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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Nov 25. 2022

품앗이 정신

품앗이 정신 

 
나는 시골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 오뉴월이 되면 부모님은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랐다. 부모님은 성실하고, 일도 잘해서 품앗이로는 가장 좋은 상대였다. 논밭이 집 근처에 있으면 나도 종종 부모님을 따라나섰다. 막걸리 심부름을 하면 군것질거리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른들과 함께 먹는 땟거리도 맛있었다. 품앗이 중에 좋은 음식을 내놓는 건 주인이 일꾼에게 주는 보답이자 부탁이기도 했다. 그래야 정도 쌓이고, 일의 능률도 오르며, 유능한 일손을 다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농부들은 알고 있다.
 
‘품앗이’는 일손을 의미하는 ‘품’과 서로 주고받는다는 의미의 ‘앗이’가 결합한 말이다. 국어사전에는 힘든 일을 서로 거들어 주면서 품을 지고 갚고 하는 일로 풀이한다. 농사는 때를 놓치면 수확량이 크게 준다. 가족은 물론 종족의 생존과도 직결될 수 있다. 여럿이 모여서 하면, 일의 효율은 높아지고 덜 고되다. 그러면서 얻은 지혜로 만들어진 게 품앗이다. 농기계가 많이 보급되고, 일손이 줄어들면서 품앗이는 농촌에서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약 4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직장에서 품앗이 정신 필요하다고 말하곤 한다. 나는 해양오염 사고에 대비해서 국내외 기관 및 전문가들과 협력하는 일을 하고 있다. 요즘 직장 내 세대 간 갈등이 생긴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대부분은 일을 나누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생긴다. ‘내 일이 아닌데, 왜 같이 해야 해?’ 같은 의문이 대표적이다. 물론 조직에는 개인 사무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재난 업무는 부서원이 같이 해야 할 때가 많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피해가 커지기 때문이다. 남의 ‘일’로만 보였던 게 시간이 지나면서 내 ‘일’이 될 때가 많다. 특히, 공직 사회는 그렇다. 언젠가는 내가 줬던 도움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관 간에도 마찬가지다. 정부와 민관에서는 협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협업은 단일 조직의 인적, 물적, 정보의 한계를 여러 조직과 사람이 함께 해결한다는 개념이다. 특히, 화재, 붕괴, 폭발 환경오염 사고와 감염병 확산과 같은 사회 재난 분야에서 그 필요성이 더 부각되고 있다. 사회 재난은 사회가 발달하고 복잡해지면서 그 발생과 결과 예측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대응 과정에서, 기관, 지역 간 갈등이 나타나기도 한다.해양 오염 물질은 바다의 특성 때문에 빠르게 퍼지면서 피해가 커지기도 한다. 신속하고 체계적인 조치가 방제의 성패를 좌우하는 이유다. 해양 오염 피해를 최소화하고, 국민의 재난 관리 수요를 맞추려면 반드시 협업해야 한다.  
    
우리 청은 대형 해양 오염 사고에 대비하여, 다양하게 협업하고 있다. 여러 기관이 모여 함께 훈련하고,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기술 지원 협의회 등도 운영하고 있다. 그 성과는 ‘19년에 ㄱ항에서 발생한 에스 선박사고에서 나타났다. 당시 ㅅ선박은 화학 물질을 실은 상태에서 폭발과 화재가 일어났다. 초기에 불이 끄지 않았다면, 다른 탱크에 실려 있는 화학 물질까지 폭발할 가능성도 있었다. 만약 그랬다면 주민의 인명 피해까지 있을 수 있었다. 당시 민관 전문가가 모여 신속하게 대응 방안을 마련했다. 여러 기관이 참여해 일을 나눠 역할을 다했다. 불은 열여덟 시간 만에 꺼졌다. 평소 협업 체계를 잘 갖추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청에서는 다음 달, 재난 대응 협력 워크숍을 개최한다. 담당 사무관은 내게 15분간 발표해 달라고 부탁했다. 부담은 됐지만, 흔쾌히 하겠다고 했다. 언젠가는 내가 맡고, 그에게 부탁할 일도 있다. 며칠간 발표 주제를 고민하다, 훌륭한 농부이면서 품앗이를 서로 하고 싶어 하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다음 주에는 발표 자료도 완성하고, 시나리오도 미리 짜려고 한다. 그 자리에 모인 여러 사람과 함께 품앗이 정신을 나눌 생각 하니, 맛있는 땟거리를 준비하는 농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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