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로서도 예민한 나

by 또이

아이가 생겼다 해서 손바닥 뒤집듯 사람이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예민하고 우울한 사람이었다. 아이의 울음소리에 감각은 더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졌다. 다이어트에 좋다던 모유수유는 실상 내 체력을 쥐어짜는 고된 일이었고, 나는 지쳐갔다.


모성애 넘치는 엄마, 목숨보다도 소중한 아기. 세상이 말하던 육아의 모습은 나의 현실과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육아는 내 예민함과 불안을 극도로 끌어올려놨다.

나를 닮아 예민한 아이는 밤 12시가 넘어도 좀처럼 잠들지 않았고, 조금만 불편해도 감정을 격하게 드러냈다. 그 모든 감정을, 엄마인 내가 감내해야 했다. 참아야 했고, 버텨야 했다. 


어디에 말할 수도 없었다. 표현하는 순간,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엄마가 될까 봐. 세상이 나를 가스라이팅한 것 같았다. 육아의 현실을 마주할수록 점점 지쳐갔다. 그 누구도 미리 알려주지 않았던 진짜 현실 육아 앞에서 나는 무너지고 있었다.


나는 늘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일찍 준비하고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 아이는 나와 달랐다. 요즘은 만 3세가 되기 전에 영어 유치원을 보내기 위해 24개월 무렵부터 영어 학원을 시작하는 아이들도 많다고 들었다. 그런데 우리 아이는 24개월이 되도록 ‘엄마, 아빠, 밥, 물’ 같은 필요한 말만 겨우 할 뿐이었다. 주변에서는 “그 정도면 늦은 거 아니야, 괜찮아”라고 했지만 친구 아이들은 벌써 동요를 부르고 문장으로 의사 표현을 하고 있었다. 나는 조급해졌다.


말이 빠른 S의 아이가 떠올라, S에게 내 불안을 털어놓았다.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돌아온 답은 너무 단호했다. “같은 단어 반복해줘야 해. 말 많이 해줘야 하고, 표현 언어로 자꾸 말해줘야 해.” 너무도 당연한 말이었다. 나는 속으로 되물었다. ‘그걸 내가 모르고 안 했을까? 똑같이 해도, 안 되는 게 문제인데…’라고 답하자 그 친구는 “그럼 언어치료 가봐.”라고 말했다. 이 말이 왜 그렇게 상처로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위로를 받고 싶었고, “그럴 수 있지, 속상했겠다” 한마디면 됐는데 마치 내가 노력을 안 한 것처럼 느껴졌고, 내 마음이 무시당한 기분이었다. 그 자리에서는 웃으며 넘겼지만, 나는 상처를 받았고, 그 상처를 말할 수도 없었다. 그저 내가 너무 민감했던 걸까, 또 내 마음을 눌러 담았다. 엄마로서의 나 역시, 참 예민한 사람이라는 걸 다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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