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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Nov 13. 2022

베트남 출장기


베트남 출장

4박 5일 일정(11. 8. ~ 11. 12.)으로 베트남 출장을 다녀왔다. 작년에 추진했던 오디에이(ODA, 정부 개발 원조) 2차 사업과 관련된 기관을 방문해 업무 협의하는 게 주목적이었다. 우리 청은 19년부터 22년까지 1차 사업을 진행했다. 2차 사업도 순조롭게 진행될 것만 같았다. 관계 부처 서류 심사도 통과했고, 베트남의 호응도 좋았다. 그런데 최종 단계에서 미끄러졌다. 베트남 측에서 마감 기한이 지나서 공문을 보냈기 때문이다. 심사 기관에서는 내용뿐만 아니라 절차도 중요해서 어쩔 수 없다며 내년에 다시 해 보자고 했다. 공문이 늦어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사업이 꼭 필요하다는 확신이 부족한 탓도 있을 것 같았다. 직접 만나서 그 의지를 확인하고 설득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출장 당일, 새벽 일찍 눈이 떠졌다. 잠을 설쳤는데도 피곤하지 않았다. 코로나19가 퍼진 2019년 이후 해외에 처음 나가는 거였다. 낯선 나라에 간다는 건 기분 좋고 설레는 일이다. 그게 여행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청사에서 공항까지는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서두르기도 했고 공항도 번잡스럽지 않아 수속도 수월하게 마쳤다. 9시 45분이 되자 탑승이 시작됐다. 과장님, ㅇ 주무관과 함께 비행기의 중간 열에 앉았다. 나는 창 쪽이 좋지만, 국제 협력 업무를 오래 담당한 ㅇ 주무관은 이곳이 최고라고 했다. 비행기는 이륙 안내 방송이 끝나자 활주로를 힘차게 달려 하늘로 솟구쳤다.

베트남 국영 항공사 비행기라서 크고, 기내 서비스도 만족스러웠다. 기내식은 물론이고, 커피와 와인까지 줬다.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모인 좁은 장소에서도 마스크를 벗고 식사하는 걸 보니 코로나19도 끝나 간다는 게 피부로 와 닿았다. 좌석에는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고, 게임도 할 수 있는 개인 모니터가 있었다. 우리나라 영화도 몇 편 있었지만, 흥미롭지 않았다. 전자책을 꺼내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읽었다. 원래 뻔한 말만 하는 자기 계발서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 책은 조금 달랐다.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그렇게 해야 하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것들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호감을 얻으려면 ‘잘 웃고, 잘 듣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내용처럼 직장에서 실천하면 좋은 내용이 많았다. 두세 시간 지나니, 고질적으로 안 좋은 허리가 쑤셔왔다. 기내를 두세 번 돌았다. 창 쪽에 갇혔으면 힘든 일이었다.

비행기는 다섯 시간 만에 하노이에 도착했다. 베트남은 우리나라보다 두 시간 느린 14시경이었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짐을 풀고 나니 네 시가 됐다. 숙소는 시내 중심가에 있었다. 하노이는 정치, 문화, 교육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베트남의 수도다. 오토바이들로 교통이 몹시 혼잡했고, 공기 역시 안 좋았다. 특히나 우리나라의 파란 가을하늘을 보고 온 후라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이곳에서는 코로나19가 아니라 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써야 했다.

다섯 시 무렵, 같이 온 팀들과 저녁을 먹기로 했다. 환경 쪽으로 명성이 자자한 박사님, 해양계에서 유명한 교수님, 젊은 연구진들이었다. 1차 사업에 참여한 분들이어서 알아서 척척 시켰다. 모든 음식이 맛있었을 뿐만 아니라, 분위기도 좋아서 금방 친해졌다, 식사를 마치고 호안 끼에 호수를 돌았다. 몇몇 사람은 쉬겠다며 숙소로 돌아갔다. 한 분이 나에게 피곤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나는 잠은 한국에서 자면 된다고 말했다.

다음 날 아침, 새벽 세 시에 눈이 떠졌다. 한국에서 다섯 시가 되면 일어났으니 그럴 만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걷고 싶었지만, 몸이 피곤할 것 같았다. 두어 시간 눈을 붙이고 여명이 밝아올 무렵 숙소를 나섰다. 시장은 야채와 생선, 과일을 파는 상인들로 생기가 넘쳤다. 호수에는 모여서 춤을 추거나, 달리기를 하는 사람도 많았다. 공기가 안 좋아 목이 칼칼했다. 흙탕물 같은 호수에서 낚시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주변에는 죽은 물고기가 둥둥 떠다녔다. 경제 성장도 좋지만 환경 문제를 우선 고민해야 할 것 같았다.

오전에는 현지에 있는 우리나라 기관을 방문해, 2차 사업 목적을 설명하고 재차 협조를 요청했다. 오후에는 베트남 측 실무자를 만나서, 2차 때와 같은 일이 반복되면 안 된다고 했다. 다음 날에는 베트남과 우리나라가 함께하는 회의를 열었다. 베트남 도서청 부청장이 주재했는데, 9시부터 두 시간 넘게 쉬지도 않고 했다. 나는 우리 측 진행을 맡았다. 한국어를 잘하는 통역이 있어서 수월했다. 부청장은 50대 여성이었는데, 베트남어로 사업의 성과와 필요성, 문제점을 말했다. 나는 <인간관계론>에서 읽은 대로 잘 웃으며 잘 들었다. 때때로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여성 부청장은 나를 자주 주목하며 회의를 이끌었다. 내가 호응을 잘 해주니 기분이 좋은 듯 보였다. 물론 통역이 말하기 전까지 무슨 뜻인지 전혀 몰랐다. 가끔 내가 분위기를 좋게 하려고 한 농담이 통역으로 전달되면 베트남 측 참석자들도 환하게 웃었다.

점심시간이 다 돼서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오후에는 실무자들끼리 모여 심층 회의를 했다. 베트남 측에서 만찬을 열었다. ㅇ 주무관은 내게 알약을 건넸다. 만찬장에 가기 전에 먹으라고 했다. 오래전부터 이 일을 담당한 ㅇ 주무관은 몇 년 전 베트남이 주관한 점심 자리에서 술을 마시다 죽을 뻔했다고 했다. 과장님에게도 이 사실을 보고했다. 나는 알약을 삼키며 각오를 다졌다.

만찬장에는 부청장님과 베트남 측 대표자 세 명이 참석했다. 걱정과는 달리 전투적인 분위기는 아니었다. 가끔 “콩사이 콩베(술에 취하지 않으면 집에 갈 수 없다.)”라는 건배사가 돌기는 했지만 말이다. 부청장님도 술을 빼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권하지도 않았다. 술자리 문화도 우리나라처럼 많이 바뀐 것 같았다. 베트남에서는 술잔을 비우면 우정을 다지며 악수한다. 그 횟수가 많아질수록 분위기는 더 좋아졌다. 부청장님은 나를 베트남어를 아주 잘하는 직원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인상이 아주 좋다고 칭찬했다. 적극적으로 웃고,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한 게 이유 같았다. 뜻도 모르고 그러면 상대방이 의미를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겠지만, 그때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웃으면서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반대하는 일은 쉽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첫 국외 출장이었지만, 매우 만족스러웠다. 좋은 사람도 많이 알게 됐고, 실력을 키우는 기회도 됐다.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걸어서, 하노이의 곳곳도 다녔다. 내년 1월이면 베트남에서 공문이 와야 한다. 기한 내에 보내 줄지 장담할 순 없다. 좋은 결과가 나오면 좋겠다. 다시 한번 <인간관계론>도 숙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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