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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Oct 31. 2020

해변의 피쉬앤칩스

지금 마음 속에 떠오르는 행복의 풍경이 있나요?




사람들은 바다에 가면 뭘 하고 싶어할까?

아마도 대부분은 액티브한 일들일 것 같다. 수영이나 서핑같은. 나는 조금 다르다.


그냥 모래사장에 가만히 앉아서 어떻게 저렇게 선이 곧은지 감탄하게 만드는 수평선과, 햇살 받아 저마다의 투영한 빛을 뿜어대는 윤슬과, 부지런히 모래사장을 핥는 파도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다.


그리고 그 순간에 갓 튀겨낸 피쉬앤칩스와 함께라면 더 행복할 것 같다.


제주도 애월읍 곽지과물해변에 가면 이런 행복의 순간을 선사하는 피쉬앤칩스를 만날 수 있다.

맥주와 피쉬앤칩스, 햄버거를 파는 작은 가게, 카페태희다.


2천원을 추가하면 기네스 생맥주 반죽으로 튀겨 더 바삭하고 맛있는 피쉬앤칩스를 맛볼 수 있다. 여기서 일반 피쉬앤칩스를 먹어보진 않았지만 돈이 아깝지 않은 맛이니까 무조건 추가해야 한다. 그리고 가게 안에서 먹기 보다는 테이크아웃해서 바로 앞 해변에서 먹어야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종이봉투를 받아 들고 가게 문을 나서는 순간 이미 고소한 기름 냄새에 온 신경이 기대감으로 마비되고 만다. 한 입 베어물면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고 적당히 짭조름한 것이 어느새 오른손이 모르게 왼손으로 맥주를 마시고 있다.


지금 다시 가서 먹어보면 더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미 몇 년 전의 기억이라 사실 맛의 느낌이 손에 잡힐듯 말듯 하다. 하지만 확실한 건 카페태희의 이름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맛있었고, 런던에서 먹은 피쉬앤칩스보다 맛있었다는 거다.


물론 영국인들은 잘 가지 않는다는 제이미 올리버의 식당이어서 객관적인 비교가 될 수는 없다. 게다가 내 입맛은 명절마다 먹던 고소한 동태전과 세계 어디에 내놔도 경쟁력 있는 한국 치킨에 익숙해진 탓에 다소 밍밍한 영국의 피쉬앤칩스 맛을 몰라봤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제주도에서 맛본 피쉬앤칩스는 손에 꼽히는 인생 튀김이었다. 그리고 해변의 시원한 풍경에 참 잘 어울리는 음식이었다.


영화 '테스와 보낸 여름'에서도 가족과 휴가를 보내던 샘이 해변에서 놀다가 노점에서 파는 생선튀김을 사먹는 장면이 있다. 별 의미 없는 장면이지만 보는 순간 제주도 해변에 있던 내가 떠올랐고, 행복한 기분이 스르르 밀려왔다.


산에는 나를 감싸고 있는 높이가 주는 아늑함이 있다면, 바다에는 끝도 깊이도 알 수 없는 넓이가 주는 편안함이 있다.


파삭파삭한 해변의 모래를 파도가 적시고 지나간다. 생선과 감자에 배어든 촉촉한 기름이 퍽퍽한 마음을 적신다. 파도는 잠시 왔다 가지만 기름진 맛의 여운은 오래 마음에 머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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