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꿈

by 깊은 바다


2025년 11월 13일 목요일, 아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날이다. 여섯 시쯤, 아들은 부스스한 얼굴로 화장실로 들어갔다. 표정은 굳어 있었지만, 푹 잔 듯 보였다. 거울 앞에 잠시 서 있던 아들은 아무 말 없이 식탁으로 와 밥을 몇 숟갈만 뜨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날 아침, 나는 아들의 작은 행동 하나에도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고사장까지는 내가 데려다 주기로 했다. 아들이 다니던 학교였다. 운전대를 잡고 있으면서도, 내 눈은 자주 백미러를 향했다. 거울에 비친 아들은 이어폰을 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말을 걸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지금은 어떤 말도 방해만 될 것 같았다.


여섯 시 오십 분, 학교 후문에 도착했다. 고등학교 내내 기숙사 생활을 했던 덕분에 익숙한 길이었지만, 그날만큼은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같은 학교, 같은 후문인데도, 전혀 다른 세계 같았다. 3년 전 3월의 그날이 떠올랐다. 어둠이 깔린 초저녁, 아들이 기숙사에 들어가던 날이었다. 막 중학교를 졸업한 아이는 덩치가 작았다. 그래서 아들이 든 이불과 가방은 더 커 보였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그날 밤 집에 돌아와 텅 빈 방을 한참 들여다보던 기억이 났다. 부모의 시간은 그렇게 아이를 보내는 일로 채워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들은 후문 기둥에 붙은 시험실 배치 현황을 한참 들여다봤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인사 한마디 없이 학교로 향했다. 투벅투벅 멀어지는 발걸음을 바라보며 나는 속으로만 몇 번이고 말을 되뇌었다. 너무 긴장하지 말라는 말도, 그동안 고생했다는 말도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마침내 입에서 나온 말은 짧았다.

“잘하고 와.”


회사에 있는 동안에도 머릿속에서는 아들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자꾸만 시계부터 보게 됐다. 뉴스에서는 올해 시험이 전반적으로 어려웠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아들을 데려오는 건 아내가 하기로 했다. 여섯 시가 넘었는데도 아들은 학교에서 나오지 않았다. 여섯 시 20분쯤, 바지 주머니 속에서 카카오톡 알림이 울렸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시험을 잘 봤다면 전화로 했을 것이다. 차를 잠시 세워 두고, 조심스럽게 화면을 열었다. ‘이제 태움. 망했다는데.’ 나는 태연한 척 답장을 보냈다.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숨이 턱 막혔다. 이어진 아내의 메시지에는 국어 시간에 멘털이 흔들려서,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했다는 말이 담겨 있었다. 지원한 대학의 수능 최저 학력 기준도 충족하지 못할 것 같다는 말도 덧붙여졌다. 나는 한참 동안 아무 답도 보내지 못한 채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라기보다, 어떤 말도 지금은 너무 가벼워 보였기 때문이다.


집에 들어오니 중학교 3학년 딸이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으로 청춘 남녀의 사랑을 다룬 <환승연애 4>를 보고 있었다. 내 얼굴을 본 딸의 표정이 굳어졌다. “오빠 시험 잘 봤대요?” 나는 잠시 말을 고르다가 말했다. “아니. 오늘은 엄마 기분이 안 좋을 거야. 학원 끝나고 바로 집에 와.” 딸은 더 묻지 않았다. 리모컨을 들어 텔레비전부터 껐다. 그리고 풀이 죽은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가방을 챙겨 현관을 나섰다. 딸의 발걸음 소리도 유난히 힘없이 들렸다.


