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을 좋아하는 이유
몽골 여행기(9월 25일 ~ 9월 29일)
몇 년 전, 이비에스(EBS) 다큐프라임 '몽골' 편을 봤다. 몽골의 이동식 천막집인 게르에 사는 유목민 가족은 넓은 대지에서 양과 염소, 말에게 풀을 뜯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처음 본 이방인에게 따뜻한 차와 먹음직스러운 양고기를 내주었다. 아이들은 낯선 방문객을 수줍게 쳐다보며 해맑게 웃었다. 이야기는 잔잔했지만, 깊은 여운을 줬다. 보는 내내 마음은 평온했고, 따뜻했다. 그 이후, 유튜브 알고리즘은 나를 자주 초원으로 이끌었다. 그곳에는 별, 자연, 동물이 있었다. 시골에서 자란 내가 동경하고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언젠가는 그곳에 가보려고 맘먹었던 이유다. 나는 그 계획을 9월 25일 실행했다.
무안공항에서 떠나는 올해 마지막 몽골 패키지여행 상품이었다. 목포에 사는 내게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아내를 살짝 떠봤다. 시큰둥했다. "웬 몽골!" 당연한 반응이었다. 아내에게 퇴직하면 시골에서 살 거라고 했다. 아내는 그러라고 했다. "혼자 잘 살 수 있지? 나는 도시가 좋아."라면서. 나는 한번 마음먹으면 꽤 집요하다. 아내도 그걸 잘 안다. 내가 서너 번 말했을 때 아내는 인터넷으로 몽골을 알아가고 있었다. 아내는 말했다. "9월 말이면 추울 거래, 눈이 올지도 모르겠어." 굳이 가야겠느냐는 완곡한 표현이다. 나는 말했다. "응, 따뜻하게 입으면 되지. 이번이 아니면 못 갈 수도 있어. 인천에서 가려면 힘들잖아." 아내도 그제야 살포시 고개를 끄덕였다.
9월 25일 수요일, 아홉 시 30분 비행기였다. 우리 일정은 3박 5일이다. 목포는 늦더위가 마지막 기승을 부렸다. 여행 가방은 경량 패딩과 옷가지, 라면과 같은 먹거리로 가득 찼다. 가방 부피도 줄일 겸 긴소매 옷을 꺼내 입었다. 살짝 기분이 좋지 않았다. 몸에서 보내는 경고 신호였다. 묵혀 두었던 옷을 입으면 나타나는 알레르기 비염이다. 아내는 옷을 세탁했는데도 그런다면서 약을 주었다. 공항에서부터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콧물도 흘렀다. 여행사 직원에게 일정 안내를 받았다. 패키지여행이라서 부담이 없었다. 수속도 금세 마쳤다. 두 시간을 대기했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 모두 설레고 행복해 보였다. 비행기는 정시에 이륙했다. 약기운 때문에 곧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세 시간이 흘러 있었다. 비행기 창 아래로는 중국 이름 모를 도시의 불빛, 위로는 그믐달과 별이 빛났다. 잠은 다시 오지 않았다. 창밖을 멍하니 바라봤다. 곧 펼쳐질 몽골의 별천지를 그리면서.
