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된 임신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아주 약간의 충동성 선택도 숨어 있었다. 코로나 시기, 회사는 장기적인 재택근무 체제로 운영되었고 나는 그 시간 동안 점점 사회에서 멀어지는 삶을 살고 있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혼자 있는 시간이 자연스러워졌고, 사람을 대면하는 것이 점점 버겁고 두려운 일이 되어갔다.
2022년 말, 코로나가 조금씩 완화되며 출근을 권장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부터 불안이 몰려왔다. 사람들과 마주 보고 일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두려움이 앞섰다. 사람들의 시선, 대화, 분위기... 모든 게 나에겐 큰 두려움이었다.
그래서 나는 임신이라는 선택지를 떠올렸다. 현실을 회피하려는 마음이 없었다고는 못하겠다. 다행스럽게 마음먹자마자 아기가 찾아와 주었다. 회사와 조율해 임신기간 동안 재택근무를 계속할 수 있었고 나는 다시 노트북 하나를 옆에 두고 침대에 누운 채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그렇게 나의 히키코모리적 생활은 한 생명을 품은 채 계속되었다.
어쩌면 도피였는지도 모를 이 선택은 결국 나를 가장 뜨겁고 진실한 현실로 데려다주었다.
8월에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던 7월 어느 날 새벽, 예고도 없이 양수가 터졌고, 나는 급히 대학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아기를 만나게 되었다. 아기는 예정일보다 훨씬 이른, 미숙아였다. 곧바로 신생아 집중치료실로 옮겨졌고 그 순간부터 아기와 나는 직접적으로 만날 수 없었다. 코로나가 끝나지 않았던 시기였다. 일주일에 단 두 번. 온몸을 소독하고 장갑과 보호복을 입은 채 아기를 바라볼 수 있었다. 한 번도 안아보지도 못한 내 아기. 그때부터 세상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이를 두고 먼저 집으로 돌아왔다. 아기가 있던 볼록한 배는 사라졌고, 뱃속에서 꼬물거리던 느낌도 사라졌는데, 집에는 나 혼자였다. 사람들은 흔한 일이라고 쉽게 말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어떤 순간도 익숙하거나 평범하지 않았다. 황달, 심박수 저하, 호흡 중단, 두뇌의 피고임까지. 아기의 퇴원은 미뤄졌고 나는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텼다. 그렇게 아기는 3주를 꼬박 채우고, 우리 집으로 와주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수없이 울고 싶었고 누군가에게 이 모든 마음을 털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곳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상처를 꾹꾹 눌러 담았다. 아기가 건강하게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마음 하나로 내 모든 감정을 덮었다. 하지만 아기가 돌아왔는데도 나의 마음은 여전히 상처투성이였다. 그런데도 나를 들여다볼 수 없었다. 내 손길이 아니면 배를 채울 수도, 잠을 잘 수도 없는 작은 생명체가 눈앞에 있었기에.
나는 조용한 카페에서 책을 읽고, 혼자 운동을 하며 루틴 한 일상을 즐기던 사람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 시간이 나를 회복시켜주곤 했다. 하지만 아기가 생기고 나서, 내 삶의 중심은 온전히 아기에게로 향했다. 출산을 한 순간부터 나는 완벽히 '아기를 위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울고 싶었다. 너무 힘들어서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는데, 울 시간이 없었다. 그저 커피 한 잔 마시고, 짧게라도 산책하며 숨을 돌리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도 없었다. 나는 이제 혼자가 아니었고, '무조건 아기와 함께'라는 공식 속에 갇혀 있었다.
나의 피로, 나의 우울, 나의 짜증. 그 모든 화살이 결국 아기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무섭게 만들었다. 아이를 사랑하는 건 분명한데 왜 이토록 힘들까. 마음이 스스로 납득되지 않았고, 현실과 감정의 괴리감은 점점 커졌다. 그만큼 내 우울도 깊어졌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아기가 이뻐 보이지 않았다. 무서웠다. 사랑해야 할 존재가 눈앞에 있는데, 내가 그 아이를 바라보는 감정은 점점 무감각해지고 있었다. 감정은 사라지고, 책임만 남아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