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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Mar 16. 2024

아들의 따스한 마음

아들의 질풍노도는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잦아들었다. 마음이 평안해지자 자신의 미래도 다시 그려 본 듯했다. 아들은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어느 날,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어린 시절 처음 탔던 비행기에서 기장이 영어로 안내 방송하는 게 멋있었나 보다. 그러면서 공군사관학교에 들어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아들은 꿈이 생기자 눈빛부터 생기가 돌았다. 고등학교 기숙사에도 들어갔다. 통학하면 피곤하고 나태해진다는 게 이유였다. 학교 부회장과 반장이 돼서 사관학교 입시에 필요한 리더십도 키웠다. 체력 검사는 중학교 1학년까지 검도를 했고, 주말이면 축구를 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학기 말에는 성적도 꽤 올랐다. 꿈을 이루려고 도전하는 아들을 지켜보는 건 뿌듯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커졌다.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엄마가 올 때까지 두어 시간씩은 혼자서 책을 읽었다. 로마 신화나 역사책을 좋아했는데, 다 읽고 나면 내용을 조리 있게 설명했다. 독서 때문인지 아들은 일기도 잘 썼다. 읽다 보면 감각적이고 빼어난 표현을 써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눈이 잘 안 보인다고 했다. 어두운 데서 책을 읽다가 시력이 크게 나빠진 것이다. 아들은 그때부터 안경을 썼다.      

    

아들이 목표를 말했을 때, 우리는 아들의 눈부터 바라봤다. 열심히 해 보라고는 했지만 내심 불안했다. 아내는 사관학교 시력 검사 기준을 꼼꼼히 살폈다. 그러고는 에둘러서 다른 길을 찾아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아들은 쉽게 포기하지 못했다. 공군사관학교에서 시력 검사 기준을 완화할 계획이라는 뉴스는 아들에게 한 줄기 빛이었다. 집사람은 아들이 외사도 있는데, 그게 걱정이라고 했다. 아들의 눈병 때문에 들른 안과에서도 같은 말을 했다. 의사는 혹시나 모르니 정밀 검사를 받아 보라고 했다. 아들은 그만두더라도 검사는 받아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야 아들도, 우리도 후련할 것 같았다.


며칠 전, 아내는 아들과 함께 안과에 갔다. 아들은 아침부터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짐작하고 있는 결과보다는 아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크게 상심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결과는 검사를 시작한 지 채 5분도 지나지 않아서 나왔다고 한다. 아내는 아들이 ‘실의에 빠졌다’라는 문자를 보냈다. 짧은 문장에서 아들의 얼굴이 그려졌고, 마음이 느껴졌다. 그래서 더 안타까웠다. 아내는 카톡으로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 때 자신의 꿈을 주제로 쓴 시를 보내왔다.


우리 동네 의사 선생님처럼

                                                                                황00

병원 문을 열었을 때 웃으며 반겨주는 우리 동네 의사 선생님

진료할 때 따스한 눈빛과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 마음까지 치료한다

누구에게도 친절한 의사 선생님처럼

아픈 곳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치료해 주는 의사 선생님이 되고 싶다


승자의 주머니엔 꿈이 담겨있고

패자의 주머니엔 욕심이 담겨있다

나의 주머니에 담겨있는 꿈

우리 동네 친근한 의사아저씨


돈만 보고 달리는 의사아저씨가 아닌 봉사의 마음으로

포기하지 않는

따스한 의사아저씨가 되고 싶다

아프고 힘든 친구들은 저에게로 오세요

저는 우리 동네 따스한 의사아저씨입니다


아들은 초등학교 때 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읽고 의사도 꿈꿨다. 지금 성적으로는 의대에 가는 건 벅차다고 했다. 이제 중학교 때 꿨던 비행기 조종사란 꿈도 이룰 수 없게 됐다. 아들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엄마의 말을 들으면서 어느 정도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들은 2학년 때도 반장이 됐다. 친구들이 하라고 해서 하게 됐다며 덤덤하게 말했다. 아들은 새로운 담임 선생님도 만났다. 담임 선생님에게 꿈을 접은 이유를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진학 방향과 미래를 상담했다고 했다. 대학 입시가 다가올수록 아이들의 목표는 성적에 맞춰 정해진다.


아들은 아직 또렷한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나는 아들을 믿는다. 그리고 응원한다. 아들의 따스한 마음만은 아직 식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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