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보다 오래 남는 감정의 잔상에 대하여
어떤 장면은 금세 흐려지지만,
색은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기억의 앞부분에서 사라지지 않고
한참 뒤에도 조용히 떠올려지는 순간이 있다.
스틸블루가 그랬다.
처음 마주했을 때는 단순히 마음에 드는 색 정도로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 느낌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이유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그 색을 떠올리면 마음이 잠시 멈춰서는 감각이 있었다.
색이 오래 남는 이유는
그 색이 어떤 기억을 붙잡고 있어서라기보다,
그 색을 바라보던 나의 상태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스틸블루는 조용한 안정감을 가지고 있다.
한 번에 강하게 끌어당기지 않는 대신
천천히 스며들어 오래 머문다.
그 색을 생각하면
머릿속이 조금 정리되고
감정의 속도가 미묘하게 늦춰지는 느낌이 있었다.
색 하나가 마음에 남는 순간은
보통 아주 짧고 조용하다.
크게 흔들리는 감정의 폭발보다,
몸이 먼저 알아채는 미세한 신호에 가깝다.
그 색을 보는 동안 잠시 멈췄던 나의 호흡이나,
그날의 공기와 마음의 움직임이
색과 함께 저장되는 것이다.
그래서 색은 기억보다 조금 더 정직하다.
말로 설명하지 못한 감정과
표현하지 못했던 상태를
묵묵히 보관해 주기도 한다.
스틸블루가 오래 남은 것은
그 색이 특별해서라기보다,
그 색을 바라보며 잠시 쉬고 싶었던
내 마음의 한 조각이 그대로 남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색 하나가 오래 남는 순간은
나를 스쳐 지나가는 감정들 사이에서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마음이 나를 살짝 불러세운 순간인지도 모른다.
그 작은 불러냄이 잔상처럼 남아
훗날 다시 나를 잠시 멈추게 만든다.
색 하나가 만드는 잔상은
그 자체로 작은 기록이 된다.
그리고 때때로
그 기록이 우리를 다시 멈춰 세우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