거실에 혼자 남아 앉아 있으니, 하루 종일 붙잡고 있던 마음이 그제야 조금씩 내려앉는 것 같았다.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언제나 이 정도였다. 얼마 뒤 아내와 아들이 차례로 들어왔다. 아들은 굳은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아내는 싱크대 앞에 서서 아들의 도시락 통부터 열었다. 밥은 절반 이상 남았고, 달걀말이와 불고기, 김치도 마찬가지였다. 아내는 한숨을 깊게 쉬었다. 지난 9월, 수시 원서를 쓰기 전에 상담하면서, 담임 선생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교무실을 찾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3학년 교실마다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아이들은 책상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책에 파묻혀 있었다. 두세 명은 복도로 책상을 옮겨 조용히 공부하고 있었다. 교무실 안에는 선생님들의 책상이 촘촘히 들어서 있었다. 담임 선생님의 자리는 창가 쪽 구석이었다. 책장에는 물리 교과서와 참고서가 빼곡히 꽂혀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아 상담을 시작했다.


지난 3월, 처음 교무실을 찾았을 때 선생님은 서울대와 치대, 약대를 목표로 공부해 보자고 했다. 우리 부부는 순간 서로를 바라보며 적잖이 놀랐다. 아들의 성적을 대략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들은 1학년 때 공군사관학교를 목표로 하다 시력 문제로 꿈을 접었다. 2학년에 올라서는 진로를 바꿔 약대를 준비해 왔다.


선생님은 우리의 반응을 살피듯 조심스럽게 단서를 덧붙였다. 3학년 1학기 시험에서 미적분 1등급을 포함해 모든 과목에서 1등급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 하고 놀라는 우리에게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충분히 가능하니, 한번 믿고 가 보자고.


아들은 선생님의 믿음대로 3학년 1학기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 냈다. 선생님은 좀 더 구체적인 입시 방향을 제시했다. 수시 원서는 총 여섯 장을 서울대, 치대, 약대에 쓰자고 했다. 올해 입시는 작년에 비해 훨씬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황금돼지띠’로 불리는 2007년생 재학생이 크게 늘어난 데다, 의대 정원 축소까지 겹치면서 상위권 학생들의 경쟁이 치열해질 거라는 분석이었다. 선생님의 걱정도 바로 그 지점에 있었다. 작년이라면 아들의 성적으로 충분히 가능했겠지만, 올해는 다를 수도 있었다.


가장 큰 변수는 수능 최저 학력 기준이었다. 치대는 의대에 준하는 수능 최저 등급을 요구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버리는 카드가 될 수도 있었다. 지금까지 모의고사에서도 쉽게 넘지 못한 벽이었다.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입시 컨설팅에서도 한 장 정도는 더 안정권으로 낮춰 쓰는 게 좋지 않겠냐는 조언을 받은 터였다. 담임선생님은 온화한 미소로 아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단호하게 말했다.

“주원, 할 수 있지? 안 되면 바로 가방 싸서 재수학원 가자.”


아내와 나는 선생님에게 들었던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집안에는 적막이 흘렀고, 공기는 묘하게 냉랭했다. 아들의 시험 결과가 궁금했던 장모님이 집에 들렀다. 아내는 아들이 교문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웃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잘 본 줄 알았다고 했다. 차에 타더니 뒷자리에 누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고 했다. “국어! 내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데, 네가 나를 이렇게 배신하면 안 되지.”


침묵으로 가득 찬 시간은 더 천천히 흐르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 아들의 방에서 뜻밖의 탄성이 새어 나왔다. 아들은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가채점을 하고 있었다. 잠시 뒤, 아들은 환하게 웃으며 가채점표를 들고 거실로 나왔다. 국어 시험을 망쳤을 거라고 짐작했는데, 2등급은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수학과 영어는 잘 봐서 약대와 서울대 수능 최저 등급은 충족했단다.


