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지도가 왜 교사를 무너지게 하는가
지난 5월은 교직 생활에서 최악의 한 달이었다. 퇴근 후 눈물을 흘리던 그 시기를 무사히 지나 한 학기가 마무리됐다. 왜 그렇게 힘들었나 돌이켜 보다 깨달았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면서 아이들 앞에 서는 것이 두려웠다.
보통 학교에서 5월은 사건 사고가 많은 편이긴 하다. 아이들이 적응을 끝낸 시기이기도 하고, 체육 대회 같이 단합을 해야만 하는 행사들이 줄줄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반에는 학기 초부터 지속되던 문제의 불씨가 타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몇몇 남자 아이들의 도를 지나친 장난과 한 여자 아이와의 사이에서 나타나는 갈등.
첫 번째 문제에 불이 붙자, 한 아이에 대한 고발을 들어왔다. 고발의 내용은 심각했다. 그 아이가 하는 말, 행동들은 이미 교칙 위반 혹은 학폭으로 삼을만한 것들이었다. 똑같이 선을 넘을랑 말랑 심한 장난을 하던 남자아이들은, 자신들은 반성했지만 그 아이는 반성 없이 계속한다며 고발했다. 본인들도 하던, 혹은 하고 있는 말과 행동들이었다. 아이들이 원하는 조치를 듣고,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학부모와 소통하고, 화해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기회를 주고 지켜보자 말하며 한동안 불을 끄겠다고 동분서주했다. 폭력은 장난이 될 수 없다고, 신체적으로나 언어적으로 조심하라고 끊임없이 지도하지만 그 순간 뿐, 지나고 나면 똑같은 일이 반복됐다. 불은 꺼지지 않았다.
두 번째 문제는 한 여자 아이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 아이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해야 하고, 곧잘 자신이 공격받는다고 생각하며 짜증을 내는 아이였다. 거의 매일 나에게 찾아와 어떤 아이가 자신에게 무슨 말과 행동을 했는지 말하고, 울기도 했다. 이 아이의 행동은 분명 다른 아이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점이 있었다. 그것을 견디고 그냥 넘기는 아이도 있었지만, 그 아이의 잘못을 지적하고 부딪혀 싸워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 여자 아이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려고 노력한다고 했지만 행동은 반복됐다. 아이들의 피로도가 높아지고 있었고,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다툼은 발생했다. 불이 잠잠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다시 타올랐다.
어느 날, 하루에 세 가지 사건이 한 번에 발생했다. 불이 활활 타올랐다.
수업도 많은 날이라 오전 내내 정신이 없었고 수행평가까지 하는 기간이라 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약간의 긴장을 하던 시기였다. 그때, 한 아이가 교무실에 뛰어 들어와 말했다.
“쌤, 애들 싸워요!”
여중 여고에서는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이 말을 나는 한 학기 내내 몇 번을 듣고 있는가. 달려가보니, 남자 아이들 몇몇이 놀다가 장난이 거칠어지면서 한 아이가 울음을 터트린 모양이었다. 툭 치고, 거칠게 어깨동무를 하고, 목을 조르고, 뛰어내리며 노는 이 아이들을 나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게 그저 남자 애들의 특성이라고 이해하기엔 위험하고 잘못된 일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점심시간에 우리 반 남자아이들 여럿이 후다닥 복도를 뛰어갔다. 한 선생님께서 그 아이들에게 밥을 먹으러 가라고 지도를 하는데 대꾸 없이 도망을 갔다고 말씀하셨다. 밥을 먹지 않은 것보다 선생님의 지도를 무시하는 아이들의 장난스러운 태도가 당황스러웠다. 아이들을 찾으러 교실에 들어가니 태블릿 충전함 뒤에서 키득거리며 숨어있었다. 그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 아이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며 저 뒤에 숨어 있는 것일까, 이 모든 과정이 장난으로 여겨지는 것일까.
