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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May 21. 2023

어떤 멘토가 될 것인가?

방송인 유병재는 <<블랙코미디>>에서 멘토를 고르는 웃픈 방법을 제시한다. 그는 ‘너무 멋있는 사람’이 아니라, ‘죽었으면 죽었지 절대로 닮고 싶지 않은 사람’을 멘토로 삼으라고 했다. 좋은 거 더 하려고 하지 말고 후진 것만 빼도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이유다.


그의 방법을 따라 하자면 우리 사회본보기로 삼을 만한 인물이 너무 많. 요즘 뉴스는 그가 말한 멘토들이 대부분을 채운다.  '눈에 보이는 거짓말을 창피한지도 모르고 당당하게 하는 사람', '그 거짓말을 웃기지도 않는 말로 포장하여 감싸는 사람', '국회 질의 중에도 돈 버는 데 몰두하는 사람' 등 다 대기도 버겁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직장인 커뮤니티에는 상사의 갑질을 토로하거나, 행동을 비난하는 글이 많이 올라온다. 우리 회사도 다를 바 없다. 동료들과 술을 마시다 보면 퇴직자 이야기가 나올 때가 있다. 대부분 뒷담화다. 그 주인공들은 입이 거칠거나, 지갑을 쉽게 열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후배들을 술자리에 데려가 정지된 카드를 당당하게 내밀던 일은 지금도 전설처럼 내려온다. 그분은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우연이 겹치면 고의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악의적인 능력이지만, 많은 사람이 협동하려면  필요한 게 '뒷담화'라고 했다. 누구를 신뢰할지 믿을 만한 정보가 있으면 더 큰 무리로 확대할 수 있고, 이는 사피엔스가 더욱 긴밀하고 복잡한 협력 관계를 발달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유병재가 말한 멘토를 뒷담화하면서 사회가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뀐 일이 많다. 몇 년 전, 땅콩 때문에 비행기를 회항시켜 갑질이라는 사회 부조리를 드러내, 직장 문화에 큰 혁신을 일으킨 그분처럼 말이다.

 

얼마 전, 캐나다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했다. 4개국(한국, 미국, 일본, 캐나다) 의장단이 처음 모인 자리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사람이 있었다. 미국 해안경비대의 단장인 캡틴(대령 상당의 계급), 루산이었다. 유에프씨(UFC) 선수라고 해도 믿을 만큼 다부진 체격의 50대 중반 흑인이었다. 누가 봐도 고위급이라고 생각할 만큼 권위와 품위가 느껴졌다. 그는 우리가 봐 왔던 높은 직급의 사람들과 행동이 달랐다. 식당이나, 호텔에서 만나면 먼저 인사하고, 웃으면서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대했다.


회의 마지막 날, 총회를 했다. 루산은 미국 단장으로 대표 인사를 하고, 합동 작전 그룹 의장으로 회의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스크립트 없이 유창하게 프레젠테이션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부하 직원이 만들어 준 시나리오의 토씨 하나를 두고 시간을 끌거나, 부하 직원을 타박하는 걸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게 현실이다. 그의 발표에는 철학과 지식이 담겨 있었다. 50대 중반인데도 잘 관리한 몸과 얼굴, 누구에게나 먼저 다가가는 친절함, 유창한 언변, 부하를 생각하는 마음마저 완벽했다. 미국에서 온 메건에게 최고의 리더라고 했더니,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짧은 시간에 한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는 없겠지만, 내게 깊은 여운을 줬다. 한국에 돌아와 유튜브를 찾아보니, 미국의 훌륭한 리더십을 갖춘 사람을 소개하는 영상에 그가 나왔다.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눈은 누구나 비슷한 것 같다.


우리 회사에도 비슷한 선배가 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각 다르다'는 톨스토이의 말을 인용하자면, 좋은 리더도 비슷한 게 많다. 직장에서 잘 나가는 사람을 보면, 대부분 상사를 극진히 모신다. 문제는 부하에게도 그만큼의 대접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 간극만큼 갈등은 커진다. 그 선배는 달랐다. 의전을 잘하고 업무 역량이 뛰어나 상사로부터 인정받았다. 자상하고 잘 웃으며, 업무 지시가 명확해 후배도 많이 따랐다. 자기 관리가 철저하고 자기 계발도 꾸준히 한다. 그 능력을 인정받아 선배들보다 승진도 빨랐다. 그래서 질투나 시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유는 단 하나, 선배들을 제치고 너무 앞서 나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동료는 그럴 자격이 있다고 평가한다.  


유병재가 제시한 사람을 멘토로 삼으면, 개인과 조직, 그리고 사회의 발전은 더딜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어떤 멘토가 되어야 할까? 후배들 술자리에서 뒷담화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는 않다. 조만간 그 선배를 모시고 동료들과 치킨을 안주삼아 맥주를 마실 계획이다. 내가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하려고 다. 선배이고 상사라고 해서 계속 베풀기만 바라는 것도 맞지 않다. 가끔은 상사에게 정성도 보여야 한다. 그 마음만큼 좋은 멘토는 더 많은 것을 내어 준다. 20년 직장 생활을 하며 얻은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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