장모님의 눈가가 촉촉해졌고, 이내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우리 부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내는 냉장고에서 차가운 맥주를 꺼내 왔다. 밥맛이 없다던 아들도 식탁에 앉아 숟가락을 들었다. 아들은 국어 문제를 풀면서 여러 번 그만둘까 망설였다고 했다. 그때마다 엄마와 아빠 얼굴이 떠올랐다고 했다. 치대 원서 두 장은 날렸지만, 애초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탓인지 아쉽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거친 풍파가 지나간 집안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아들도 한결 홀가분해 보였다. 그날 오전 11시쯤,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아들이 국어를 다시 채점해 보니 한 문제를 더 맞아 90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점수면 여러 입시 기관에서 발표한 예상 등급표상 1등급 경계에 걸치는 점수였다. 교육방송(EBS)을 비롯한 대부분은 88~90점을, 메가스터디는 88~91점을 1등급으로 예측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치대에서 요구하는 수능 최저 학력 기준도 충족하는 셈이었다. 이미 우리 가족의 기대는 약대에서 치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수능 시험이 끝나자 본격적인 입시 일정이 시작됐다. 서울대와 약대 학생부종합전형에서 1차 합격 통보를 받으면서 면접 준비에 들어갔다. 아들은 다시 신경이 곤두섰다. 학교에서는 주말 밤늦게까지 면접 연습이 이어졌다. 선생님들은 방심하지 말라며, 여섯 개 대학 모두 떨어질 수도 있다고 마음을 다잡게 했다. 아들은 약대를 목표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울대에 합격하더라도 갈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왜 굳이 서울대 면접까지 준비해야 하느냐며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약대 면접은 예상대로 잘 치렀다. 아들은 면접장에 들어갈 때부터 면접위원들이 자신을 뽑을 것 같은 느낌이 왔다고 했다. 질문도 예상 범위 안이었다. 1학년 때 조종사를 꿈꾸다 2학년 때 약사로 진로를 바꾸게 된 계기, 학생회장으로 활동하며 겪었던 어려움, 생활기록부에 기록된 실험 활동들. 생활기록부를 제대로 읽었다면 뽑을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 있었다. 아들은 면접장을 나오며 활짝 웃었다.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합격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심지어 태블릿에는 대학교 마크와 면접 번호가 적힌 스티커를 붙였다.


며칠 후에는 서울대 면접이었다. 아내는 나에게 아들과 함께 다녀오라고 했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다시는 학부형으로 서울대에 올 일이 없을 것 같으니, 같이 가자.” 이른 아침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오후 한 시쯤 예약해 둔 호텔에 도착했다. 직원은 객실이 비어 있다며 열쇠를 내주었다. 아들은 호텔에 들어가서도 선생님과 영상 통화로 면접 연습을 했다. 아내와 나는 방을 비켜 주었다. 저녁 일곱 시가 되어서야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배가 고프다고 했다. 얼굴은 피폐해 보였고, 눈빛도 휑했다. 다음 날 새벽 다섯 시쯤, 우리는 택시를 타고 서울대로 향했다. 새벽이라 길이 막히지 않아 여섯 시 무렵 학교에 도착했다.


나는 대학 원서를 쓰고 난 뒤, 아들의 생활기록부를 여러 번 읽었다. 읽을 때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얼마나 성실하게 시간을 쌓아왔는지가 눈앞에 그려져 흐뭇했다. 몇 번을 읽어도 지겹지 않았다. 다만 서울대 합격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생활기록부의 대부분은 약대 진학을 염두에 둔 활동으로 채워져 있었다. 지원한 학과는 화학 계열이었다. 내가 입학 사정관이라도 약대로 갈 것처럼 보이는 학생을 뽑지는 않을 것 같았다. 특히 ‘서울대’라는 이름이 더해지니, 기대를 품기보다는 마음을 낮추게 되었다. 그래도 면접을 본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 경험은 아들의 인생에 오래 남을 것이고, 합격이라는 결과까지 따라온다면 그동안 곁에서 애써 준 선생님들께도 작은 보답이 될 것 같았다. 학부형으로서 서울대 면접을 함께할 수 있었던 것 역시 나에게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아들은 면접을 마치고 당당한 얼굴로 나왔다. 합격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선생님에게 카카오톡으로 면접에서 했던 말을 정리해 보냈고, 답변은 스스로 보아도 논리적이었던 듯했다. 선생님도 잘했다며 칭찬을 남겼다.


