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 이야기
18살 여름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친구들과 여행을 가기로 했다. 목적지는 한 아이의 본가인 목포였다. 세 끼를 먹고, 하룻밤 자고, 영화 한 편 보는 게 전부인 소소한 여행이지만, 계획하는 내내 즐거웠다. 아무거나 먹고, 아무렇게 자고, 아무 데나 가고, 아무 영화나 보겠지만, ‘친구들과의 여행’ 자체가 주는 행복이 매 순간을 물들였다. 그런데 떠나는 날 문제가 생겼다. 생리가 찾아온 것이다.
초경을 한 12살부터 6년이 지났고, 초경을 한 초등학생에서 고등학생이 되었지만, 여전히 생리가 버겁고, 낯설었다. 그래서 여행을 계획할 때 ‘생리’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 실수(?)가 날 당황케 했다. 생리는 자신을 염두 하지 않은 벌을 이렇게 주었다.
“나… 생리 시작했어…”
“어떡해…”
친구들은 함께 슬퍼했고, 여행 내내 날 돌봤다. 그게 고맙고 또 미안해서 아프지 않은 척, 피곤하지 않은 척했다. 도착해서 밥을 먹고, 친구의 본가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밥을 먹고, 영화를 본 후 돌아왔다. 그런데 어디에 갔는지, 뭘 먹었는지, 어떤 영화를 봤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나이를 먹은 탓… 일 수도 있으나 아무튼 기억이 나지 않는다. 머릿속에는 온통 ‘피가 샐지 모르니까 조금만 움직이자, 앉아서 자자, 피가 샜을 때의 대처방안을 미리 마련하자’ 이런 의지와 다짐이 가득했으니까.
생리하면 에너지 중 90%를 생리에 쓰고, 나머지 10%로 일과 생활을 버틴다. 생리 쏟아내는 데, 그걸 처리하는 데, 비어가는 기운주머니를 계속 채우는 데, 아픈 걸 견디는 데 등으로 에너지 90%가 콸콸 빠져나가면 그 외의 것은 다 흐려진다. 한번은 짝꿍이랑 찜닭을 먹으러 안동에 갔는데 돌아오는 길에 생리통으로 앓은 건 기억하지만, 찜닭 맛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때 생각했다, 내 머릿속의 ‘지우개’는 어쩌면 ‘생리’일지도 모른다고.
어릴 땐 그냥 생리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한 달에 한 번, 평균 일주일 동안 생리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주 작은 여드름을 짰더니 엄청난 고름이 팡팡 터지는 것과 비슷하다? 가녀린 잔디인 줄 알고 뽑았더니 굵직한 뿌리가 끝도없이 이어진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가려졌던 우람한 실체가 있다? 단순하게 ‘생리는 일주일만 견디면 되는 것’이라고 판단했는데 하면 할수록 다양한 방식으로 날 놀라게 하고, 온갖 변수까지 만들어내는 걸 보니… 생리, 너 참! 허, 참!
됐고, 내 추억 그만 가져가라. 추억 곱씹는 재미가 꿀인데 그걸 가져가면 어떡하냐!
-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