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라는 도시에 대하여

시어머니와 함께 한 전주 여행

by 소소 쌤

전주(全州). 그곳에는 시어머님의 남동생, 즉 남편의 외삼촌이 계신다. 지난해 뇌출혈로 쓰러져서 요양원에 가신 후, 어머님은 혼자 계신 외삼촌을 계속 마음 쓰여하셨다. 어머님은 정읍 사람이었고, 전주 이 씨였다. 어린 시절을 전주 이 씨 집성촌인 정읍의 한 마을에서 살다 성인이 된 이후 서울로 올라오셨다. 그러니 전주는 어머님께 익숙한 듯 잘 모르는 도시였다.


구정을 맞이하여 어머님을 모시고 전주에 다녀오기로 했다.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고 외출도 동네 뒷산과 시장을 제외하면 거의 하지 않으시기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행을 하려 한다. 다른 때 같으면 ‘귀찮다, 돈 든다’라며 싫어하실 어머님이 동생 생각에 흔쾌히 가겠다고 하셨다. 물론 ‘2월에 눈이 많이 온다는데, 귀성길 차 막히면 어쩌냐’ 등등 걱정을 한가득 풀어놓으셨지만.


전주는 내게 그다지 흥미로운 도시는 아니었다. 워낙 관광지로 유명한 데다가 몇 년 전에 친구들과 겨울 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에 이 도시에 대해 알만큼 안다고 여겼다. 어머님을 위하여, 어머님께 맞춰, 유명한 음식을 먹고 유명한 관광지를 다녀오는 여행으로 생각했을 뿐 특별한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다녀온 뒤, 전주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숙소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어머님께도 우리에게도 새로운 걸 찾다가 한옥 숙소를 선택했다. 전주에는 한옥 마을 안에 한옥 숙소가 워낙 많고, 외곽으로 한옥 호텔도 많이 생겼다. 선택지가 많은 것 같지만 명절에 가족 단위 여행자들이 많은지 이미 만실이었다. 찾다가 한옥 마을 안에 위치한 한옥 숙소 ‘부경당’에 방 2개를 발견했다. 이목대와 한벽루. 이목대는 작은 한옥 방에 화장실이 딸려 있고, 한벽루는 다락에 침실이 있고 아래층을 거실처럼 쓸 수 있었다. 뜨끈한 숙소와 조식 등으로 평점도 높고 가격도 합리적이었다. 공간이 좀 작아 보여 걱정했지만, 결론적으로 부경당은 좋은 선택이었다.


한옥 마을 안에 있어, 여행 도중 휴식이 필요할 때 잠깐씩 들어와 뜨끈한 방바닥에 누워 체력을 보충할 수 있다는 점이 우선 좋았다. 특히 어머님께서 그 뜨끈한 방바닥 위에서 허리를 지지는 걸 좋아하셨다. 화장실조차 따뜻해서 겨울 여행지로도 훌륭했다. 이목대와 한벽루는 방이 나란히 있어 각자 휴식을 취하다가, 조식을 먹거나 간식을 먹을 땐 좀 더 넓은 한벽루에 모여 같이 먹었다. 한옥은 소음에 취약하다는 데 이틀 내내 고요했다.




한옥 숙소 뿐만 아니라, 전주는 도시를 여행할 때 필요한 두 가지, 볼거리와 먹거리가 아주 훌륭한 도시였다. 특히 먹거리가 이번 여행에서 아주 만족스러웠다. 서울에서는 접하지 못한 물짜장이나 물갈비를 먹으며 우리는 감탄했다. 아는 듯 모르는 맛인데 입에 착착 감긴다. 도토리 가루로 만든 임자탕과 도토리 전도 정말 맛있었는데, 얇게 부친 도토리 전을 세 번 추가 주문 했더니 가게 사장님도 놀란 눈치였다. 그리고 남부 야시장 먹거리 질이 예전보다 훨씬 좋아진 느낌이다. 예전에는 기름지고 달기만 한 음식이라 생각했는데, 이번에 먹은 것들은 모두 맛이 훌륭했다. 특히 육전이 좋았다. 사람이 많고 대기가 길었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


