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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나의 것인가

생성형 AI 저작권에 대해 생각하다

by 소소 쌤

나는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급히 메모해 두는 편이다. 과거에는 메모지에, 지금은 카카오톡 ‘나에게’ 채팅창에. ‘이 소재로 글을 써야지!’라고 생각하며 적는 순간에 나는 다급하다. ‘이 생각으로 다른 이가 먼저 쓰면 어쩌지?’라는 이상한 조급함이 있다. 그 생각을 공유하면 누가 훔쳐갈까 봐 꽁꽁 숨겨두기도 한다. 다시 생각해 보면 그다지 놀랍지도 않은 생각을 나만의 것으로 소유하고 인정받고 싶었다. 때때로 어떤 창작물을 볼 때, ‘나도 똑같이 생각한 적 있었는데’ 라며 조각으로 흩어져 있을 뿐, 창작물이 되지 못한 내 생각들을 떠올린다. 그러면 그 작가에게 질투가 담긴 박수를 보내게 된다. 그 작가가 얼마나 고민하며 한 문장, 한 문장을 썼을지, 오랜 시간 동안 자신 안의 사투를 벌였을지 생각하면 절로 박수가 나오는 것이다. 어떤 작가는 자신이 책에 쓴 모든 문장을 기억한다고 했다. 단어 하나, 조사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은 결과물이라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그들의 시간, 고민, 땀은 가치를 인정받아 누군가 함부로 다루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노고가 보호받아야 마땅하고, 우리는 그것을 ‘저작권’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호하고 있다.



최근 지역 평생교육센터에서 진행하는 ‘AI를 활용한 동화책 E-BOOK 제작’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태어날 아기에게 들려줄 동화, 자전적 이야기를 녹여낸 동화 등 수강생들은 각자 쓰고 싶은 주제가 있었다. 첫 시간부터 챗 GPT를 열어 질문을 던졌다. 아직 나는 주제를 정하지 못했기에 시험 삼아 질문을 던져보았다.


‘주인공 3명,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가자는 주제로, 판타지 장르로, 동화 글을 작성해 줘’


‘물론이죠! 아래는 주인공 3명이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주제로 한 판타지 동화입니다.

어린이도 이해할 수 있도록 따뜻하고 상상력 가득한 톤으로 썼어요.’


기대는 크게 없었다. 그러나 5초가 걸렸다. 새로운 동화 한 편이 완성되기까지는. ‘무지개 숲의 세 친구’ 똑똑하고 냉정한 성격의 말하는 고양이와 말이 느리고 생각이 깊은 거북이, 활발하고 순수한 날개 달린 토끼, 이 세 친구가 시들어가는 무지개 숲의 색을 되살리는 이야기.


사람이었다면 좀 재수 없다고 느낄만큼 자신만만하게 AI가 답했다. 나는 감탄했다. 첫 번째는 그 속도에 감탄했고, 다음으로는 그 내용의 창의성이나 완결성에 감탄했다. 이 내용으로 그림책을 만들거나 오디오 변환도 가능하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이는 걸 보며, 이 AI의 확장성에도 감탄했다.



‘현대, 한국의 도시, 중학교 교실에서 벌어지는 청소년 소설’로 바꾸어 달라고 말하면 지후, 소은, 민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투명해지는 아이’라는 소설이 또 5초 만에 뚝딱 만들어진다. ‘서로를 진짜로 볼 때, 우리는 사라지지 않아.’라는 명언을 남기며.


평생교육원의 강사님은 이미 다 끝났다고, 동화를 이렇게 쉽게 만들 수 있다며 신이 난 목소리로 수강생들의 사기를 올려주었다. 그러나 나는, 작가를 꿈꾸는 나는, 그 속도에 기분이 상한다. 왜 이렇게 쉽게 글을 완성해 버리는지. 사고라는 과정을 거치지도 않았으면서 마치 사고한 것처럼 결과물을 내놓는지. 그러면서 이런 건 아무것도 아냐, 식으로 말하는지. 아주 쓸데없이 AI를 깎아내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두 번째 시간이었다. 최근 히말라야의 셰르파의 삶의 모습을 인상 깊게 본 후 이 소재로 동화를 만들어달라고 말했다. 주인공 이름도, 셰르파의 문화 반영도, 주제 의식도 훌륭한 그림책 한 권의 스토리가 완성되었다. 이 글로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지난주 짜증과는 다른 묘한 죄책감이 느껴졌다. AI가 만들어준 글을 나는 내 글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질문했고, 내가 수정했으며, 내가 선택하고 삭제했으니, 이것은 나의 것인가? 보호해 달라고, 내 저작물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반대로 내 질문에 의해, 내 편집에 의해 완성된 동화를 다른 누군가가 마음대로 쓴다면 그건 괜찮을까?



