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맥주가 생각나는 날

욕구가 아니라 기억이 흔들린 밤

by 소소연

이상한 날이었다.


특별히 힘들지도 않았고,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오히려 하루는 꽤 잘 흘러갔다.


그런데 저녁이 되자

문득 맥주가 떠올랐다.


갈증처럼 확 올라오는 욕구는 아니었다.


냄새도 아니고,

맛도 아니고,

딱히 ‘마시고 싶다’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느낌.


그건 기억에 가까웠다.


예전에 자주 앉던 자리,

퇴근 후 불을 켜지 않은 거실,

아무 생각 없이 리모컨을 누르던 손.


맥주를 따는 소리보다

그 앞에 있던 정적이 먼저 떠올랐다.


‘그때는 이렇게 하루를 접었지.’


오늘의 하루는

아직 접히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더 어색했다.


맥주를 마시지 않으니

하루를 마무리하는 신호가 없어진 것 같았다.


습관이 사라진 자리에

기억이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나는 잠시 그 기억을 그대로 두었다.


억지로 밀어내지도,

괜히 다른 걸로 덮어버리지도 않았다.


대신 스스로에게 물었다.


‘지금 내가 원하는 건 뭘까.’


맥주가 아니라면,

이 밤에 내가 진짜 필요한 건 무엇일까.


답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오늘을 잘 보냈다는 안도감,

그리고 아무 일 없이 하루를 닫아도 괜찮다는 허락.


물을 한 잔 마셨다.


시원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평범함이

지금의 나에게는 충분했다.


맥주가 생각났던 밤은

실패의 신호가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얼마나 오래 그 습관과 함께 살아왔는지를

조용히 알려주는 순간이었다.


오늘은 마시지 않았다.


그리고 그 선택은

참아낸 결심이 아니라

기억을 지나쳐 온 하나의 저녁이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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