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유죄라고 생각해?

하다 이야기

by 오늘

흑백화면에 흑백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한 소년의 유무죄를 놓고 의견을 나누는 배심원이다. 총 12명 중 11명이 ‘유죄’라 단언하고, 단 한 명만이 ‘무죄’라 주장한다. 96분의 러닝 타임 대부분이 이들의 입씨름으로 흘러간다. 엔도르핀이 샘솟는 유머도, 엉덩이를 들썩이게 하는 촬영기법도, 내가 좋아하는 스릴러+살인사건+사회고발도 없다. 그런데 인생영화 중 하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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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거창한 철학이나 대단한 통찰력, 완벽한 증거로 유무죄를 판단할까?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질문이 떠올랐다. 11명의 배심원이 편견, 선입견 그리고 자신의 상황을 대입해 유죄라 외치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칼로 찔러서 여기까지 오게 된 소년’에 관한 것보다는 사건 외적인, 사사로운, 주관적인 사고에 의해서 말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반에서 도난사고가 벌어졌다.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모두 눈을 감고, 누군가의 자백을 기다리는 과정을 거쳤다. 우리는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다. 그런데 나를 흔든 건 아이들의 반응이었다. ‘누구네 집이 가난하니까 걔가 그랬을 거야, 누구는 아빠가 없으니까 물건을 훔칠 수 있어’ 이런 결의 말들이 교실 곳곳에서 피어났다. 11살 아이들의 언행이지만, 이걸 어디에서 학습했을까?


무죄를 주장하는 한 배심원이 유죄를 주장하는 쪽과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나눈 끝에 모두 ‘무죄’로 의견을 모은다. 그 과정에서 각자의 편견이 드러난다. 한데 그 와중에도 자신의 편견을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 그 편견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 역시 수많은 편견을 가졌다. 이래서 이렇고 저러니까 당연히 저럴 것이라 판단하고, 한쪽만 들여다보는 지긋지긋함을 반복하고, 자가당착에 빠진다. 그걸 옳다고 믿는, 쓸 데 없이 굳은 신념도 있다. 그런 습성은 나이를 먹을수록 힘이 세진다, 어리석게도.

영화 속 한 대사를 떠올리며 뇌에 힘을 준다. 더불어 편견의 노예가 되지 않겠다고 ‘또’ 다짐한다.


‘이럴 때 개인적 편견이 드러나기 마련이죠. 언제나 편견이 진실을 가립니다. 나도 진실이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아무도 모를 겁니다. 9명은 피고가 무죄라고 느끼는데 이것도 확률의 도박이고, 틀릴 수도 있죠. 어쩌면 죄인을 풀어주게 될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의심할 만한 근거가 있다면 유죄선고를 내릴 수가 없죠. 그게 우리 법체계의 우수한 점이고요. 세 분은 어떻게 그렇게 유죄를 확신하는지 이해가 안 가네요.’


-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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