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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Apr 14. 2023

형 같은 동생

형 같은 동생


그를 처음 만난 건 작년 9월 26일이다. 우리 청에서 주관하는 ‘연구 용역 전문가 자문 회의’에서, 나는 사회와 발표를 맡았고, 그는 전문가로 참석했다. 참석자를 소개하려고 명단을 살펴보니 내 이름과 끝의 한 자만 다른 사람이 있었다. 직업은 변호사였다. 누구일까 궁금했다. 그는 배낭을 메고 회의장에 들어섰다. 키는 180cm쯤 되고, 몸은 건장했다. 얼굴은 가무잡잡했다. 파마머리는 살짝 풀렸고, 진갈색으로 염색했지만, 흰머리도 듬성듬성 있었다. 서울 토박이는 아닐 것 같았으며, 변호사보다는 사업가처럼 보였다
.
회의는 내가 연구 필요성을 설명하고, 전문가들이 의견을 내는 순서로 진행했다. 발표를 잘하지도 못하는 데다 교수와 변호사들 앞이라 더 긴장했다. 말은 씹혔고, 목소리는 떨렸다. 다행히 초반에만 그랬다. 이제 참석자 차례였다. 전문가답게 다들 말을 잘했다. 그도 법률적 내용을 조곤조곤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회의 내내 스마트폰으로 ‘국가 법령 정보’를 검색하고 관련된 자료를 찾아서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회의를 잘 마치고, 만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딱딱했던 분위기는 편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해졌다. 거기서도 용역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었다. 황 변호사였다. 그는 발전적인 방안을 논의해 보자고 했다. 거기에 동조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도 이쯤 했으면 됐다고 생각했는지 참석자들과 술잔을 여러 차례 주고받았다. 나는 운전을 맡기로 해서 구석에 앉았다. 황 변호사 앞에서 술을 마시던 서기관님이 그가 나와 동향이라고 했다. 그는 목포 출신으로 ㅅ대학교 법학과를 나왔다고 했다. 이름도 비슷한 데다가 동향이라니 더 가깝게 느껴졌다. 나는 그의 옆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중학교까지 목포에서 다녔고, 부모님은 목포에 산다고 했다. ‘홍어 애국’을 좋아하고, ‘사우(전라도 장모님이 사위를 부르는 말)'의 의미도 알아서인지 서로 통하는 게 많았다. 그는 내게 쓴소리도 했다. 프레젠테이션은 잘했지만, 내용에 깊이가 없다고 했다. 기분이 살짝 나빴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나는 그에게 고향 동생인데, 편하게 말을 놓으라고 했다. 적어도 서너 살은 많아 보였기 때문이다. 명문대 출신 변호사와 친해지면 나쁠 게 없다는 생각도 했다. 그는 손사래를 쳤다. 헤어지면서 앞으로 형님으로 모시겠다고 하니, 자기가 더 어릴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양띠라고 했다. 십이간지를 잘 몰라 나이 계산이 안 됐다. 알았더라면 67년생으로 생각했을 것 같다.

며칠 후, 내 메일함에 그의 회사에서 보낸 법률 뉴스레터가 와 있었다. 내 명함의 이메일 주소를 본 모양이다. 읽어 보니, 내용이 알찼다. 갑자기 그의 나이가 궁금했다. 뉴스레터 상단에 회사 이름을 눌렀더니 회사 홈페이지로 연결됐다. 그의 이름을 검색하니, 그의 얼굴과 함께 학력, 경력이 나왔다. 그는 1979년생이었다. 나보다 두 살이나 어렸다. 그는 대학에 다닐 때 사범 시험에 합격한 수재였다. 동생에게 형님이라고 한 게 민망해 헛웃음이 났다. 그는 종종 문자를 보내왔다. 자기가 '22년 국내 우수 변호사로 선정된 기사, 법률 소식 같은 것들이었다.

그를 다시 만난 건 올해 초였다. 팀원이 ‘기술 지원 협의회’를 재구성해야 하는데, 법률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했다. 딱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는 흔쾌히 하겠다고 했다. 그후 우리 국의 든든한 조력자가 됐다. 이제는 한식구라며, 모든 일을 적극적으로 돕는다. 강의와 기고문을 부탁해도 거절하지 않는다. 강의료와 원고료가 얼마인지 묻지도 않는다.

3월 초, 그에게 법률 특강을 부탁했다. 이번에도 시원하게 답했다. 그는 배낭을 메고 30분 전에 강의장에 들어섰다. 의자에 앉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긴장된 표정이 역력했다. 국장님과 많은 직원이 듣는다고 하니 더 그런 듯했다. 의외였다. 유튜브에 있는 그의 강의는 너무 완벽했기 때문이다. 그는 강의가 시작되자 돌변했다. 어려운 내용이었지만, 모든 직원이 빠져들었다. 깊이 있는 발표라는 게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았다. 몇 분 지나지 않은 것 같았는데, 마칠 시간이 됐다. 내가 모신 강사가 잘하니 내 어깨에도 힘이 들어갔다. 국장님은 “시간이 없어 어쩌야스까!”라며, 전라도 사투리가 섞인 농담을 했다. 그러면서 황 사무관은 어떻게 이런 분을 모셨냐고 했다. 직원들도 황 변호사와 내가 어떤 관계인지 궁금해 했다. 나는 그냥 웃고 말았다.

황 변호사는 업무가 끝나고 같이 식사 하자고 했다. 나도 시원하게 답했다. 그는 청사에서 퇴근 시간까지 두 시간 넘게 기다렸다. 술자리에서 그는 폭탄주 서너 잔을 빠르게 들이켰다. 그러면서 기분이 너무 좋다고 했다. 그는 강의를 하려고 3주나 준비했다고 했다. 그에게도 직원들의 눈빛과 감정이 전달됐다고 했다. 그는 갑자기 나를 “형”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부르니 어색했다. 그는 아직도 나보다 서너 살은 많아 보인다. 직원들에게도 그렇지 않냐고 물어보니, 몇 명은 한참을 머뭇거렸다.

그는 내 생각과는 다르게 ‘개천의 용’이었다. 아버지는 신안에서 농사를 지었고, 형제도 여럿이라고 했다. 어려서는 모내기도 도왔다고 했다. 이야기를 나눠 보니 어려운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도 알았다. 최근 일어난 학교 폭력 사건도 안타까워하고, 사회의 부정 부패를 비난하기도 했다. 요즘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는 제 잘난 맛에 사는 몇몇 그의 동문과는 차원이 다른 듯했다.

황 변호사는 가끔 ‘형, 잘 지내요?’라며 안부 문자를 보낸다. 아직도 그가 '형'이라고 부르면 어색하다. 그는 내게 책을 선물했다. 술자리에서 어떻게 하면 ㅅ대학교에 갈 수 있냐고 물으니, 영어책 한 권을 보내겠다고 했다. 그냥 지나가는 말인줄 알았다. 그래서 더 감동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직원들과 가족에게 자랑했다. 그에게 문자도 보냈다. '아들이 이 책을 보고 잠룡(아들이 다니는 고등학교 상징)에서 황 변호사처럼 익룡이 됐으면 좋겠다.’라는 내용이었다. 답장이 왔다. ‘제가 형님이 좋아서 보낸 겁니다. 우리 조카 잠룡, 동기 부여 갑시다.’라는 문자였다. 그는 실력뿐 아니라 인성도 갖춘 '용'이다. 황 변호사 같은 사람이 더 필요한 시대가 됐다. 형 같은 동생, 그가 더 높이 날아오르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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