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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Nov 19. 2022

큰아버지의 팔순

큰아버지의 팔순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서울에 사는 큰아버지가 팔순을 맞아 남매들에게 음식을 대접한다고 하는데, 올 수 있느냐고 물었다. 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히 담긴 질문이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가겠다고 했다. 팔순이라는 의미도 있고, 오랫동안 뵙지 못한 큰집 식구와 고모들의 안부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약속한 토요일(11. 4.)이 왔다. 집사람과 달리 내 마음은 이미 정읍에 가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고향을 떠올리면 더 설렌다. 시골집은 아버지의 품처럼 포근하고, 어머니의 마음처럼 따뜻하다. 그날따라 하늘은 유난히 파랬다. 산에는 단풍이 짙게 물들었다. 좋은 노래까지 들으며 운전하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부모님은 마당에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오랜만에 큰아버지와 고모들을 만나서인지 들떠 보였다. 어머니는 걷는 게 어렵지만, 멀리서 온다고 하니 가야 하지 않겠냐며 따라나섰다.
 
식사는 큰고모와 막내 고모가 사는 부안에서 하기로 했다. 아버지에게 장소를 물으니, 마음에 안 드는 데를 잡았다고 언짢아했다. 막내 고모가 추천한 한우집인데, 손님은 많고, 자리가 좁아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어렵다고 했다. 아버지는 남매들과 밀린 이야기도 하고, 아들과 손주 자랑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약속 장소에는 우리가 먼저 도착했다. 어머니는 차에서 힘들게 내렸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한 걸음 떼는 것도 어려워했다. 장애자가 됐다며 자주 자책하는 어머니는 그 흉을 드러냈다고 생각하는지 표정이 어두웠다. 식당은 팔순을 기념하여 모일 데가 아니었다. 10여 명이 들어갈 만한 방도 없었다. 예약도 돼 있지 않다고 했다. 사촌 동생에게 여기는 아닌 것 같다고 말하니 다른 데를 찾아보겠다고 했다. 어른들을 모시는 준비가 너무 안 된 것 같아 살짝 짜증이 났다. 그래도 큰아버지를 모시고 온 정성을 생각하니 금방 누그러졌다.  어머니는 그러지 않았다. 예전 큰집에 살던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고 나서 여러 해 모신 일 때문에 안 좋았던 감정을 조금씩 드러내고 있었다.
 
결국 부안에서 순댓국집을 하는 친척 누나에게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곳을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보니 닭 요리 전문점이었다. 새로 지어진 한옥인데 내부도 깔끔했다, 옆에 찻집도 있어 식사를 마치고 나서 회포를 풀면 좋을 것 같았다. 음식은 오리와 해산물, 약초가 들어가는 해신탕으로 주문했다. 식당에는 큰집 식구와 고모들이 먼저 와있었다. 식당은 생각보다 고급스러웠다.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한적했다. 형제보다 더 친하게 지냈던 사촌 동생이 반갑게 맞았다.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도 집사람과 딸까지 같이 와 주니 너무 고맙다며 환하게 웃었다. 큰아버지의 팔순 기념 식사는 다섯 남매가 다 모이는 것만큼이나 어렵게 시작됐다.
 
아버지는 다섯 남매 중 막내로 76세다. 고모부는 다 돌아가셨지만, 고모는 모두 살아 계신다. 큰고모는 93세인데, 고모 중에서 가장 정정했다. 둘째 고모는 치매가 심해져, 내가 누구인지도 알아보지 못했다. 티는 안 났지만, 남매지간도 어렴풋이 아는 것 같았다. 셋째 고모는 몇 년 전에 고모부가 돌아가신 이후에 많이 쇠약해다. 남매 다 모여서 마지막으로 식사한 게 6년 전 아버지 칠순이었다. 남매들은 그리웠던 마음이 통했는지 매년 한 번씩은 이런 자리를 만들자고 했다. 다음에는 서로 자기가 밥을 사겠다고 했다. 둘째 고모까지도 그랬다.
 
집사람은 할머니를 많이 닮은 큰고모 옆에 앉았다. 살갑게 웃으며 이야기하고, 음식도 나눠 드렸다. 고모들은 집사람을 마음에 들어 했다. 아내를 칭찬하며 20년 전 기억도 끄집어냈다. 내가 큰집 조카들과는 달리 취직을 못 해 고모들끼리 걱정했던 일을 말했다. 내가 잘 풀린 이유는 복 많은 아내를 얻어서라고 했다. 부모님도 며느리가 칭찬받는 게 좋은 듯했다.
 
남매들은 서로 정을 나누는 데는 익숙지 않았다. 기력도 약해지고, 떨어져 지낸 지도 오래됐기 때문일 것이다. 밥을 다 먹는 데는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아버지의 기대와는 달리 큰아버지는 내년에 꼭 다시 모이자는 말만 남기고 서울로 향했다. 고모와 아버지는 양지바른 의자에 앉아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는 모두 서로의 집으로 향했다.
 
우리는 부안 해안 도로를 돌아보기로 했다. 어머니는 오랜만에 바다를 보니 좋은 듯했다. 길가에 카페에 들렀다. 아버지에게 달콤한 커피를 드렸다. 따뜻한 커피 한 모금에 아버지의 서운함도 조금은 사라진 듯했다. 어머니는 어떤 생각에선지 몸이 불편하다며 거절했던, 칠순 잔치를 하자고 했다. 손주들이 방학하는 내년 초가 좋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집에 가져가서 먹으라며, 아버지가 텃밭에 심어 놓은 파, 상추, 당근을 뽑았다. 며칠 전에 무친 김치도 한 상자 담았다. 어머니는 힘들게 걸어 나와 우리를 배웅했다. 아버지는 손녀에게 만 원짜리 몇 장도 쥐여 줬다. 부모님의 자녀를 향한 사랑은 그대로지만, 시간은 그렇지 않다. 저녁하늘은 석양으로 검불그스름했다. 나이가 들수록 고향 집을 떠날 때면 마음 한구석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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