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 원의 무게, 3만 원의 온기

by 깊은 바다

12월 31일 여덟 시 40분, 브런치에 글을 올렸다. 아침부터 조금이라도 서둘러 그 일을 정리하고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글에 썼듯, 나는 4년 전 제출한 3만 원짜리 영수증 한 장 때문에 올 한 해를 내 인생에서 지우고 싶을 정도였다. 11월 중순에 나온 결과를 이제 겸허히 받아들인다. 책임은 온전히 내 몫이다. 핑계를 댈수록 스스로가 구차해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글을 올린 지 40분쯤 지났을 때 스마트폰에서 카톡 알림이 울렸다. ㄱ 주무관이었다. 4년 전, 본청에서 초임 사무관으로 생소한 업무의 팀장을 맡았을 때 나를 많이 도와주었던 직원이었다. 서로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난 뒤로는 아주 가끔 소식만 주고받았다. 안부 인사를 나눈 것도 오랜만이라 반갑게 카톡을 열었다.


스타벅스 3만 원 선물 쿠폰이었다. 카드에는 ‘고마운 마음 꼭 전하고 싶어요. 2026년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문구도 적혀 있었다. 순간 여러 생각이 스쳤다. 무엇보다 '3만 원'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혹시 내 글을 읽은 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ㄱ 주무관은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사실을 모른다.

잠시 뒤 카톡이 왔고, 우리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ㄱ: 계장님, 새해 복 많이 받고 가족들과 스타벅스에서 데이트하세요.
나: 선물 잘 보낸 거 아니에요? 제 생일도 아닌데요.
ㄱ: 하하하. 아니에요.
나: 내 징계 위로 턱?
ㄱ: 그런 의도는 아니었지만… 하하하. 결과 나왔나요?
나: 그럼 내년에 유배 가서 마셔야겠네요. 하하하.


ㄱ 주무관은 내 글을 읽지 않은 게 분명했다. 내 징계를 위로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연말에 가족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라는 의미의 선물이었다. 커피를 마시기도 전에 내 마음은 이미 따뜻해졌다. 불편한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꺼내고, 농담으로 넘길 수 있는 걸 보니 내 상처도 많이 아물긴 했나 보다.


10시에는 직장에서 정년 퇴임식이 있었다. 행사장으로 가려는데 전화가 왔다. ㄴ 주무관이었다. 4년 전, 영수증 처리가 잘못되었을 당시 담당 서무였다. 진동이 몇 차례 울렸지만 받지 않았다. 통화할 시간도 부족했고, 마음도 선뜻 내키지 않았다. ㄱ 주무관이 ㄴ 주무관에게 내 이야기를 전한 것 같기도 했다.


이번에는 ㄷ 주무관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고초를 겪는 동안 심적으로 큰 힘이 되어 주었던 직원이다. 몇 개월 만에, 그것도 짧은 시간 두고 이번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에게서 연달아 연락이 왔다. 그들이 왜 전화를 했는지, 행사 내내 신경이 쓰였다.


정년 퇴임식의 주인공은 세 명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퇴직할 때 퇴임식에는 참석하지 않으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 자리에 서면 왠지 서글퍼지고, 눈물이 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가족과 동료의 축하를 받으며 마무리하는 것도 의미 있겠지만, 조용히 물러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번 퇴임식에도 몇몇 선배는 이런저런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그중에는 나와 비슷한 속내를 지닌 분도 있었을 것이다.


퇴임식에서 선배들은 모두 훈장을 받았다. 공무원으로서 모범이 되어야 받을 수 있고, 근무하면서 조그만 흠결이라도 있으면 받을 수 없는 게 훈장이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이 행사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십 년 뒤, 다른 동료들과 달리 혼자만 훈장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 앞에서, 퇴임식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마음은 더욱 굳어졌다.


점심을 먹는 동안에도 사람들의 시선이 자꾸 신경쓰였다. 모두가 위로의 눈길을 보내는 것만 같았다. 밥도 잘 넘어가지 않았다. 대충 식사를 끝내고, 헬스장으로 내려가 러닝머신을 뛰었다. 달리면서 ㄴ에게 건넬 문장을 하나씩 떠올렸다.


내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라 파장을 일으킬 때, 나는 ㄴ을 원망하기도 했다. 조금만 더 꼼꼼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며, 책임을 미루고도 싶었다. 하지만 모든 잘못은 나에게서 시작되었다. 규정을 조금만 더 살피고, 마지막까지 챙겼더라면 절대 벌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ㄴ은 내가 00심사를 받을 때, 본인의 착오로 과실이 발생했다는 사실 확인서까지 써 주었다. 결과는 바뀌지 않았지만, 자신에게 불이익이 올 수도 있었기에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땀을 흘리고, 샤워를 하니 우울했던 기분도 조금은 가라앉았다. 내가 ㄴ에게 해야 할 말도, 분명해졌다.


한 시 조금 넘어서 ㄴ에게 전화를 걸었다. ㄴ은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부터 건넸다. 그러고는 나를 떠올리면 죄송한 마음밖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너의 잘못은 하나도 없으니,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래도 편치 않다면,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안부 전화나 하라고 덧붙였다. 은 끝까지 죄송하다고 했다. 나는 그 걸로 충분하다며, 나중에 소주나 한잔했다. 그와의 통화는, 이 한 해를 마무리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위로였다.


과는 꽤 길게 통화를 했다. 화제의 대부분은 아들의 대학 입학과 같은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그는 내 사건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에게는 아주 사소한, 이미 지나간 일일 것이다. 어쩌면 모두가 잊고 있는 일을, 나만 붙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저녁, 아내와 송년회를 겸해 술을 마셨다. 오전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나는 퇴임식에는 참석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아내는 졸업식이 우등상 받는 학생들만 가는 자리는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정 훈장이 필요하면, 자기가 하나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아내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조용한 마무리를 하고 싶은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술이 알딸딸하게 오를 즈음, 에게서 전화가 왔다. 본청에서 내가 주무관일 때 함께 일했던 직원이었다. 그는 송년 인사를 건넸고, 아들의 대학 입시를 물었다. 대학 합격 소식을 듣더니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전화를 끊자 아내가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후배들이 당신한테 하는 걸 보니까, 당신은 정말 직장 생활을 잘한 것 같아.”


나는 아무 말없이 웃고 말았다.


그날 밤, 나는 동료들의 따뜻한 온기로 비로소 이 한 해를 조용히 내려놓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