수능 점수 발표일이 다가오면서 걱정은 커져갔다. 국어 점수가 마지막까지 문제였다. 며칠 전 발표한 국어 1등급 표준점수는 133점이었는데, 아들이 선택한 국어 화법과 작문은 기준점이 90점인지, 91점인지 인터넷상에서 의견이 분분했다. 인터넷에서 등급 예측을 잘한다는 통계 전문가는 91점이 1등급일 거라고 예상했다. 가슴이 멎는 듯했다. 며칠간 치대생이 될 수도 있도록 꿈에 부풀어 있었는데, 1점 차이로 개꿈이 될 수도 있었다. 다행히 한 시간쯤 지나서 그 전문가는 90점이 되는 게 맞을 것 같다고 했다. 아들도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1점 차이로 2등급이 된다면 평생 후회로 남을 것만 같았다.


12월 5일 아홉 시, 수능 성적표를 배부한다. 인터넷에서는 여러 정보들이 혼재되어 흘러나왔다. 92점이라는 사람부터 89점이라는 사람까지 어떤 걸 믿어야 할지 몰랐다. 게다가 마킹을 잘못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홉 시가 되었다. 아들은 뒷 번호이기 때문에 성적표를 나눠주다 보면 10분은 지나갈 것 같았다. 그 시간이 지나서도 카톡은 울리지 않았다. 그렇게 또 10분이 지나갔다. 마찬가지였다. 아내에게 전화했다. 아무 연락이 없고, 카톡을 해도 답장조차 하지 않는다고 했다.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해 보였다. 몇 분 후 아내가 카톡으로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 통지표였다. 국어 화법과 작문, 표준점수 133점, 1등급이 분명했다. 영어와 수학은 예상대로였다. 나는 사무실 의자에 일어서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12월 10일부터 대학 합격자 발표가 시작됐다. 수험생 점수 공개 프로그램으로 합격을 예측해 보니, 아들은 1순위 희망 대학이었던 치대에 1차 합격 또는 합격에 가까운 예비 번호를 받을 것으로 같았다. 수능을 치르기 전까지 아들의 내신으로는 치대는 어려울 거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 시험이 어렵게 출제되면서 최저 등급을 맞추지 못한 수험생들이 크게 늘었다. 아들에게는 어려웠던 시험이 오히려 기회가 되었던 셈이다. 가장 먼저 발표한 건 그중에서 가장 안정권이었던 약대였다. 예비 25번이었다. 예전 추가 합격 순번 등을 보면 충분히 합격할 수 있는 순위였다. 다음 날은 서울대가 발표했다. 내 예상대로였다. 아들은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면서 불안해했다.


다음 날 오전 열 시, 학교에 있던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치대 합격자 조회를 하려는 순간, 주변에 있던 반 아이들이 몰려들었다고 했다. 조회 버튼을 누르고 화면이 열리자 아이들의 함성이 터졌다. 아들은 무슨 일인지 몰라 잠시 멍했다고 했다. 천천히 다시 읽어 본 화면에는 ‘합격’이라는 두 글자가 선명하게 있었다. 아들은 그렇게 치대 두 곳, 약대 두 곳에 합격했다. 합격자 발표가 있는 날로부터 며칠간은 꿈을 꾸는 듯했다. 여러 사람들로부터 축하 전화를 받았고, 부럽다는 말도 여러 번 들었다. 아들도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내가 정말 의사가 된다고."


2024년 3월 16일, 나는 「아들의 따스한 마음」이라는 글을 썼다. 그때의 나는 아들의 미래를 알지 못했다. 초등학교 시절 꿈이었던 의사는 성적 앞에서 멀어졌다고 생각했다. 중고등학교 때 품었던 비행기 조종사의 꿈은 시력 문제로 접어야 했다. 다만 한 가지, 아이가 자기 몫의 시간을 성실히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만은 믿고 있었다.

수능이 끝나고, 모든 합격 발표가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꿈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일 포기하지 않고 쌓아 올린 시간 끝에서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을. 아들은 그렇게 초등학교 시절 꾸었던 자신의 꿈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아들은 앞으로도 자기 몫의 꿈을 완성해 갈 것이다. 그리고 훌륭한 치과의사가 되리라는 것을. 아들은 치과의사가 갖추어야 할 세심한 손기술과 미적 감각이 뛰어나다. 게다가 의사로서 가장 중요한 따뜻한 마음마저 지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