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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Oct 26. 2022

플스는 내 친구

플스는 내 친구


플레이스테이션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가정용 게임기다. 1994년에 일본 소니가 만들었는데, 약칭으로는 플스로도 불린다. 내가 플스를 처음 갖게 된 건 1996년, 스무 살 때였다. 대학 후배는 돈이 급하게 필요하다며, 살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어려서부터 전자오락을 좋아했던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플스를 텔레비전에 연결하고 전원을 켰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가상 세계가 펼쳐졌다. 가슴을 뛰게 하는 웅장한 시작 음과 함께 플스의 상징인 피(P)자 형 로고가 화면에 퍼졌다.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기분 좋아진다. 플스는 게임기 이상의 의미가 있다. 심심할 때면 즐거움을 주는 친구이자 여러 추억을 만들어준 애장품이다.


대학교 방학을 하면 시골 친구들은 읍내 자취방에 모여 지냈다. 친구들은 방위나 공익으로 복무하거나, 제대하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우리는 플스로 ‘위닝일레븐(축구 게임)’을 즐겼다. 이탈리아의 바티스투타, 네덜란드의 베르흐캄프 같은 유명 선수들을 줄줄 외웠다. 내 축구 실력은 발보다 손으로 하는 게 나았다. 스포츠를 좋아하지만 잘하지 못하는 내게 플스는 대리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우리는 짜장면이나 커피 내기를 주로 했다. 골이 들어가면 누군가는 환호성을 질렀고, 누군가는 한숨을 쉬었다. 직장을 찾아 각지로 뿔뿔이 흩어지면서 명절에나 만나는 사이가 됐지만 지금도 우정은 변치 않았다. 행복했던 젊은 시절을 만드는 데는 플스도 한 역할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상선 회사에 취업했다. 배를 타면, 파도뿐만 아니라 외로움과도 싸워야 한다. 망망대해를 한 달 넘게 항해하다 보면 볼거리도 읽을거리도 바닥난다. 2002년 월드컵 때도 배는 태평양에 있었다. 우리는 텔레비전 생중계가 아니라 플스 2로 축구를 즐겼다. 또래 선원들은 주말에 점심을 먹고 나면 휴게실에 모였다. 짝을 나눠 토너먼트로 우승자를 가렸다. 그 순간 우리는 월드컵에 출전한 선수이자 관중이 됐다. 그 시간만큼은 항해의 지루함도 사라졌다.


배에서 내리고 나서 플스 3를 샀다. 결혼하고 나서는 예전처럼 게임을 즐기지 않았다. 아기 앞에서 게임 패드를 잡는 것도 민망했고, 아기를 재우고 하는 것도 아내 눈치가 보였다. 게다가 게임은 어려워졌고, 순발력도 떨어졌다. 스트레스가 풀리는 게 아니라 더 쌓였다. 플스는 아기 동영상을 보는 디브이디(dvd, 디지털 비디오 디스크)가 됐고, 어느 순간에는 서랍 구석에 처박혔다. 이제는 더 이상 플스를 사지 않을 것만 같았다.


40대 초반 어느 날, 회사에서 출장을 갔다. 함께 간 후배가 숙소에 플스 4를 가져왔다. 게임은 최신 버전의 위닝일레븐이었다. 그래픽과 성능이 좋아져 진짜 축구 선수들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하지만 감각은 살아 있었다. 경기할수록 플스를 사고 싶다는 욕망도 깨어났다. 위닝일레븐을 즐겼던 사람이라면 아들과 함께 하는 상상을 한 번쯤은 했을 것이다. 나는 실행에 옮겼다. 축구를 좋아하는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은 플스를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들과 나는 지금까지 주말에 축구 게임을 한다. 작년에 중2병이 걸렸던 아들도 그때만큼은 내게 말을 걸고 환하게 웃기도 했다. 처음에는 열 번 하면 아들이 한두 번 이겼다. 이제는 반대가 됐다. 아들은 골을 넣으면 환호성을 지르거나 세레머니를 한다. 이기고 나면 진 사람이 뒷정리해야 한다며 피시식 웃으며 사라진다.   


올해 5월, 플스5를 샀다. 크게 갖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들도 나도 게임을 자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집과 관사에 플스 4가 한 대씩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최신형 플스를 살 것 같았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빨리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아내에게 70만 원 주고 게임기를 산다고 하니, 낼모레 50인데 속이 없다며 한마디했다. 아이들도 게임기를 사달라고 조른 적이 없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렇다고 크게 반대도 하지 않았다.


승진자 교육을 받느라, 한 달 후에야 물건을 찾으러 인천 게임 가게에 들렀다. 새로운 기계를 사는 건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중고로 '엘든링'도 샀다. 어렵기로 소문난 게임이었다. 무사가 되어 적을 물리치는 롤플레잉 게임이었다. 이 게임은 희한하게 죽어도 재밌었다. 집에 내려가지 않는 주말이면 네다섯 시간씩 게임을 했다. 저번 주 토요일 드디어 마지막 적만 남았다. 100번운 죽은 것 같다. 하다 보니, 밤 열한 시가 됐다. 내 실력으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자려고 누웠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이대로 자면 꿈에서 나타날 것만 같았다. 유튜브로 공략을 공부하고 칼과 같은 아이템도 새로 갖췄다. 새벽 한 시 가까이 돼서 결국 내가 이겼다.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통쾌함이었다.


40대 중반이 넘어서니 게임하는 것도 쉬운 게 아니다. 오래 하다 보면 허리는 아프고, 눈은 침침해진다. 순발력도 느려졌다. 그래서 게임을 자주 하지 않게 된다. 퇴근하고 관사에 돌아 오면 텅빈 거실에 있는 플스 5가 눈에 들어온다. 나를 외롭지 않게 해 주는 친구 같은 존재다. 심심할 때면 언제나 같이 놀아 주고, 때로는 유트브나 넷플릭스를 보여 준다. 플스 6가 나오면 또 살 것 같다. 나중에 손주와 축구 게임을 하면, 며느리가 속이 없다고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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