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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Apr 21. 2023

(캐나다-1) 사진 속 그곳

사진 속 그곳


지난 2월 어느 날이었다. 딸이 거실에 누워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아내는 딸에게 이제 곧 중학생인데 빈둥거리지 말고 책이라도 읽으라고 나무랐다.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딸은 징얼대며 자기 방에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딸이 호들갑을 떨며 엄마를 불렀다. 아내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러자 딸은 “아빠랑 여자친구랑 찍은 사진이 있어요.”라고 외쳤다. 본능적으로 내 몸이 먼저 반응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크게 문제가 될 일도 없었다. 게다가 몇 번이나 봤던 사진첩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있을 불상사를 막으려면, 아내보다는 먼저 봐야 했다. 내가 일어서자, 아내도 곧 뒤를 따랐다.


딸은 사진을 가리켰다. 나를 보며 고소하다는 듯이 웃었다. 당시 대학교 2학년이던 나는 여자 친구와 놀이동산에 앉아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녀는 ‘찐 여사친(친구 사이로 지내는 여자)’이었다. 지금은 연락을 안 한 지 25년도 넘었다. 아내는 오래전 그 사진을 봤었다. 딸의 예상과는 달리 큰 반응이 없자 재미없다는 듯 다음 장으로 넘겼다. 나는 딸 옆에 앉았다. 몇 장을 넘기자 다른 사진보다 바랜 사진 한 장이 눈길을 끌었다. 나는 캐나다의 이름 모를 거리에 서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상선을 탈 때 찍은 거였다. 한국에서 17일쯤 항해하면 도착하는 곳이다. 그곳을 잊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차원이 다른 공기였다. 너무 상쾌해서 머리는 맑아지고, 코는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사진 속 나는 지금보다 10kg은 빠져 보였다. 외형으로 보면 내 인생의 황금기였다. 딸에게 “이때는 정말 잘생겼지?”라고 물었다. 딸은 답을 하지 않았다. 관심조차 없어 보였다. 그러고는 지금까지 책 봤으니까, 친구하고 놀다 오겠다며 나가 버렸다. 나는 그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찍었다. 다시 그곳에 가고 싶다는 마음도 함께 담았다.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우리나라에서 ‘제22차 북태평양 해양 치안 기관장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는 매년 한국, 캐나다, 일본, 미국, 중국, 러시아가 돌아가면서 개최한다. 코로나19가 퍼진 2020년 이후부터는 영상회의로 열렸다. 우리 과는 위기 대응 그룹 의장국으로 그룹의 회의를 진행한다. 의장은 대외 협력팀장이 맡는다. 그게 나였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영어 회의이다 보니, 팀원들에게 맡겨 놓다시피 했다. 마지막 총회 때는 청장님이 참석하니 사무관급이 발표하라고 했다. 다행히 동시 통역이 지원됐다. 미리 준비해 둔 스크립트를 또박또박 자연스럽게 읽었다. 쉬는 시간에 캐나다 대표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는 다음 회의기를 인계받으려 참여한 제복을 입은 백발의 여자 군인이었다. 그는 발표를 잘 들었다며, 악수를 했다. 인사치레였겠지만, 기분은 좋았다. 청장님은 뒤풀이에서 내년에 캐나다 가는 직원은 좋을 거라고 했다. 행사 개최지가 아름다운 항구 도시 빅토리아였다. 조건은 있었다. 코로나 19가 풀려야 했다. 게다가 나는 2023년도 정기 발령에서 목포로 가기를 희망했다.

 

2023년 2월 발령장에 내 이름은 없었다. 몇 달 전에 한 해만 더 고생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고집을 부려봤자 힘만 뺄 것 같았다. 조직이 원하면 남아 있겠다는 진정성 없는 대답으로, 본청 근무는 1년 연장됐다. 그리고 올해 3월, 캐나다에서 대면 회의를 개최한다고 연락이 왔다.

 

우리 과는 의장국 역할을 해야 해서 두 명을 배정받았다. 가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이번에도 영어가 걱정이었다. 담당자인 하 주무관에게 부담된다고 했더니, 회의는 자신이 알아서 진행할 테니 같이 가자고 했다. 하반기에는 청장님이 참석하니, 그룹 회의 결과를 발표하려면 미리 가서 분위기를 익혀야 한다고 했다. 이 자리에 앉은 이상 내가 가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멍하니 앉아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의장으로서 인사말을 하고 회의 진행을 하 주무관에게 넘겨주겠다고 했다. 3월에 했던 필리핀 해양오염 지원 사례도 발표하기로 했다. 총회에서 하는 분임 회의 결과 발표는 당연히 내 몫이었다. 번역기를 돌려 가며, 파워포인트를 만들었다. 영어 발표 시나리오도 짰다. 하 주무관에게 맞는지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어려운 영어 단어는 한글로 발음을 적었다. 우리나라 말로 하는 발표도 보고 읽는 사람이 많다는 거로 마음을 다잡았다. 영어를 잘하는 친구에게 발음이 어색하지 않은지 들어 달라고 했다. 영어를 잘하지도 못하는 데다가 오랜만에 하니 발음도 씹히고 목도 아팠다.

 

지난 토요일(4. 15.)에 심한 독감에 걸렸다. 일요일은 종일 누워만 있었다. 월요일에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환절기라 감기에 많이 걸린다고 했다. 그날 수액을 맞았다. 수액 병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보니, 몸은 힘들었지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국 날(4. 23.)이 다 돼서 아팠거나, 코로나라도 걸렸더라면 출장을 못 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몸은 며칠 후 깨끗이 나았다.

 

캐나다에 가 본 직원들에게 사진을 보여 줬다. 밴쿠버의 가스 타운 같다고 했다. 항구와 가까운 도심이었다. 유튜브로 찾아보니 건물과 거리가 비슷했다. 우리 대표단은 첫날 밴쿠버에 머문다. 이동 일정 때문에 오후에는 자유 시간이 주어진다. 28년 전, 사진 속의 그 장소를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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