띠지에 적인 찬사를 보고 신간을 사면 95%는 실망을 한다. 이런 일들을 몇 번 겪은 후론 솔직히 ‘요즘 소설’을 구매하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마구 쏟아지는 감성+에세이류는 또 어떤가. 볼 때마다 종이 아깝다는 생각만 든다.) 

곳곳에서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홍보하길래 ‘그런 소설이구나’ 하고 말았다. 관심도 없었다.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서 ‘이 책 읽고 독립적인 여성이 되고 싶어 졌어요’ 이 후기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영영 잊혔을 것이다. 

가족들이 다 떠나고 습지에 홀로 남은 아이 카야는 자연과 어울리며 성장한다. 많은 것을 혼자 해내고, 혼자 익힌다. 주민들에게 차별받고, 사건에 휘말리고, 폭력도 당한다. 그럼에도 카야는 꾸준히 ‘자립’하고, ‘공부’한다. 카야가 생물들을 사랑하고, 아끼고, 관찰하며 기록한 것들이 하나의 결과물로 세상에 나왔을 때 덩달아 벅찼다. 인간은 홀로 존재할 수 없고, 유기체이지만, 그래서 나는 더욱 ‘홀로’ 서는 사람에게 끌린다. 인간이 아닌 동식물과 긴밀한 사람에게 동경심이 있다. 마치 카야 같은. 


인상적인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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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기척을 기다리지 않는 건 해방이었다. 그리고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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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을 아는 이가 있다면 달뿐이었다. 

예측 가능한 올챙이들의 순환고리와 반딧불이의 춤 속으로 돌아온 카야는 언어가 없는 야생의 세계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한창 냇물을 건너는데 발 밑에서 허망하게 쑥 빠져버리는 징검돌처럼 누구도 못 믿을 세상에서 자연만큼은 한결같았다. 


이외에도 이승우의 ‘생의 이면’, 실비아 플라스의 ‘벨 자’를 인상 깊게 읽었다. 다독하지는 않지만, ‘소름 돋게 매혹적인 작품을 만났을 때의 느낌’을 좋아해서 그런 소설을 찾기 위해 계속 읽으려 하는 편이다. 

다음엔 무슨 작품을 읽을까. 


   nadograe.com/stor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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