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떠졌다. 분명, 뜬 게 아니라 떠진 거다. 새벽 세 시. 몸은 더 자고 싶다는데, 뇌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둘 간의 충돌과 갈등!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잠시 눈을 감고 깊게 자지 못하는 이유를 떠올려 보았다. '나이 탓일까?', '오후 늦게 마신 커피 탓일까?' 요즘 나이 먹었다는 걸 사소한 데서 실감한다. 건강에 관심이 생겨서 유튜브를 자주 보는데, '50대 건강에 좋은 운동'을 검색한다. 아직 50이 되려면 2년이나 남았지만, '48살'보다는 '50대'로 찾아보는 게 자료도 많고, 정확할 것 같다. 나이, 카페인, 스마트폰까지 많은 게 내 수면을 방해한다. 굳이 근원을 찾자면 모든 게 내 탓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오늘은 일하지 않아도 되는 광복절이라는 거다.
며칠 전, 서무가 난처해하고 있었다. 도에서 여는 광복절 행사에 우리 과 두 명이 가야 하는데, 다들 눈을 피한다고 했다. 서무에게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내 이름을 넣으라고 했다. 스무 살이나 어린 직원은 활짝 웃었다. 아내에게 광복절 오전에 일이 생겼다고 했다. 아내는 그 시간에 눈썹 시술을 어렵게 예약했다고 말하지 않았냐고 역정을 냈다. 오후에는 여수로 가족 여행도 잡혀 있었다. 이미 온갖 자비로운 척했고, 서무에게 고맙다는 말까지 들었는데, 다시 못 가겠다고 하는 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아내에게는 어쩔 수 없이 내가 꼭 가야만 하는 행사라고 둘러댔다. 그리고 한 번쯤은 행사에 가보고도 싶었다. 특히, 올해는 더 그랬다.
48년 살면서, 내게 광복절은 공휴일, 그 이상도 이하의 의미도 아니었던 것 같다. 하루 쉬는 날, 곧 을지훈련이 시작된다는 걸 떠 올리는 날, 곧 선선한 바람이 불 걸 기대하는 날, 딱 그 정도였다. 광복절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해가 있었을까? 요즘 보면 나라가 국민을 애국자로 만들고, 역사를 공부하게 한다.
행사가 열리는 도청 대강당에는 이미 여러 기관과 단체에서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연단에서는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상 받을 사람들이 연습하고 있었다. 우리 청에 배정된 좌석에는 일찍 온 직원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나도 뒤쪽에 한 자리를 차지했다.
가장 먼저, 유심히 본 건 현수막이었다. 얼마 전 한 청문회에서 국회의원이 증인에게 물었다. "내일은 제 몇 회 광복절인가요?"가 질문이었고, "광복절, 건국절 관련해서 말씀하시기 때문에 그 문제에 답할 수 없다."라는 게 답변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쓴웃음이 났다. 너무 쉬운 질문이었을 것 같은데, 나는 답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수막에는 그 답이 '제79주년'이라고 또렷하고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1945년 광복했으니, 당연한 건데, 너무 관심이 없었다. 한편으로는 창피하기도 했다.
사회자의 인사로 행사가 시작됐다. 자신의 이름을 소개했는데, 대학 동기였다. 도청 총무팀장이라고 소개한 그 친구와는 교류는 거의 없었지만, 이름은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어쩐지 연습할 때부터 낯이 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연습을 많이 해서인지 떨지도 않고, 능숙하게 진행했다. 참석자들이 다 같이 국기에 경례를 하고 애국가를 불렀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오길 잘했다. 광복회 축사에서는 최근 불거진 논쟁이 여실히 담겨 있었다. '광복과 건국', 일반 국민은 쉽게 개념 정립할 수도 없고, 어떤 게 옳은 건지 판단하기도 어려운 문제다. 광복절이라면, 나라를 다시 찾은 어쩌면 국가에서 가장 행복하고 영광스러운 날을 기념하는데, 양 편으로 갈라져 대립하는 게 안타깝다.
기념식에서는 여러 공연이 열렸다. 정명여고 학생들의 "아름다운 나라" 합창은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다. 가사를 음미하면서 들었는데, 가슴에서 무엇인가 몽글거렸다. 아마 이런 게 애국심인가 보다.
* 참 아름다운 많은 꿈이 있는 이 땅에 태어나서
행복한 내가 아니냐.
* 큰 바다 있고, 푸른 하늘 가진 이 땅 위에 사는
나는 행복한 사람 아니냐.
기념식은 만세삼창으로 끝이 났고, 행사가 진행된 50분 동안, 나는 오랜만에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행사 때 쓴 작은 태극기를 들고 나왔다. 집에 오는 동안 그 감흥은 계속되었다.
고등학생 아들은 이제 막 일어났는지 부스스한 머리로 어떻게 집에 태극기가 없을 수 있냐며,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나는 들고 온 태극기를 아들에게 주었다. 아들은 씩 웃더니, 아파트 베란다의 태극기 봉에 그걸 꽂았다. 태극기는 아주 작은 바람에도 잘 살랑거렸다. 이제 제79주년 광복절도 지났으니, 곧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내년에는 모두가 화합하고, 행복해하는 광복절이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