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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럼 Nov 20. 2015

HER, 사랑의 육체성에 대한 역설

만지고 안을 수 없는 사랑은 얼마나 공허할까

HER 사랑의 육체성에 대한 역설

HER의 세계는 편협적이다 인공 인격이 개발된 이후의 모습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인류 역사상 불의 발견에 비견될만한 테크놀로지가 고작 유사연애 대상으로만 소비된다니 무덤 속 튜링이 놀랄 일이다 인공 인격의 시각화도 의도적으로 거세한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오감 중 시각에서 가장 큰 쾌감을 느끼는 동물이지만 영화 속 OS는 오직 청각으로만  커뮤니케이션할 뿐 시각적으로 구현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인공 인격이  개발될 정도의 기술력으로 비슷한 로봇 하나 못 만들까? 3D 홀로그램은 지금도 가능한 기술인데? 한마디로 HER 영화 속 인공 인격은 주인공이 사랑하는 존재로서만 존재할 뿐 세계와 연관성을 주고받지 않는다 이야기는 열려 있으되 영향은  주고받지 않는 닫힌 계에 갇혀 있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이런 무리한 설정은 영화에 있어 단점으로 작용한다 그럴듯함 혹은 있음직함으로 설명되는 핍진성이 떨어지면 영화적 몰입을 방해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영화란 공식으로 설명되는 물리학이 아닌 법, 오히려 의도적으로 제어된 영역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만 충실할 때 매우 특별하고 매혹적인 영화가 나올 때가 있다 바로 HER가 그렇다 HER는 근래 나온 영화 중 가장 독특한 SF영화이자 가장 가슴 시린 멜로 영화이다



인공 인격인 OS 사만다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서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다 육신이 존재하지 않는 이 존재는 동시에 8,316명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고 641명과 사랑할 수 있다 육체성이 사라져 물리적 독점성이 상실되자 기막힌 아이러니가 탄생했다 테오도어는 사만다가 자신을 사랑함과 동시에 다른 이들을(테오도어를 제외하고도 640명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당신의 것이지만 당신의 것이 아니라는 사만다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해 괴로워한다 육체가 없는 OS와의 사랑이란 기이한 설정이 사랑의 본질적인 양태를 변화시켰고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낡은 명제가 새롭고 세련되게 편곡되어 다시 한번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사만다의 말을 긍정하고 그 자체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이혼한 전 아내에게 이건 진짜 사랑이라 항변하던 테오도어가 OS와 인간과의 다름이 준 현실 앞에서  괴로워하는 모습은 이 다름을 인정하는 걸 넘어 긍정하고 포용하기까지가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보여준다 아픈 사랑을 보여주기보단 아파하는 인물을 보여주는 영화의 태도는 배우의 열연과 합쳐져 진한 여운을 남기고 영화 속 유난히 선명한 색감과 밝은 톤은 그 아픔을 한층 더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 나아가 OS와 인간이란 간극은 관객으로 하여금 계급 나이 취향 등 각자 경험한 다름의 차이로 취환하게 만들고 사랑하는 대상과의 다름에서 왔던 개인의 아픔이 투영되어 강한 정서적 진동을 일으킨다 인공 인격이란 SF적 상상력이 지금 바로 여기 우리들의 문제로 내려앉아 꽤 오랫동안 진한 울림을 지속한다




영화의 결말은 마치 열린 결말처럼 행복해 보이기도 불행해 보이기도 하다 다만 한 가지 사랑함에 있어 만지고 닿을 수 있는 육체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이 영화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를 사랑함을 보여줌으로써 사랑의 육체성에 대한 역설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행복했던 기억으로 묘사되는 아내와의 회상씬과 대비되듯 만지고 안을 수 없는 사랑은 얼마나 공허하고 허무하게 느껴질까. 0과 1로 이루어진 OS가그들의 세계로 떠날 수밖에 없었듯이 수많은 세포로 이루어진 인간에게 세포와 세포가 맞닿는 경험은 결국 본질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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