최대한 화를 억누르고 말했다. 밥맛이 없어도 밥을 먹어야 한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데 도망가는 행동은 예의가 없는 행동이라고, 숨어버리는 장난스러운 행동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가 아니라고.
다시 교무실로 돌아왔을 때 점심시간은 끝났고 결국 점심을 먹지 못했다. 그리고 자리에 앉자마자 한 선생님이 다가와 말했다.
“쌤 반 아이에 대한 욕설이 여자 화장실 첫 번째 칸에 적혀 있어서 내가 지우려고 했는데 잘 안 지워지네.”
그 아이는 아까 얘기한 우리 반의 두 번째 불씨, 그 여자 아이다. 바로 화장실로 달려갔고 사진을 찍었다. 다른 아이들이 볼까 봐 얼른 아세톤으로 화장실 벽에 낙서를 지웠다.
‘오늘, 아이들이 날을 잡았구나.’
매일 이런 것은 아니다. 이 날이 유독 사건 사고가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 그러나 학급 안에 반복되고 내재된 문제들은 언제 어떻게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게 계속 툭툭 불거져 나를 불안하게 했다. 불은 꺼지지 않고 불씨를 계속 안고 있었다. 아이들은 똑같은 행동을 반복했고 해결 방안이 보이지 않았다. 3월부터 쌓여온 피로감이 폭발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힘든 것은 화장실 낙서의 범인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어리기 때문에 화가 난 것을 잘못 표출한 걸 거야'라고 생각하며 자백하기를 권했다. 아이들의 눈빛은 순진무구 또는 무관심했고, 그 사건은 전체를 지도하는 차원에서 정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 화장실에는 동일한 틴트로 동일한 상대를 향한 저급한 욕이 두 번이 더 적혔다. 세 번이 되자,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CCTV를 한 번, 두 번, 세 번 돌려보고, 학교 전체 아이들에게 마지막 자백 기회임을 끊임없이 알리고, 목격자를 찾고, 반 아이들 전체의 진술서를 받고, 립스틱 색깔을 확인하고, 필체까지 대조하면서, 내가 교사인지 수사반장인지 알 수 없는 이 상황에서, 나는 끊임없이 자괴감에 빠졌다.
아이들을 의심하기 시작하자, 나를 포함한 모두가 미워졌다. 아무 잘못이 없었을 아이들까지 의심하게 하는 이 상황을 견디기 쉽지 않았다. 신뢰는 한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이다. 신뢰가 무너진다는 것은 의심이 곳곳에서 움튼다는 뜻이 된다. 아이들을 바라볼 때 나는, '이 아이의 시무룩함이, 이 아이의 평소와 다른 행동이, 이 아이의 말이 혹시 사건과 관련된 건 아닌가' 끊임없이 의심한다. 신뢰라는 건 단순히 ‘너를 믿는다’가 아니라 ‘네가 더 좋아질 거라 믿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것은 희망이고 기대이다. 신뢰를 무너뜨리는 누군가 단 한 명의 행동으로 나는 의심하고, 아이들은 의심받으며, 우리 사이의 신뢰가 왜 무너져야 하는가. 이 예쁜 아이들에게 나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니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신뢰가 무너지는 것은 나 자신이 파괴되는 일이며, 나를 둘러싼 세상이 파괴되는 시작점이라고 생각했다. 해결 방법은 의심을 걷어내기 위해 잘못한 자를 찾아내는 일, 그렇지 않다면 모두를 무조건 믿어버리는 일 두 가지밖에 없었다.
나는 점차 교사로서 자신이 없어지고 있다. 이 과정을 별 일 아닌 것처럼 쉽게 넘기는 게 내겐 쉬운 일이 아니다. 이 갈등의 불씨도, 아이들의 사춘기의 불씨도, 의심의 불씨도 모두 꺼지고 모두가 편안해지는 순간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 불씨가 모두를 잡아먹지 않도록 견뎌보자 마음먹는다.
교사로 존재하는 동안은 애를 써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