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언제쯤 그치려나

하다 이야기

by 오늘

대학교에서 만난 한 동생이 있다. 정신분석학자가 되는 게 인생의 가장 큰, 유일한 목표라 했다. 어쩌다 그 동생과 1년여 동안 함께 살았고, 매일 새벽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하루는 ‘사랑의 이유’가 화두였다. 동생은 그동안 공부한 것과 정신분석학자들의 주장을 꺼내며 사랑의 이유를 ‘그렇기 때문’이라 얘기했다. 갖가지 고난과 역경 그리고 반대를 딛고 맺어지는 서사에 빠지는 나는 ‘그럼에도’라고 강조했다. 두 의견은 대척점에서 출발해 교차점을 지나 다시 대척점에서 멈췄다. 그러면서 우리는 ‘사랑’보다 ‘이유’에 몰두했다. ‘사랑하다’라는 동사보다는 그 동사를 행하게 한 ‘이유’가 언제나 더 매력적이니까.


윤희에게03.jpg


이토록 ‘이유’에 흥미를 느끼는 터라 영화, 드라마, 소설, 노랫말을 접할 때도 그 안의 서사를 이루는 ‘이유’를 찾는 데 집중한다. 그런데 영화 ‘윤희에게’에는 그 이유가 없다. 두 주인공이 서로 사랑하는 ‘이유’가 극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단지 ‘서로를 사랑했던 두 사람이 오랫동안 연락 한 번 하지 않은 채 떨어져 지내다가 문득, 다시 닿았다’를 보여줄 뿐이다. 그 후에 어떻게 됐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계속 연락을 하는지, 종종 만나는지, 다시 둘이 ‘우리’가 되었는지는 영화를 본 사람들 각자의 머릿속에만 존재한다.


눈이 화면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장면이 많고, 그 외는 대부분 회색처럼 보인다. 알록달록한 의상이나 물건, 장소가 등장하지만 흰색, 검은색 그리고 회색으로 보인다. 그래서 더 눈이 도드라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소리를 삼키고, 모든 것을 덮는 눈. 왜 감독은 그런 눈을 배경으로 정했을까.


두 주인공은 여자다. 이 영화는 퀴어영화다. 김희애 배우가 맡은 역할의 대사 중 하나로 짐작하자면 둘은 사랑했고, 헤어졌다. 그 이별은 외부의 반대 때문이다. 둘은 오랫동안 떨어져 각자의 삶을 산다. 서로를 향한 그리움은 마음에 눈처럼 쌓였을 것이다. 겉으론 드러나지 않으니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해서 없는 것은 아니다. 눈으로 덮였다 해서 영영 묻히진 않는다. 눈이 녹으면 언젠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마음속 그리움이 녹아 물이 되고, 눈물이 되어 밖으로 나올지도 모른다. 표면적으론 눈에 덮여 ‘잊은 것처럼 보이는, 아무것도 아닌 관계’도 눈이 녹으면 다시 처음과 같은 의미를 내보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눈으로 덮여 눈처럼 보이나 사실은 눈이 아닌, 눈이 녹으면 다시 나타날 무언가를 얘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영화를 보는 내내 짝꿍에게 말하고 싶었다, 네가 보고 싶어.


- 하다




nadograe.com/storiG






제작/영화사 달리기

배급/리틀빅픽처스

출처/다음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