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 이야기
다디단 토요일이었다. 요란한 알람도, 산소 부족 만원 지하철도 없는 토요일이었다. 침대와 나 단 둘이 온기를 나누는 토요일이었다. 그런데 잠이 덕지덕지 붙은 눈꺼풀이 번쩍 올라가고, 천근만근 몸이 벌떡 일어났다. 왜 항상 슬픈 예감은 딱 들어맞는 건지... 이불에 빨간 동그라미가 생겼고, 속옷은 피가 점령했다. 방심한 사이에 완벽한 패배감을 강제로 맛봤다.
이렇게 갑자기 생리가 시작하고, 많은 양이 쏟아질 때가 있다. 해변에 서있는데 바닷물이 발목을 지나 종아리까지 스멀스멀 적시는 느낌. 아니, 방석에 앉아있다가 엄청난 양의 물을 쏟았는데 삽시간에 겉옷과 속옷까지 쫙 퍼지는 느낌. 딱 그 느낌이다. 게으르고, 느리고, 둔한 나의 감각도 그 순간을 감지하면 갑자기 매우 무척 엄청 많이 쌩쌩해진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밥보다는 잠, 외출보다는 집과 가까운 사람이다. 모든 생활을 침대에서 해야 마음이 놓이고, 누워 있어도 더 눕고 싶어 한다. 한 번 자기 시작하면 낮이 밤이 되는 것도, 밤이 아침이 되는 것도 모른다. 본능이 ‘지금 화장실에 가지 않으면 이불에 지도를 그릴지도 몰라!’ 가열하게 알람을 울려도 침대랑 더 붙어 있는다. 참고 참고 또 참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 비로소 어기적어기적 화장실로 간다. 가끔은 친구에게 ‘나 지금 화장실 너무 가고 싶어. 네가 대신 가줘.’ 부탁도 한다.
동물이었다면 으슥한 곳에 땅굴 파고 들어가서 식물 뿌리를 야금야금 씹어 먹고, 밖으론 조금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나오는 즉시 천적에게 잡힐 게 뻔하니까. 아무리 배가 고프고, 식물 뿌리가 질려도 계속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밖에 나가서 먹을 것을 구하는 것조차 귀찮으니까. 이런 자타공인 우주 최강 게으름뱅이가 벌떡 일어나게 하다니. 생리의 위력은 신비롭고도 놀라우며 정이 안 간다.
나갈 일이 없을 땐 잘 씻지도 않는데 생리 덕에 샤워를 했다. 속옷과 이불의 핏물을 빼고, 빨래도 했다. 그러다 보니 먼지가 눈에 띄고, 정리 안 된 책이 거슬려서 얼결에 대청소까지 했다. 생리 첫날이라 생리통이 이만저만 아닌데 일단 시작했으니 끝을 보고 싶어서 진통제를 먹어가며 쓸고, 닦고, 정리했다. 그러는 사이 찾아온 달빛을 등지고 앉았다. 통증과 진통제, 청소로 남루해진 몸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도 나의 꿀잠을 깨운, 생리가 스르륵 퍼지는 느낌이 선명했다. 이건 정말 겪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겨울잠 자던 곰도 벌떡 일어나게 할 치명적이고도 불쾌하면서 아찔하고, 잔인한 느낌이다.
제발 부탁인데 저리 가.
-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