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 이야기
생리량이 줄고 있다. 초경을 한 12살 무렵부터 20대 아니, 30대 초반까지 생리량이 많았다. 생리대로는 수습이 어려워 탐폰을 썼는데 평균 2시간마다 교체해야 했다. 몸에서 무언가가 이렇게 많이 나온다는 게 신기했다. 그 ‘무언가’가 혈이어서 더 놀라웠다. 그런데 그 어마 무시한 게 줄다니. 나만 그런가 싶어 친구에게 물었다. ‘맞아, 생리량 줄더라. 그런데 기운은 더 오랫동안 없어. 나이 탓인가?’ 이런 답이 돌아왔다.
그랬다. 보통 생리 전과 생리 첫째~둘째 날까지 아팠다. 강한 생리통을 사흘 정도 앓고 나면 ‘통증’이 멈췄다. 이제 생리는 대략 둘째 날까지 펑펑, 그 후론 찔끔찔끔. 생리통 및 무기력은 생리 전부터 생리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쭉.
최근에 발표된 노화 연구 결과에 따르면 34세, 60세, 78세에 노화가 촉진된다고 한다(만 나이로 추정된다). 꾸준히 늙어가는 게 아니라 총 세 시점에(34세, 60세, 78세) 급속도로 늙는다고 한다. 나는 만 34세이니 지금 ‘급속도로’ 늙고 있다. 그래서 생리량도 줄어든 걸까? 나이에 따라 생리량이 점점 줄고, 완경을 맞이한다니 뭐, 노화에 따른 현상이라 봐도 무관하겠지?
‘늙음’, ‘노화’, ‘완경’. 이 단어들을 떠올렸을 때 드는 감정은 딱히 없다. 자연스러운 거니까. 당연한 거니까. 그런데 자꾸만 ‘늙어서 내가 나를 혼자 건사할 수 없다’는 문장이 나를 짓누른다.
방송작가를 그만두고 대필 등의 일을 하다가 ‘직장’을 가지려 구직활동을 했다. 그때 만난 다수의 면접관의 ‘나이에 비해 경력이 적네요?’ 따지듯 물었다. 그렇겠지. 26살에 방송작가가 돼서 7년 가까이 그 일만 했으니 ‘당연히’ 다른 경력은 없겠지. 그런데 그게 왜? 뭐? ‘손가락에 반지 끼셨는데 결혼반지인가요, 커플링인가요?’ 이런 질문도 꼭 했다. ‘그런 거 미리 말씀해주시는 게 예의예요’ 덧붙이면서. 결혼과 임신은 면접관이랑 할 얘기가 아니라 내가 나 자신과 하고, 후에 짝꿍과 공유해야 하는 사안인데? 취업 목적으로 오늘 처음 만난 사람과 나눌 얘기는 아니지 않나?
면접을 서른 번 가까이 봤는데 면접관 한둘 빼고는 다 저런 질문을 했다. 말이 좋아 질문이지… 거의 혼났다. 너는 왜 그 나이 먹도록 한 직업만 가졌니? 게다가 그 나이 먹고 취직을 하겠다고? 결혼을 언제 하는데? 아이도 낳을 거야? 그런 계획이 있는데도 취직을 하겠다고? 널 뽑으면 회사가 손해 보는데?
그때 35살이었다. 많은 나이인가? 100세 시대가 도래했다, 그 이상까지도 살 수 있다고들 하는데 35살이 많나? 결혼과 임신 계획이 있는 사람은 취직하면 안 되나? 그럼 35살 먹은(그 이상 나이 든), 결혼과 임신, 출산 계획이 있는 사람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일을 하지 않다가 결혼, 임신, 출산, 육아 후 처음 취직하려는 무경력자는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사람들도 그 나이 먹도록 왜 경력을 쌓지 않았냐 혼낼 건가? 임신, 출산, 육아는 경력이 아닌가? 어머니는 위대하다면서 어머니가 한 그 중요한 일을 왜 경력으로 삼지 않지?
말로만 듣던 얘기, 칼럼에서만 읽었던 현실을 마주하니 ‘나이 듦’이 두려워졌다. 정확하게는 ‘나이 들어서 내가 나를 건사하기 힘들어짐’이 두려워졌다. 단순히 노화 때문에 기력이 없어서 내가 나를 돌보기 힘들어지는 게 아니라 세상이, 사회가 배제해서 내가 나를 돌보기 힘들어지는 상황을 마주하게 될까 두려워졌다.
아프고, 불편하고, 돈 많이 드는 생리가 완경이 된다면? 좋다! 그런데 ‘완경이 됐다 → 늙었다 → 늙어서 취직이 어렵다, 내가 원하는 직업을 갖기 힘들다, 내가 돈을 벌어서 독립적인 한 사람으로 살기가 힘들다’ 이렇게 연결이 되면 이건 다른 차원의 막막함이다.
요즘 계속 이렇게 ‘나이 듦’과 ‘독립적인 인간’을 생각한다. 더불어 오래 나를 보살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가능과 불가능을 오가며 천착한다. 시간은 계속 흐르니까. 이 순간에도 나의 노화는 진행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