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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Nov 25. 2023

딸의 사춘기

딸의 사춘기


요즘, 딸은 잘 때가 가장 예쁘다. 부모의 말을 가장 잘 따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딸이 잠들면 집에서 큰소리와 잔소리가 사라진다. “스마트폰 그만 봐라.”, “공부 좀 해라.”, “그만 놀고 집에 와라.”라는 말들이다. 아내의 전화는 대부분 딸의 행동을 지적하는 것으로 시작해 한숨으로 끝난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아빠”를 외치며 달려와 가랑이를 붙잡던 천사 같은 아이는, 이제 아빠를 멀뚱멀뚱 쳐다보는 사춘기 중2병 환자가 됐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면 딸은 아홉 시가 넘어서까지 잔다. 아내는 아침을 먹게 딸을 깨우라고 했다. 오랜만에 딸의 방에 들어갔다. 방에는 서예 작가가 써 준 딸의 좌우명이 붙어 있다. ‘놀 땐 놀고, 할 땐 하자. 그래야 성공하기 때문이다.’라는 문구다. 문제는 '놀 땐 놀자'만 실천하는 데 있다.


딸은 곤히 자고 있었다. 곁에 있는 건 인형이 아니라 아이폰이다. 딸은 아무런 근심 없이 편해 보였다. 듣기 싫은 소리를 안 들어도 되는 지금이 딸에게도 천국일 게다. 딸은 젖살이 빠져 소녀 같지만, 자세히 보면 아직도 아이 티가 남아 있다. 깨우려고 살짝 건드렸더니, 오만상을 찌푸린다. 그러고는 짜증을 내며 얼굴을 이불로 감싼다. 이쯤 되면 아내에게 욕을 먹더라도 포기할 수밖에 없다. 다 자거나, 배가 고플 때까지 기다리는 게 최선이라는 걸 아들을 키우며 학습했기 때문이다.


몇 수저를 뜨자, 딸과 아들이 차례로 나타난다. 한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있다. 둘은 카톡부터 확인한다. 딸은 틱톡으로 짧은 영상, 아들은 유튜브로 축구 경기를 본다. 엄마에게 한소리를 들어야 스마트폰을 손에서 뗀다. 한심해 보이지만, 나도 종종 아내에게 같은 말을 듣는다. 성인도 자제하지 못하는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싶다. 아내와 딸은 스마트폰 인터넷을 두 시간으로 제한하는 타협점을 찾았다. 딸은 종종 스마트폰을 맘대로 쓸 수 있는 자유를 달라며 투쟁한다. 나는 스마트폰 한 시간을 하려면 책도 그만큼 읽어야 하지 않겠냐며 딸을 타이른다. 물론 듣는 시늉도 안 한다. 아이들이 있을 때는 책 읽는 걸 보여 주려고 노력한다. 쉽지는 않다. 유튜브를 많이 봐서인지 문해력도, 집중력도 떨어졌다. 그래도 노력하려고 한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딸은 수학 학원을 끊었다. 아내 친구인 원장의 권유였다. 딸이 하고 싶을 걸 해 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돌려 말했다. 얼마 전에는 몇 년간 다니던 영어 학원을 그만두고 다른 데로 옮겼다. 거기도 얼마 다니지 못하고 다른 곳을 찾았다. 공부하기 싫으면 다 그만두라고 했더니, 지금 성적도 바닥인데, 영어 학원까지 안 다니면 어떻게 되겠냐고 역정을 낸다. 자신의 목표를 연세대 입학이라고 적는 딸을 보면 귀여우면서도 철이 없어서 걱정스럽다. 수학은 포기하더라도, 영어는 꾸준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고맙기도 하다. 딸의 꿈인 스튜어디스나, 내가 바라는 공무원이 되려면 영어는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대입 수능에서 수학 세 문제만 어렵게 맞혔지만, 지방 국립대를 졸업하고 공무원이 되어 잘살고 있다. 중학교 때부터 수학을 포기한 건 약간 아쉽지만,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건 후회가 막심하다. 딸의 수학 공부는 아내가 가르친다. 가끔 누구를 닮아 이렇게 이해력이 달리는지 모르겠다며, 나를 째려본다. 그럴 때는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다.


딸은 중학교 1학년이 되면서 용돈 인상 협상을 여러 번 했다. 그러면서 한 달 용돈을 5만 원까지 올려 놨다. 물론 일주일이면 바닥난다. 월초가 되면 마라탕, 메가커피, 다이소, 코인 노래방, 인생 네 컷 사진관을 순회 방문한다. 용돈이 다 떨어지면 선불을 요구한다. 아내에게는 잘 통하지 않는다. 우리 부부는 딸이 소비 욕구가 크고 낭비벽이 있다고만 생각했다. 지금도 용돈을 받지 않는 고등학생 아들과 비교됐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인터넷 기사로 알파 세대(2010년 이후 태어난 세대, 완전히 새로운 세대라는 의미)의 특징을 읽었다. 우리 딸의 행동 양식과 너무 똑같아서 깜짝 놀랐다. 우리 딸이 특별한 게 아니라, 우리가 딸을 너무 몰랐던 거였다. 딸은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한다. 그래서 저녁 아홉 시가 되어서야 집에 온다. 가끔은 남자아이들과도 어울려 노는 것 같다. 학교에는 담배를 피우는 친구들도 많다고 한다. 딸은 가끔 "그렇게까지 엉망으로 살진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고 엄마를 안심시킨다. 우리는 사랑하는 딸이 그 약속을 잘 지키리라 믿고 있다.


부모들은 사춘기 자녀들과 갈등이 많다. 애증의 관계라는 말이 딱 맞을 것 같다. 주변에는 정도를 넘어서 학폭과 같은 문제들로 부모의 속을 썩이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쯤 <부모 반성문>을 쓴 이유남 교장선생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때 선생님은 아이들이 학교에 잘 다니는 것만 해도 고마워하라고 했다. 그 말이 지금에야 십분 이해된다. 아이들의 중2병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낫는 병이라고는 하지만, 부모의 마음은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것 같다. 많이 엇나가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글을 마치려니 신영복 선생님의 <여름 징역살이>의 한 문단이 떠오른다. 여름에 징역을 살면 옆 사람의 체온 때문에 그 사람이 미워지는 걸 이겨내는 지혜를 은 글이다.

[오늘내일 온다고 하던 비 한 줄 금 내리고 나면 노염도 더는 버티지 못할 줄 알고 있으며, 머지않아 조석의 추량(가을의 서늘한 기운)은 우리들끼리 서로 키워왔던 불행한 증오를 서서히 거두어가고, 그 상처의 자리에서 가족(원래는 이웃임)의 ‘따뜻한 가슴’을 깨닫게 해 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혜윤이도 이 시간을 잘 지내고 나면, 가족의 따뜻한 가슴이 있었다는 걸 깨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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