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을 보내며

by 깊은 바다

2025년 1월 1일 새벽, 숲속은 바깥보다 더 어둡고 고요했다. 졸졸 흐르는 계곡물 소리는 그래서 더 또렷하게 들려왔다. 새해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은 어둠을 헤치고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갔다. 그 순간 의지할 수 있는 것은 타인의 발꿈치와 랜턴 불빛뿐이었다.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살짝 두렵고 무섭기도 했다.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간절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들 앞에서, 초자연적인 무엇에라도 기대고 싶었던 마음 말이다.


월출산 정상, 천황봉의 바람은 매서웠다. 몸은 움츠러들었지만, 마음은 오히려 차분해졌다. 여명이 대지에 스며들더니 산등성이를 타고 붉은 해가 조금씩 솟아올랐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나는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소원을 빌었다. 가족이 건강하길, 아들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길, 그리고 나를 옭아매고 있던 문제가 잘 풀리길. 해가 완전히 떠오르자, 사람들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다시 흩어졌다. 나 역시 조용히 산에 내려왔다. 성취감과 안도감,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허전함을 함께 품은 채로.


2025년은 가족이 아니었다면 내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었을 한 해였다. 지난 11월 중순, 1년 가까이 끌어왔던 문제의 최종 결과가 나왔다. 결론은 예상대로였다. 한편으로는 후련했지만, 가슴이 아린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도 마음 깊숙이 남은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겉으로는 일상을 되찾은 듯 보였지만, 어떤 날들은 여전히 그 통증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운전하다가도, 거울을 보다도, 산길을 걷다가도 한숨이 새어 나오곤 한다. 해가 저물수록, 그 빈도와 무게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문제의 발단은 약 2년 전 일에서 시작되었다. 작년 가을 무렵부터 나를 조여 왔고, 해가 바뀌며 나를 완전히 옭아맸다. 무심코 처리했던 3만 원짜리 영수증 한 장. 아무렇지 않게 건넸던 종이 한 장이 내 삶의 균형을 무너뜨릴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사소하다고 여겼던 일은 시간이 지나며 설명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그 이후의 시간은 변명과 해명, 기다림과 자책으로 뒤엉켰으며, 내 일상의 대부분을 지배했다.


무엇보다 나를 괴롭힌 것은 나의 무능력이었다. 마지막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자리에서 나는 철저하게 무너졌다. 이 사건을 평가할 사람으로부터 나온 첫 번째 질문부터 내 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질문과 답변이 오가면서 나는 완벽하게 도덕적이지 못한 사람으로 규정되고 있었다. 충분히 예상했던 시나리오지만, 막상 마주하자,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며칠을 보내며 준비했던 말들은 끝내 꺼내 보지도 못한 채 남았다. 지금 떠올려도 창피한 비논리적인 말들만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는 듯했다. 그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복도에서 마주친 그들의 눈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뱀 같은 눈으로 나를 노려보던 사람, 측은한 눈으로 나를 보던 사람. 공포보다는 모멸감이 느껴졌다. 다음 날 결론을 문자로 확인했을 때는 오히려 담담했다. 전날의 침묵과 혼란이 결코 기분 탓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나의 부족함을 마지막으로 확인시켜 주었다. 그 이후로 나는 사건의 결론보다도, 그 자리에 그렇게 무너져 있던 나 자신에게 더 크게 실망다.


그 시간의 한가운데에서 가장 큰 힘이 되어 준 사람은 아내였다. 아내는 “지나가면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로 나를 붙잡아 주었다.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고, 끝까지 버텨내지 않아도 된다는 태도였다. 마침 그 무렵 보던 드리마 속에서도 비슷한 위로를 느꼈다. 판단하지 않고 곁에 머무는 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그때 처음으로 실감했다. 그 덕분에 나는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채 시간을 건널 수 있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오늘은 2025년의 마지막 날이다. 출근길에 켠 라디오에서는 눈 소식이 흘렀고, 사무실 너머 산등성이에는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다. 올해의 마지막 일출은 보지 못하겠지만, 오늘을 끝으로 나를 옭아매던 줄을 풀어 헤치려 한다. 상처는 남아 있고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겠지만, 그 시간을 통과한 책임 또한 온전히 내 몫일 것이다. 다행히 가족은 건강했고, 아들은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성공한 한해라는 생각이 든다. 2025년은 지워버리고 싶으면서도, 끝내 나를 지나가게 한 해였다. 어쩌면, 나는 그 고통을 이겨내며 더 성장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결국, 잊지 못할 한 해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