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 이야기
가만히 있어도 척추가 뜨끈하다. 몽글몽글 맺힌 땀이 주르륵 흐른다. 옷을 벗어도, 입어도 덥다. 에어컨이 있는 곳만 찾아다닌다. 발이 신발 밖으로 미끄러진다. 자고 일어나면 이불에 땀이 흥건하다. 그게 나의 여름이다.
여름만이라도, 단 석 달만이라도 생리대와 헤어지고 싶었다. 더위를 많이 타는데 거기에 척척한 생리대까지 더하면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는 것과 같으니까. 먼저 피임약을 떠올렸다. 조금이라도 미룰 계획을 세웠다. 헌데 ‘피임’이라는 단어가 무서웠다. ‘약’까지 붙으니 더 두려웠다. 다른 방안을 찾았다. 생리컵? 피임약만큼이나 자신이 없었다. 그 무렵 생각한 게 탐폰이었다.
커뮤니티에서 탐폰 후기를 읽었다. 생리대보다 훨씬 쾌적하고, 굴 낳는 느낌도 덜하며 움직임이 자유롭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간혹 쓰던 탐폰을 버리고, 다시 생리대를 쓴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 마저도 여름엔 탐폰이 낫다고 했다. 그래, 탐폰이 아무리 두렵고, 걱정되고, 망설여진다 한들 여름과 생리대의 컬래버레이션보다는 덜 치명적이겠지. 탐폰을 써 보기로 했다.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어떤 탐폰을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남아있었다.
한국 브랜드 탐폰, 외국 브랜드 탐폰, 어플리케이터 유무, 플라스틱 어플리케이터, 카드보드 어플리케이터. 여름을 함께 보낼 탐폰을 정하는 것은 어느 생리대를 쓸 것인지 따져보는 것만큼이나 복잡하고, 험난했다. 탐폰과 초면이니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걸 구입했다. 외국 브랜드라 구매대행을 한 뒤 한참 기다렸다. 그 사이에 사용법을 익혔다. 친절한 가이드 영상 몇 편을 보고 또 봤다. ‘참 쉽죠~?’ 라는데 상상에선 쉬웠다가 어려웠다가 다시 쉬워졌다가 어려워졌다. 주인공을 만나기 전까지 계속 반복됐다.
도착한 탐폰을 뜯어 관찰했다. 길게 이어진 실에 거부감이 들었으나 그게 없으면 큰일나니 친하게 지내자~ 친하게 지내보자~ 하면서 화장실로 갔다. 여러 편의 영상을 보고 연구한 것을 실행했다. 편하다는데 편하지 않았다. 이물감도 없다는데 존재감이 너무 확실했다. 아뿔싸. 어플리케이터 윗부분이 남아있었다. 다시 도전했다. 이번엔 성공. 아, 이런 기분이구나. 생리 중인데 생리 중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이것이구나. 누웠다가 앉아도, 앉았다가 일어서도, 몇 시간 지나도 여전히 쾌적하구나. 그렇게 탐폰에 매료됐다.
주변에 탐폰을 홍보했다. 혼자만 알고 있기엔 너무 아까웠다. 모두 생리대에서 해방되길 바랐다. 그런데 다들 머뭇거렸다.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렇다저렇다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아는 ‘그 두려움’ 말이다. 편한데, 정말 편한데. 게다가 쾌적한데, 무척 쾌적한데. 그럼에도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이건 가보지 않은 길로 가거나 새로운 헤어스타일을 시도하는 것과는 다르다. 몸이 예민한 생리기간에 몸속에 무언가를 넣고, 그것에 의존해야 한다. 몸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리고 넣고, 빼는 것 자체가 망설여진다. 그래, 그걸 모르는 바 아니지. 생리대 파동 이후에도, 그것보다 낫다고 일컬어지는 대안이 있다해도 다수가 생리대를 사용하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니까.
그 여름이 지났지만, 여전히 탐폰을 사용한다.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탐폰을 잘못 넣으면 어쩌나, 빠지지 않으면 어쩌나, 탐폰에 독성물질이 있으면 어쩌나, 생리량이 많아서 탐폰이 감당하지 못하면 어쩌나 탐폰을 착용하는 동안 끊임없이 걱정하니까. 그래서 탐폰과 생리대를 함께 쓴다. 물론 탐폰 없이 생리대만 착용할 때보다는 낫다. 다만, 완벽한 해방은 여전히 멀었음을 더 깊게 알게 됐을 뿐.
-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