볼거리는 어떠한가. 가장 가볼 만한 곳은 역시나 경기전이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보관되어 있는 곳. 어진 박물관에서는 다른 왕들의 어진까지 살펴볼 수 있다. 경기전의 구석구석 불을 경계한 흔적과, 제사를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그 시절, 이곳을 분주히 움직였을 누군가를 떠올리거나, 어진을 통해 살아 움직이는 왕을 상상해 보는 재미가 있다. 거대한 크기의 어진을, 그 어진 속 왕의 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들도 휘몰아치는 삶을 살다 간 보통의 사람이었음을 느끼게 된다. 최근 ‘왕과 사는 남자’를 사람들이 보며 단종에 그렇게 마음 아파하는 것도, 시대가 달라도 계급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가 똑같이 느낄 수 있는 슬픔과 고뇌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각기 다른 생김새를 가진 왕을 보며, 마치 관상가처럼 저 사람은 좀 꼬장꼬장했을 것 같다며 성격을 추측하고, 어머님은 정조 어진을 보며 아버지가 떠오른다고 말하며 웃고, 그렇게 우리는 왕이 곁에 있는 것처럼 상상하는 재미가 누렸다. 한옥 거리의 활기참과 달리 경기전 안은 고요하고 한적해 좋았다.


주변에 이목대나 어목대에 올라 한옥 마을의 빼곡한 기와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도 멋진 풍경이다. 한옥마을과 조금 떨어져 있는 연화당 도서관을 들러보는 것도 추천한다. 연화당 도서관은 연못 위에 한옥 도서관인데 아름다웠다. 도서관에서 혼불을 쓴 작가 최명희에 대해 읽게 되었는데, 우리말을 참 맛깔스럽게 표현했던 장편 소설 작가라는 최명희의 문학관이 한옥 마을에 있다고 해서 꼭 들러보고 싶었으나, 현재는 내부 공사 중이라 아쉬웠다. 한옥 마을 안에 교동 미술관에서의 전시도 참 괜찮다. 전주는 단순히 한옥 마을 만이 아니라 다른 즐길 거리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먹을 것과 볼 것으로 매력적이었던 전주. 그러나 한편으로 ‘임대’가 잔뜩 붙어있는 가게들이 늘어선 전주의 풍경은 불안하기도 했다. 한옥 마을에서도 장사가 잘 되는 집은 줄이 길게 늘어섰지만 그렇지 않은 집들도 많았고, 두세 집 건네 한집에 임대가 붙은 빈 가게를 보니, 혹시 이곳에서도 임대료가 올라 원주민이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도시를 매력적으로 만들던 사람들을 떠나게 만드는 어떤 문제가 이 도시에 있는게 아닐까?


오래된 도시가 젊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외국인들이 한복을 입고 즐겁게 즐기는 모습 또한 보인다. 전통은 아니지만, 화려함으로 고객을 모으는 한복 대여점과 전동기 대여점이 많다. 돈이 된다고 하면, 모두가 뛰어들었다. 그러다 포화 상태가 되고 경쟁이 심화되다 견디지 못하면 사라졌다. 한옥 마을 안에 길거리 음식들이 도대체 이 도시와 무슨 관련이 있냐고 누군가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메인 거리에 줄이 길게 서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특히 오짱이 그랬다. 오징어 버터 구이 냄새가 한옥 마을 전체에 퍼져 있는 느낌이어서 결국 나도 줄을 서서 사 먹었다. 놀라운 맛은 아니지만, 꽃다발 같은 오징어 다발이 꽤 매력적이라, 놀러 온 사람에게 추억거리로 훌륭했다. 젊은이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곳, 그들의 입맛에 맞춘 자극적인 음식들, 그게 이 도시의 매력인 것도 사실이나, 좀 더 전통을 간직하는 공간으로 방향성을 잡고 발전시켜 간다면 더욱 좋지 않을까 아쉬움도 생긴다. 그냥 맛있고 멋있는 도시 말고, 스토리가 있는 도시. 한국을, 과거를 느끼고 싶다면 찾는 도시로서의 전주는 얼마든지 발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밤이 되자,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고 한옥 골목 사이사이 고요한 풍경에 등불이 켜졌다. 과거를 기억하는 공간이 필요하다. 과거는 모두에게 향수가 된다. 물론 지금도 매력적이지만, 이야기가 있는 도시, 전주를 기대해본다.


전주, 뻔한 관광지로 생각하지 말고 다시 방문해 보시길!


* 전주 여행 코스와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 자세히 적어두었다. 혹시 부모님과 여행을 떠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시어머니와 함께 하는 전주 여행 (A Trip to Jeonju with My Mother-in-Law) Day 1 : 네이버 블로그

시어머니와 함께 하는 전주 여행 (A Trip to Jeonju with My Mother-in-Law) Day 2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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