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겠다

생활 지도에서 필요한 교사의 말

by 소소 쌤

나는 만으로 6년 간 교사 생활을 했다. 많지도, 그렇다고 적지도 않은 경력. 그 사이에 여고와 여중을 거쳐, 현재는 남녀공학 중학교에 근무하고 있다. 10년도 채우지 못한 채, 나는 아이들의 생활 지도에 벌써 지쳐있다.

항상 주변에 말하곤 한다.

“수업하는 건 정말 좋아. 담임이 아니라면 무엇이라도 하겠어!”

담임이 좋다고 말하시는 참 교사 동료 선생님들도 계시지만, 나는 담임 역할을 하기엔 역부족 인간 같다.

매일 사건 사고, 예측 불가능의 아이들. 요즘은 ‘불안’이 기본 감정 상태가 되었다. ‘학교 가기 싫어’를 외치는 건 아이들 뿐만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일을 계속하는 건, 아직까지는 매 순간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기특함이, 예쁨이 내 눈에 밟히기 때문이다. 내 강점이라고 자부할 만큼, 아직까지 나는 내 품에 들어온 아이들을 쉽게 미워하지 않는다. 미운 짓 하는 아이들도, 아이이기 때문에 여린 잎을 다루듯 소중히 하게 된다. 아직 내가 강력한 문제 아이를 만나지 않은 행운일 수도 있지만.

작년 담임을 할 때 1년 내내 나를 힘들게 한 아이가 있었다. 태도는 건들건들, 수업시간에는 떠들거나 엎드려 있는 아이. 잘못을 지적하면 즉각적으로 변명부터 하거나, 무성의한 답변을 하여 상대를 화나게 하는 아이. 학교 규칙을 자잘하게 자주 어겼고 상대를 불쾌하게 하는 말과 행동을 끊임없이 하는 아이. 그러면서도 항상 억울해했고 상대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런 태도 때문에 수업을 안 하는 타 학년 선생님조차 알 정도로 악명 높았고 아이들 사이에서도 수시로 갈등이 생겼다.


이 아이가 힘든 이유는 단시간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또 한 해 동안 느꼈다. 그러나 그 아이에게 내가 학기가 끝날 때까지 한 말이 있다.

“선생님은 너를 가르치는 일을 포기하지 않을 거야.”


그 아이가 생각하는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렇다면 스스로 바뀔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최후의 방법으로 노트 하나를 마련하여 아이와 매일 교환 일기를 썼다. 자신이 잘못한 점과, 노력한 점을 적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다짐을 적도록 했다. 아이는 이미 가정과 학교에서 수많은 지적을 받고, 친구들과 갈등이 있었기에 자신이 노력한 것을 적도록 하고 칭찬 한마디를 꼭 적어주었다. 그 과정에서 아이가 삶을 성찰하기를 바랐다.


마치 이 과정이 끝나면 눈물 나는 감동의 서사가 기다릴 것 같지만, 아이는 그 과정을 그리 성실히 해내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한 해 동안 큰 일 없이, 아이가 비뚤어지지 않고 무사히, 한 학년을 올라갔다는 사실, 그것만으로 만족했다.


그 아이는 내가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잘한 일이 있으면 달려와 자랑을 했다. 그 모습이 꽤 귀엽기도 했다. 반 아이들도 그 아이가 문제를 일으키지만 담임이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 아이와 함께 사는 법을 배우려고 같이 노력해 준 아이들이 있었기에 작년이 무사했다.


남녀 공학의 현실은 지금까지 겪어온 현장의 차원을 넘어섰다. 남자아이들의 넘치는 에너지는 사건 사고 수와 비례했다. 치고받고 싸우는 일도 허다하고, 비속어의 사용이나 기물 파손의 정도도 달랐다.


매일 교무실에는 학교 규칙을 어기고 크고 작은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이 불려 온다. 나 어릴 때야, 한 대 맞거나 혼나면 끝나지만 지금은 정확한 사실관계 파악이 필요하므로 교사는 수사관이 되어야 한다. 교무실은 거의 경찰서 취조실이 되어 있다. 아이들에게 자신이 한 일을 진술하고 글로 쓰게 한다. 사실 관계를 확인하다 보면 들은 사람도, 본 사람도 분명 있는데 본인은 그런 적 없다고 발뺌을 하기도 한다. 아이가 기억을 못 할 수도, 모면을 위해 거짓을 말할 수도 있다. 사실 확인을 위한 지겨운 실랑이가 이어진다. 이런 일은 매일 반복된다.

공정한 처벌을 위해 잘못을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일. 그 또한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때로는 뉘우침은 사라지고 진실 공방과 벌만 남는 거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어느새 학교는 처벌받는 행동과 그 결과만을 가르치게 된 것 아닐까 걱정하게 된다. 그 지겨운 과정을 하면서 교사와 학생은 서로 감정이 다치고 신뢰를 잃어간다. 그래서인지 올해 유독 생활 지도에 있어 더 회의를 느끼게 된다.


교생 시절, 나는 고등학교 2학년 한 반에 배정되었고 한 선생님을 만났다. 반항기 넘치던 고등학교 남자아이들은 담임을 믿고 신뢰하고 있음이 보였다. 깡마르고 작은 몸을 가진 여교사였다.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패기로 가득 찬 내가 조언을 구했을 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아이들은 예뻐하면 예쁘게 변한다고.”

미운 짓을 하는, 잘못된 행동을 반복하는, 반항하는 이 거친 아이들을 예뻐하면, 그들은 변화할까.

그렇다면, '내가 너를 포기하지 않을 거란 사실, 내가 너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사실, 내가 너를 믿고 기다려 줄거란 사실'이 어떤 진실공방이나 처벌보다 먼저 아이에게 전해져야 했던 말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지난 금요일 아침 조회 시간에도 나는 우리 반 아이들 앞에 서서 이 말을 전했다. 전날, 학급에서 몇 가지 사건이 있었더랬다.

“선생님은 12월, 끝나는 그날까지 너희가 잘못한 것을 가르쳐줄 거야. 너희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너희 한 명 한 명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그날 나는 내 진심을 전달받은 몇몇 아이의 눈빛을 보았다. 여전히 불만 가득한 눈빛의 아이들도 있었으나, 그 아이들에게도 같은 마음을 끝까지 보여주리라. 다짐했다.

아이들은 매일 예쁘게 자라니까.

그 믿음으로, 내일 하루도 무사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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