9월 26일, 한 시 30분, 울란바토르 칭기즈칸 공항에 도착했다. 벽에는 칭기즈칸 그림과 자연을 주제로 한 사진이 걸려 있었다. 공항 출구에는 손님을 맞이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하나투어 표지판을 든 가이드가 우리 팀을 모으고 있었다. 우리 팀원은 34명이었다. 대개 목포와 광주에 살았다. 중년 부부, 여대생 친구들, 회사 동료까지 다양했다. 가이드는 20대 후반 몽골 여성이었다. 그녀는 몽골 대학에서 한국어학과를 졸업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잠시 일을 했단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가로등조차 드문 도로를 약 50분 달렸다. 버스가 잠시 멈췄다. 앞을 보니 말 떼가 느긋하게 길을 건너고 있었다. 이곳이 몽골이라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세 시에 테르지 국립공원에 위치한 미라지 캠프에 도착했다. 밤공기는 선선했고, 상쾌했다. 기지개를 켜며, 하늘을 바라봤다. 숙소 불빛 때문에 별은 잘 보이지 않았다. 오늘이 아니면 몽골에서 별을 못 볼 수도 있었다. 15일 전부터 찾아본 일기 예보에서도 구름이 낀다고 했다. 아내와 나는 어두운 데로 10m쯤 걸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이 초롱초롱 빛났다. 은하수도 보였다. 쏟아질 듯한 별들을 상상했지만, 우리나라보다 조금 더 잘 보이는 수준이었다. 별을 좋아하는 마음도 피곤을 이겨내지는 못했다. 비염도 심해졌다. 나는 곧 게르 침대에 누웠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여섯 시 20분, 커튼 틈으로 여명이 비쳤다. 그 기운에 이끌려 밖으로 향했다. 몽골의 첫 풍경을 보는 순간 입이 딱 벌어졌다. "와"가 절로 나왔다. 동쪽 하늘은 붉게 물들었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랬다. 듬성듬성 노란 단풍이 든 나무가 보였다. 이곳은 늦가을이었다. 넓은 초원과 오랜 세월이 잘 다져 놓은 암벽은 그림 같았다. 멀리 소와 말도 보였다. 능선을 타고 한참을 걸었다. 이곳저곳을 사진에 담아내려 했지만, 그럴수록 아쉽기만 했다. 부모님을 못 모셔 온 것도, 아이들을 안 데려 온 것도. 한 시간 후에 일어난 아내도 나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우리는 이곳저곳에서 사진을 찍으며 몽골에서의 첫날 아침을 맞았다.
몽골 영토는 우리나라의 7.4배에 달한다. 3일 동안 볼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다. 교통편도 좋지 않다. 내가 패키지여행을 선택한 이유다. 우리는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테를지 국립공원의 관광지를 편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가이드는 몽골 역사와 문화 지식이 해박해서, 우리 팀원의 질문을 막힘없이 답변하고 재미있게 설명해 주었다. 이번 여행에서 좋았던 점 중 하나는 일정이 여유로웠다는 것이다. 아침에는 코끼리를 형상화했다는 아리야발 사원을 걸었다. 유튜브에서 많이 본 거북바위도 보았다. 오후에는 승마 체험을 했는데, 아내와 말을 타고 한 시간쯤 아름다운 초원을 걸었다. 몽골의 동물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개, 말, 소, 낙타, 양, 야크, 고양이가 그랬다. 동물의 눈을 보면 나도 행복해졌다. 몽골의 전통 음악을 듣고, 춤을 볼 수 있는 민속 공연도 마음에 들었다. 공연에서는 몽골 유목민의 평화로움과 칭기즈칸 후예의 용맹함을 동시에 엿볼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이 몽골에 여행 온 이유를 별을 보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이날 저녁, 그 기대와는 다르게 하늘은 구름으로 뒤덮였다. 내일은 비까지 온다고 했다. 내 콧물은 허풍을 조금 보태자면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듯 흘렀다. 같은 팀 아저씨는 콧물약, 여성분은 비염약을 주었다. 아내와 나는 아홉 시 30분쯤 별을 보러 나왔다. 어제보다는 더 어두운 데로 들어갔다. 구름이 살짝 걷혔다. 나는 바위에 누웠다. 아내는 내 옆에 앉았다. 하늘을 보았다. 별이 황홀하게 빛났다. 어제도 이곳까지 왔다면, 조금 더 노력했더라면, 몸이 아프지만 않았다면 몽골의 별을 가슴 깊이 담아갈 수 있었을 텐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사람들이 준 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마치 수면제를 먹은 듯 깊게 잠에 빠져 들었다. 새벽 세 시쯤 게르에는 빗줄기가 세게 떨어졌다. 천막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어찌나 청량하던지 마음이 평안해졌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몸은 한결 나았다.
9월 27일은 이번 여행 중 가장 좋았던 야마트산 트래킹을 했다. 새벽에 비가 많이 내려서인지, 다행히 날이 갰다. 테렐지 국립공원 내 있는 해발 2100m의 야마트산은 "산양이 많은 산"이라는 뜻이다. 나지막한 능선을 따라 두 시간쯤 걷는데, 땅이 푹신푹신하고 냄새가 좋아서 걷는 내내 힘이 들기보다는 흥이 났다. 주변에는 동물의 똥이 많았는데, 똥에서도 풀 향기가 나는 듯했다. 동물의 똥은 몽골 유목민에게는 불을 지피는 연료가 된다. 풀과 나무에는 훌륭한 영양소다. 우주의 순리에 따르는 삶과 동물, 인간, 자연의 조화가 몽골의 매력 같았다. 아내와 나는 산 정상에 올라 두 눈과 마음으로 몽골의 가을 정취를 만끽했다.
