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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Nov 01. 2022

교통 불평등

교통 불평등


2년 전 인천으로 발령이 나면서, 목포를 오가는 주말부부로 지내고 있다. 누군가는 삼 대가 덕을 쌓아야 누릴 수 있는 복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떨어져 살면 간섭도 덜 받게 되고, 혼자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장점도 있다. 그래도 가족은 부대끼며 살아야 한다는 게 내가 내린 결론이다. 한밤에 오한이라도 생기면,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아쉽고, 두 집 살림하면서 들어가는 경제 부담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일요일 오후가 되면, 인천행 버스를 탄다. 그 주에는 월요일 오후에 세종 출장이 잡혔다. 주말을 집에서 보내고, 목포에서 출발하려고 마음먹었다. 기차부터 검색했다. 월요일 여덟 시 케이티엑스(KTX)는 며칠 전부터 매진이다. 열한 시 기차를 타면 도착 시간이 빠듯했다. 그때 환승 열차가 떠올랐다. 지정된 역에서 다른 열차로 갈아타서 목적지까지 가는 방법이다. 앱으로 찾아보니 아홉 시 케이티엑스가 있다. 9시 40분에 송정리에 내려서, 10시 18분에 출발하는 에스알티(SRT)로 갈아타면 된다. 환승 표는 케이티엑스와 에스알티 앱에 들어가서 각각 결제한다. 번거롭긴 했지만, 표를 끊고 나니 미소가 지어졌다. 그 덕에 일요일 저녁을 가족과 함께 보내고, 월요일 아침도 여유롭게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월요일 아침,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자정에 아내가 챙겨 준 해열제가 아니었으면 뜬 눈으로 아침을 맞을 뻔했다. 아내의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기차에 탔다. 송정리에 내리니 몸이 더 오슬오슬했다. 찬바람을 피하려고 휴게실에 들어갔다. 연배가 비슷한 할머니 두 분이 계셨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던 할머니가 다른 할머니에게 날씨도 추운데 율무차라도 드시겠냐고 물었다. 두 분은 처음 뵌 듯했다. 할머니는 완곡하게 사양했다. 그러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두 분 다 서울에 손주를 봐주러 간다고 했다. 자녀 집에 가려면 택시를 타야 하는데, 스마트폰을 잘 쓰지 못하니 잡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얼마 전에는 스마트폰에 카카오 택시를 깔았다가 복잡해서 지웠다고 했다. 택시를 잡으려고 한 자리에서 계속 손만 흔드는 노인을 본 적이 있다. 물론 택시는 멈추지 않는다. 대부분 예약됐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도 그러겠지 생각하니 착잡했다.   


송정리가 출발역인 에스알티는 출발 15분 전에 기차에 탈 수 있었다. 6호차 4디(D) 의자에 앉았다. 한 할아버지가 눈이 침침하다며, 좌석 번호를 봐달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폴더 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줬다. 뿌옇게 찍힌 기차표를 보니 6호차 3비(B)였다. 잠시 후 한 젊은 여자가 들어왔다. 여자는 기차표를 몇 번 확인하더니, 할아버지에게 자기 자리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옆자리로 옮겨갔다.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었다. 사진에서 10:27이라고 찍힌 숫자를 얼핏 봤던 게 마음에 걸렸다. 보면서 조금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좌석만 알려 주고 말았다. 잠시 망설이다 할아버지에게 기차표를 다시 한번 보자고 했다. 좌석 번호는 정확히 6호차 3비였다. 그런데 10시 27분 출발인 케이티엑스였다. 할아버지에게 다른 기차 타셔야 한다고 하니, 할아버지는 주섬주섬 짐을 챙겨 기차를 떠났다.


할아버지 뒤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는 큰일 날 뻔했다며, 정말 다행이라고 했다. 정말 좋은 일을 했다며 주위에 알리려는 듯 말했다. 그러면서 10시 27분 기차는 목포에서 출발한 건데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했다. 기차가 출발하면 도중에 갈아탈 수도 없어 낭패였다. 할아버지의 기차표를 처음부터 정확히 봐줬으면 좋았을 텐데, 나중에라도 바로 잡아서 다행이다. 자초지종을 모르는 아주머니는 정말 다행이라고 두세 번 반복하며 복 받으실 거라고 했다. 어쨌든 간에 누군가를 돕고 칭찬받으니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기분도 좋았다.


스마트폰이 도입되고 기술이 발달하면서 대중교통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역에 나가지 않아도 기차표를 예매하고, 시간을 바꿀 수도 있으며, 반환까지 할 수 있다. 택시도 마찬가지다. 원하는 곳에서 예약만 하면 기사가 누구인지, 요금이 얼마인지, 언제 도착하는지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반대로 스마트폰을 잘 쓰지 못하는 노인들이라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불편할 뿐만 아니라 두렵기까지 할 것이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기차표는 쉽게 구할 수 없으며, 택시는 아무리 기다려도 잡기 어렵다. 기차는 새마을호나 무궁화호 같은 한글 이름이 아니라 케이티엑스(KTX), 에스알티(SRT) 같은 영어다. 좌석도 가, 나로 해도 될 텐데 에이, 비로 돼 있다. 영어를 전혀 알지 못하면 암호 같아 보일 것이다. 대중교통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거동이 불편하고 병원을 많이 찾으며, 자가용 운전을 하기 힘든 노인에게는 더 그렇다. 누구나 노인이 된다. 노인이 더 대중교통을 쉽게 탈 수 있도록 교통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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