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1 사회 토론 수업에 대한 소감
꿈을 자주 꾸는 편이다. 아주 많이. 그리고 남들이 놀랄 정도로 꽤나 구체적으로 기억을 하는 편이다.
꿈속에서는 주로 곤란을 겪는다. 무언가 원하는 대로 잘 이루어지지 않아 쩔쩔매는 장면 속에 내가 있다.
방학을 하고 일주일 정도 지난 어느 날, 꿈속에서 나는 토론 수업 준비를 못해 급히 주제를 만들고, 모둠을 짜며 애를 쓰고 있었다. 방학 전 했던 토론 수업이 꽤나 강렬했던 건지, 토론 수업을 또 하고 싶었던 건지, 꿈에서 깨어나 한참 곱씹었다. 꿈을 꾼 김에, 방학 전 했던 중1 사회 토론 수업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지난해 중학교 수업을 하는 내내 내가 원하는 대로 수업을 할 수 없는 답답함이 있었다. 학급이 많은 학교인지라 3명~4명의 교사가 협의하여 반을 4반씩 쪼개 동일하게 수업을 진행해야 했다. 동일한 자료, 동일한 수업 내용이 아니라면 민원이 들어온다는 소리를 들었기에 내가 재량 껏 할 수 있는 범주는 적었다. 그런데 모든 정기 고사가 끝난 이후 남은 한 달간은 내 맘껏 수업을 펼쳐낼 수 있었다. “토론을 해보자!”라는 마음이 들었다. “너희라면 가능할 것 같아!”라고 말하며 시작한 토론. 아이들과 나는 묘하게 설레고 있었다.
토론의 주제는 두 가지.
“청소년 범죄, 처벌을 강화해야 하는가?” (촉법소년 관련)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지 않으면 처벌해야 하는가?” (착한 사마리아인법 관련)
아이들이 정치와 법에 대해 최근 배운 상태였고, 우리 사회에서 오래도록 논의되어 온 주제였으며, 아이들의 삶과 어느 정도 관련성이 있다고 생각해 선정했다.
토론 주제와 자료는 대학원 때 알게된 선생님의 블로그를 참고했다. 연구하는 사회 교사, 어진쌤은 참 배울 점이 많은 분이셨는데 수업 개발을 하며 꾸준히 자료를 공유하고 계신다. (https://blog.naver.com/evoire)
각 모둠은 6~7명으로 4모둠을 구성하였고, CEDA식 토론(반대신문식 토론) 방식을 조금 변형하여 5차시에 걸쳐 토론을 진행하였다. 이 토론 방식의 장점은 단순한 주장에서 그치지 않고 질문과 답변을 통해 주장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점이다. 찬성과 반대 입장을 제비 뽑기로 정하고, 모둠 안에서 각자의 역할(A-발표자, B-발표자, C-발표자, D-질문자, E-질문자, F-질문자, G-마무리 발언)을 정했다. 발표자 3명은 근거를 하나씩 제시하고, 질문자 3명은 날카롭게 상대편에 질문하고, 마무리 발언자는 모든 주장을 정리하여 발언하는 역할임을 설명했다.
1차시 - 토론 방식과 토론 주제 안내
2차시 - 토론 준비(모둠활동)
3차시 - A팀 토론 진행(B팀 관람)
4차시 - B팀 토론 진행(A팀 관람)
5차시 - 마무리(관람 및 소감문 작성)
아이들은 토론의 주제와 방식을 쉽게 이해했다. 그리고 내가 기대한 것에 비해 더 활발하고 적극적인 토론 준비가 시작되었다. 최근에는 챗 GTP를 이용한 자료 수집이 가능해진 것도 한몫하여 아이들은 빠르게 근거를 나열하고, 그중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3가지를 선정하고, 그 3가지 근거를 뒷받침할 기사나 논문을 검색했다. 토론 한 주 전쯤 제공된 디벗(학습용 태블릿)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창을 두 개 띄워두고 한쪽에는 자료, 한쪽에는 메모장을 펼쳐두고 빠르게 정리해 나가며 모둠원들과 공유하고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꽤나 멋진 팀워크가 발휘되는 모습이었다.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근거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떤 날카로운 질문을 받을 수 있는지, 어떻게 방어할 것인지, 그러려면 어떤 자료가 더 필요한지 논리적인 논의 과정을 보였다. 이 아이들이 중1 아이들이 맞나 싶은 반짝이는 순간들이었다. 시험이 끝난 이후 여유가 있던 아이들은 집에서나 쉬는 시간까지 활용하여 열의를 갖고 탄탄한 준비를 해 나갔다.