오후에는 몽골 수도인 울란바토르로 이동했다. 교통 체증이 심각했다. 가이드에 따르면 몽골은 우리나라보다 경제적으로 30년쯤 뒤떨어져 있다고 한다. 도시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내와 나는 호텔에 짐을 풀고 시내를 돌아보기로 했다. 저녁을 부실하게 먹어서 현지인이 가는 식당에서 배를 채우고 싶었다. 국영백화점에서 물건을 사고 나오는데, 포장마차가 보였다. 점원은 한국말로 "양꼬치, 닭꼬치 맛있어요."라고 했다. 현지인들이 많은 걸 보면 맛집이 분명했다. 우리는 양꼬치와 닭꼬치, 양고기, 샴사(몽골식 만두)를 시켰다. 술을 팔지 않는다며, 사 와서 마시라고 했다. 양꼬치는 불에 직접 구워 주는데, 냄새는 나지 않았으며, 맛도 좋았다. 가격도 아주 쌌다. 양꼬치를 처음 먹어 보는 아내는 처제들에게 영상 통화로 자랑했다. 배도 부르고, 술기운도 올랐다. 아내는 이번 여행이 기대 이상이었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특히나 야마트산 트래킹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9월 28일,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울란바토르 시내를 구경하는 일정이다. 몽골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에게 호의적이라고 한다. 사람들의 눈빛을 보면서 그게 느껴졌다. 우리나라에서 수출한 중고차, 씨유, 지에스25 편의점, 이마트, 한국 커피 체인점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 유학하거나, 일을 한 사람도 많다고 했다. 마지막 일정은 몽골 초원 횡단 열차를 타는 거였다. 출국하는 비행기가 새벽 한 시여서 시간을 보내려고 만든 프로그램이라는데, 나는 이게 꽤 마음에 들었다.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데, 몽골 청년이 한국말로 말을 걸었다. 그는 천안에서 대학에 다녔다고 했다. 자세히 들어 보니 충청도 억양이었다. 그는 몽골에 온 걸 환영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 있을 때 참 좋았다고 했다. 그 일행은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우리가 타는 기차는 초록색이었다. 몽골인 가족도 보였다. 나는 엄마 곁에서 책을 읽고 있는 아홉 살로 보이는 여자아이에게 살포시 눈인사를 했다. 그 아이도 내가 외국인이라는 걸 알았는지 수줍게 웃었다. 나는 아이에게 줄 만한 물건이 없을지 찾았다. 가방에 볼펜이 있었다. 2천 원밖에 안 하는 거지만, 잘 써져서 몽골에서 글을 써 볼까 하고 가져온 거였다. 물론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나는 아이에게 볼펜을 주었다. 아이는 두 손으로 받았다. 엄마는 몽골어로 아이에게 뭐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아이가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어린아이가 우리나라 말을 한다는 게 놀라웠다. 기차는 한 시간쯤 달렸다. 우리는 승강장도 없는 초원에서 내렸다. 백 명이 넘는 여행객이 마치 길 잃은 좀비처럼 어둠 속에서 버스를 향해 일렬로 걸었다. 사람들은 불편하기보다는 색다른 경험에 즐거워했다.
9월 29일 일요일 새벽 열두 시 30분 무안행 비행기에 탔다. 무안에 도착했을 때 새벽 다섯 시였다. 아내와 나는 저녁 여섯 시까지 잤다. 피곤이 조금 풀렸다. 여행은 잘 마무리됐다. 몽골의 대자연을 보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래도 몽골의 별, 자연, 동물을 마음과 눈에 담아서 행복했다. 몽골의 음식도 그립다. 사람들은 고기에서 냄새가 난다고 했지만, 나는 여행 기간 동안 식사 시간이 즐거웠다. 몽골인 가이드, 역에서 만난 유학생 청년, 기차에서 만난 눈이 맑았던 아이, 내게 약을 건네준 팀원, 따듯한 인사와 사는 이야기를 했던 팀원들도 모두 그립다. 몽골에는 별, 자연, 동물뿐만 아니라 따뜻한 사람도 있었다. 내가 몽골을 좋아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