AI의 저작물 관련된 논의는 크게 3가지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1) AI가 저작물을 학습 데이터로 사용하는 것은 저작권 침해가 아닌가?

(2) AI가 생성한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을 인정할 수 있는가?

(3) 그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은 누구의 것인가?


나는 이 질문 또한 챗 GPT에게 던졌다. ‘AI 저작권에 대해 지금까지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진 것이 있는지 얘기해 줘. 한국의 정책 또는 다른 나라의 정책도 설명해 줘’ 그러면 똑똑한 챗 GPT는 논의 3가지를 정리하고 그에 따른 국내외의 논의를 정리한 후, 결론을 내려준다.


나는 그저 읽고 이해하면 된다. 참 편해진 세상이다. 두 번째 논의가 나의 최대 관심사인데, GPT 씨에 따르면 지금까지는 AI가 저작자가 될 수 없고, 저작물은 인간의 창작만을 전제로 하며, 일본에서는 인간의 선택, 편집, 배치하는 방식에 따라 창작성을 기여했다면 일부 저작권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본다고 한다.


인간의 기여도에 따른 AI 활용 창작물의 저작권 귀속. 그 기여도라 함은 어떻게 판단될 수 있을까? 최근 웹툰 또는 웹소설 작가가 생성형 AI를 활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논란과 관련하여 해당 작가가 해명을 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사회의 변화, 새로운 기술의 등장, 그것이 창작자에 미치는 이러한 변화 또는 영향은 앞으로 더 광범위해질 것이다. 우리는 논의가 필요한 중요한 시점 앞에 서 있다는 게 새삼 실감이 났다.


나는 글을 하나 쓸 때, 오랜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MBTI 계획형(J) 성향인 것과는 다르게 글을 쓸 때는 그 글 주제와 관련된 것들을 새가 새집을 짓기 위해 나뭇가지 모아 오듯 한 곳에 무질서하게 모아 둔 후 다시 재배치하며 수정한다. 그런 과정이 마치 잘린 천들을 기워 옷을 만드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나가 만들어지면 나는 그것이 나로부터 나온, 나의 창작물로 뿌듯함을 느낀다. 그럼 나는 그것이 보호받기를 바란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에게서 나온 나의 창작물은 과연 온전한 나의 것인가. 나를 둘러싼 환경, 나를 둘러싼 사람들, 나를 학습시킨 수많은 창작물들로부터 온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것이 보호받길 원하고, 보호해야 하는 이유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거기에서 AI 창작물의 저작권에 대한 내 나름의 답을 조금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새로운 시대임을 안다. 그러나 나는 ‘저작권’으로 보호받아야 할 창작물의 가치 안에는 창작자의 노고와 시간이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고루한 생각 같기는 하지만 5초 만에 뚝딱 완성된 소설, 5초 만에 뚝딱 완성되는 음악은 내게 ‘진짜’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창작을 향한 노고가 좋은 창작물의 절대 필요조건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노고의 가치를 보호하는 것이 ‘저작권’이라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AI 동화를 쓰면서도 시간을 들이고, 나라는 사람의 생각을 넣고, 수정을 통해 완성도를 높이며 나 혼자 오롯이 쓰지 않은 반쪽짜리 나의 동화가 ‘나의 동화’라고 말하기 위한 최소한의 애를 쓰고 있다. 죄책감이 여전한 건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아마도 우리 사회는 한동안 이런 기묘한 감정을 느끼며 좋은 방안을 찾아가지 않을까.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창작을 향한 누군가의 시간과 노고, 그 가치만은 잊지 않길 바라며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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