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2일의 밤공기는 선선한 바람을 간간히 몰고 왔다. 풀벌레도 잔잔하게 우는 걸 보니 가을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천천히 스며들고 있다. 게다가 오늘은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한다는 처서다. 며칠 전만 해도 에어컨 없이는 잘 수 없는 밤이 계속되더니, 그 기운도 확연히 수그러들었다.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회사 책장에 꽂혀 있다. 그중에서도 '여름 징역살이'를 종종 읽는다.내가 좋아하는 문장이 있다.
'오늘내일 온다 온다 하던 비 한 줄금 내리고 나면 노염(老炎, 여름이 다 가도록 식지 않는 더위)도 더는 버티지 못할 줄 알고 있으며, 머지않아 조석의 추량(秋涼 , 가을의 서늘한 기운)은 우리들끼리 서로 키워왔던 불행한 증오를 서서히 거두어가고, 그 상처의 자리에서 이웃의 따뜻한 가슴을 깨닫게 해 줄 것임을 알고 있다.
선생님이 말한 그날의 시작은 처서가 아닐까 싶다.
기숙사에서 지내는 고등학생 아들이 집에 왔다. 다음 날 수련회가 있다며, 머리를 단정하게 깎고 왔다. 아내와 딸은 군대에 가냐며 놀렸지만, 아들은 오랜만에 친구들과 놀러 갈 생각에 흥얼거렸다. 새벽에는 내가 제주도 가는 배를 타는 데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다. 여섯 시 40분에 맞춰 놓은 알람이 울렸다. 깨우지 않으면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꿈쩍도 않는 아들도씻을 준비를 했다. 아내는 치즈와 달걀 프라이를 얹은 토스트를 만들었다. 오랜만에 느껴 보는 분주한 아침이다.
아들은 올해도 고등학교 학생회장 선거에 나갔다. 선거 전날 중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친구가 찾아왔다고 했다. 1학년 때 전교 부회장이었던 아들은 2학년 때는 공부에 더 집중해야 한다며 선거에 나가지 않을 요량이었다. 아들 친구는 "나도 태어난 김에 임원이라는 걸 한 번은 해야 하지 않겠니? 주원아! 한번 같이 해보자."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아들도 그 부탁은 거절할 수 없었나 보다. 아들은 선거 전날에도 머리를 손봤다. 전교생 앞에서 연설해야 한다면서. 아들은 선거에서 45% 가까운 표를 얻어 학생회장에 당선됐다. 이번 수련회는 학생회 임원들과 선생님들을 포함해 스무 명 가까이 함께 간다고 했다.
차에서 유튜브에 담아 놨던 음악을 틀었다. 최신 팝송을 모아 놓은 건데, 좋은 노래가 계속 나왔다. 아들은 뒷자리에서 콧노래를 불렀다. 항구에는 제주도로 가는 대형 여객선이 접안해 있었다. 아들은 내리면서 무뚝뚝하게 한마디 했다."나 간다요."
아들을 내려 주고, 회사에 오는데, 실실 웃음이 났다. '간다요'면 아들이 어렸을 때 존댓말을 배우면서 문장 끝에 '요'만 붙이던 말투였다. 나만큼 컸고, 행동도 어른스러워졌지만, 아직 아이는 아이인가 보다.그래도 너무나 잘 커 준 아들이다.
나는 아들이 우리 아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한 적이 몇 번했다. 아내도 그렇다고 했다. 사위였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욕심 때문이다. 성품이 어질어서 남을 배려하는 착한 아이다. 법 없이도 살 수 있을 것 같다고나 할까.
아들도 누구나 겪는 성장통인 사춘기를 보냈다. 지나고 보니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너무 수월하게 넘겼지만, 처음 겪는 부모 처지에서는 힘들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주말부부로 떨어져 살다 보니, 아내 혼자 그 모든 일들을 감내해야 했다. 초등학교 졸업식 때 지역 국회의원 표창까지 받았던 아들의 중학교 성적은 놀라웠다. 등수로는 세 자릿수였다.
이제 아들은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과정 중의 하나인 입시를 1년 반쯤 앞두고 있다. 우리 부부는 아들에게 공부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어른이 돼서 사회에서 제 몫을 충분히 해 낼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아들의 고등학교 등수는 한자리 수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해도 지방 일반 고등학교에서 원하는 대학교, 학과에 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가끔은 개천에서 용이 될 수 없는 교육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아들의 인생을 절기로 나누자면 지금은 처서가 아닐까 싶다. 무덥고, 후덥지근했던 사춘기를 슬기롭게 이겨내고 잘 커주었다. 가을이 오기 전에 한두 번의 태풍을 더 이겨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더 단단해지겠지. 풍성한 열매를 얻을 그날까지 아들을 응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