토론 당일, 진지한 분위기를 위해 토론 좌석 배치를 해두고 나도 정중한 사회자의 톤으로 “OO중학교 1학년 O반 사회 토론을 시작하겠습니다.”라고 포문을 열었다. 아이들은 그 분위기에 사뭇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토론에서 좋았던 점과 아쉬운 점은 다음과 같다.
[좋았던 점]
사전에 각자의 역할에 맞게 준비할 수 있었기에 소외되는 학생 없이 모두가 참여하는 모습이었다. 발표에 어려움이 있는 친구들도 이미 정리된 자료를 발표하는 역할을 맡으면 됐기에 모둠 안에서 협력이 잘 이루어졌다. 혹시 질문이 들어왔을때 답변이 어려운 학생을 위해 회의시간(1분)을 각 팀당 2번씩 사용하게 했던 점도 팀워크를 발휘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주제에 대해 토론 전에 찬성 또는 반대로 몰리던 초반 결정이 달라졌다. 예를 들어 청소년 범죄에 대해 대다수의 아이들은 처벌 강화에 찬성했다. 그러나 막상 토론이 시작되고 자료를 찾고 반대 의견의 타당성에 대해 깊이 사고하며 고민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토론의 묘미를 아이들이 몸소 체험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쉬운 점]
토론 주제 선정 및 용어 정의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다. 급하게 한 토론이었기 때문에 검토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청소년 범죄’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아 질의응답에서 서로 다른 말을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질문과 답변은 토론의 핵심이었다. 날카롭게 상대편의 논리적 허점을 찾고, 이를 방어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했으나 충분한 연습 없이 진행된 점이 아쉬웠다. 서로 상대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는 것 자체에 어려움을 겪어 답변이 잘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진지했다. 찾은 자료를 적절히 활용하거나, 사안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거나, 더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설명하거나, 상대 의견을 경청하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모습은 훌륭한 토론자의 모습이었다. 아이들도 토론을 참여하거나 참관하면서, 쉽지 않았지만 문제를 깊이 사고하여 주장하고 타인의 의견을 듣는 법을 배웠다는 후기를 남겼다. 좋은 아이들을 만나, 좋은 수업으로 마무리했던 사회 시간이었다.
꿈을 꾸었다. 나는 이 토론의 과정이 지금의 현실에도 적용되기를 바란다.
그냥 ‘주장’ 하지 않기를,
근거를 찾고, 근거의 사실 여부를 검증하고, 근거를 바탕으로 주장하며, 그럼에도 상대의 주장에 귀 기울여, 나의 오류를 인정해 보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바람직한 결론을 도출해갈 수 있는 논리적이고 합리적 사회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요즘 뉴스를 보며, 우리 아이들이 배워서는 안 되는 참담한 어른들의 행태를 본다. 반성은 없고, 거짓을 말하며, 논지를 흐려 책임을 회피하는,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끊임없이 내 주장만 옳다 우기며, 자기 입맛에 맞는 근거를 찾으려 애쓰는 어른의 모습.
이 토론이 그래서는 안된다는 작은 배움이 되었길.
나는 토론하는 꿈을 또다시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