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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Oct 18. 2022

고양이 집사


고양이 집사
 
지난 연휴(10.8. ~ 10.10.)에는 가족이 목포에서 인천으로 놀러 왔다. 그날 아침에는 가을비가 장맛비처럼 내려서 쌀쌀했다. 밖은 살짝 어두웠고, 추적거렸다. 어디선가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너무 또렷하고 영롱해서 누군가 동영상을 틀어 놓은 것도 같았다. 아내는 아기 울음소리 같다고도 했다. 잠에서 깬 딸이 현관문에 귀를 댔다. 딸은 “아빠! 고양이예요.”라고 외쳤다. 그리고는 문고리만 서너 번 돌리다 뒤로 물러서며 "아빠가 열어 봐요."라고 했다. 울음소리가 계속되자 ‘누가 버린 건 아닐까!', '에스비에스(SBS) '동물농장'에서처럼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면 어떡하지?’하는 고민이 됐다. 내가 사는 관사는 아파트 1층이어서 길고양이 소리가 종종 들리곤 했다.

문을 살짝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이미 관리 사무소 직원 두 명이 와 있었다. 고양이는 배수관과 화분 틈 사이에 다 보이게 몸을 숨기고 있었다. 누가 봐도 집고양이라는 걸 알 수 있을 만큼 귀태가 났다. 하얀 고양이는 겁에 질린 눈망울로 사람들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자세히 보니 두 마리였다. 회색 고양이는 하얀색 고양이에 깔려서 한쪽 눈만 드러낸 채 우리를 한 번만 구해달라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선생님이 종이 상자를 들고 왔다. 고양이 앞에 내려놓으니 두 마리가 빨려들 듯이 쏙 들어갔다. 고양이는 몸을 숨길 수 있는 좁은 장소를 좋아한다는 걸 본 기억이 났다. 그 선생님에게 고양이를 키우냐고 물었더니, 고양이 습성만 안다고 했다. 아파트 경비실 앞에는 ‘고양이 찾아가세요.’라는 종이가 붙었고, 상자도 같이 놓였다.

학교에 안 가는 날엔 늦잠을 자는 아들도 바깥 일이 궁금했는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딸은 아침 일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상기된 목소리로 설명했다. 둘은 현관을 계속 오갔다. 아들은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고양이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경비 아저씨는 고양이가 불안할 수 있다며 상자를 닫았다.
 
고양이로 한바탕 소동을 치르고 나서 복도는 다시 잠잠해졌다. 비는 계속 내렸지만, 오랜만의 여행이라 집에만 있을 수는 없었다. 영종도에 갔다. 바람까지 불어 두꺼운 점퍼도 어색하지 않았다. 칼국숫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두 시가 넘었는데도, 대기 줄이 길다. 차례가 오려면 한 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아들은 예전 같았으면 이런 데 왜 데리고 냐면서, 짜증부터 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허기가 반찬이라고 입이 짧은 아들도 여러 번 젓가락을 떴다. 더 이상 갈 곳도 없어 집에 돌아왔다. 상자는 그대로였다. 버리고 간 것 아닌지 살짝 걱정도 됐다.

다음 날, 상자가 사라졌다. 집사가 데려갔을 것이다. 아들은 조금 아쉬운 듯했다. 아내에게 아들이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아내도 “이제 좀 사람 같아.”라고 했다. 중학교 3학년이 되더니 '중2병'은 확실히 나았다. 누구나 겪는 성장통인 걸 알면서도 내 자녀만은 걸리지 않길 바라는 게 부모 마음이다.

아내는 작년에 아들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다. 화부터 내면 대부분이 아들 문제였다. 나도 그런 전화를 받으면 속이 끓어올랐다. 크게 나무라고 화를 내고 싶었지만, 참고 넘긴 일도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다행이다. 때로는 감정대로 쏟아낸 말이 상처가 되어 오랫동안 아물지 않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내와 아이들은 목포행 버스를 탔다. 아들은 혼자 앉는 좌석에서 나를 바라봤다. 어느새 나만큼 커 버린 아들이 손을 흔들었다. 나도 손을 흔들며 버스가 떠나기 전 자리를 벗어났다. 눈이 촉촉해졌고, 조금 더 있으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집에 홀로 돌아온 아파트 현관은 유난히 휑했다.

고양이 키우는 사람을 집사라고 부른다. 고양이는 혼자 있을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자기 행동을 억지로 구속하는 것도 싫어한다. 경계심도 강하고 예민하다고 한다. 집사들은 고양이 습성에 맞춰 생활한다. 고양이는 사춘기 아이와 비슷한 점이 참 많다. 아이들도 주인이나 보호자가 아니라, 집사 같은 부모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아파트 경비실을 지날 때면, 두 고양이 품에 안긴 집사가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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