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5일, 아들의 고등학교 졸업식이 있었다. 이번 졸업식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아들의 초등학교 졸업식은 코로나19로 인해 학생들만 참석한 채로 열렸고, 중학교 졸업식은 인천으로 발령이 나 함께할 수 없었다. 이번에는 딸의 졸업식과 날짜가 겹쳤지만, 아내와 딸의 배려로 내가 아들 학교에 가기로 했다.
고등학교로 가는 길은 설레면서도 아쉬웠다. 아들은 지난 3년 동안 기숙사에서 지냈다. 학교에서 아들을 다 키운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덕분에 부모 속을 썩이지도 않았다. 내가 아들을 위해서 한 일이라곤 토요일 점심쯤 학교에서 아들을 데려오고, 일요일 저녁에 데려다주는 일뿐이었다.
후문으로 걸어 들어가는데, 멀리서 고개를 높이 들어야 볼 수 있을 만큼 큰 히말라야삼나무가 오늘따라 더 웅장해 보였다. 아들의 대학 입시를 상담하며 초조한 마음으로 오갔던 이 곳을 다시 올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괜히 아쉬웠다.
졸업식장은 학생과 학부모로 혼잡했다. 아이들은 슬프기보다는 들떠 보였다. 선생님들은 행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게 오갔고, 사회를 보는 선생님은 긴장한 표정이었다. 아들은 고등학교 학생회장으로서 대표로 교장선생님에게 졸업장을 받았다. 이어서 여러 명과 함께 학력 우수상도 받았다. 집에서는 듬직해 보였는데, 친구들 사이에 서 있으니, 왜소해 보였다. 그 가냘픈 어깨로 3년을 어떻게 버텼을까 싶어 대견하기도, 안쓰럽기도 했다.
그 물음의 답은 그날 밤, 생각도 못한 시간에 들려왔다.
나는 그날 열 시쯤 잠이 들었다. 자정 무렵, 거실에서 아내의 통화 소리가 들렸다. 그냥 넘기기에는 뭔가 심상치 않은 억양이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아내 곁으로 다가갔다. 아들은 졸업식을 기념해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나간 터였다. 아들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했다고 했다. 그래도 다치지도 않았고, 사고를 친 것도 아니라서 다행이다 싶었다.
나는 아내와 함께 차를 몰고 아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들은 인도에 놓인 간이 의자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며 앉아 있었다. 열댓 명의 친구가 아들을 보살피고 있었다. 친구들은 우리를 보자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아들은 우연히 만난 유도부 친구들의 권유로 술을 급하게 마시더니 갑자기 정신을 잃었다고 했다.
아들을 일으켜 세워 차가 있는 쪽으로 걸었다. 눈은 풀려 있었고,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차에서도 구토할 것 같아 차를 세우고 아들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가끔 아침 출근길에, 도로 위에 까마귀밥이 놓여 있는 걸 보며 누가 이렇게도 많이 마셨을까 싶었는데, 그 사람이 우리 곁에 있었다.
아들은 침대에서 떨어지고, 양치하면서도 욕실에 머리를 부딪혔다. 구토를 계속해서 아내가 옆에서 함께 자기로 했다.
다음 날 아내는 밤사이 있던 일을 말해 주었다. 아들은 흐느끼며 엄마에게 말했다고 했다.
“엄마, 나 너무 힘들었어요. 지난 1년 동안 단 하루도 편히 자 본 적이 없어요. 매일 악몽을 꿨어요. 말하면 엄마 아빠가 더 힘들어질까 봐, 아무에게도 말 못 했어요.”
아이는 몇 분 동안 혼자 짊어졌던 무게를 한꺼번에 쏟아냈다고 했다. 엄마는 늘 편하게 하라고 말해 주었지만, 아들은 그럴 수가 없었다고 했다.
“선생님, 가족 모두 나만 지켜보며 기대하고 있는 걸 아는데 어떻게 공부를 안 할 수가 있겠어요? 엄마는 편히 하라고 해도 내가 다 아는데… 그럴 수가 없는 거였어요.”
아들은 부모의 사랑마저도 ‘기대’로 받아들이며 자신을 채찍질했던 모양이다.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도 터져 나왔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친구들을 가르쳐주며, 다 함께 좋은 대학에 갔어야 했는데, 경쟁자로만 본 자신이 쓰레기 같다는 말까지 하며 자책했다. 재수 학원에 가 졸업식에도 못 온 친한 친구 걱정에 가슴 아파하는 아들을 보며, 심성이 얼마나 여리고 깊은지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학생회장’과 ‘원하는 대학 입학’이라는 큰 영광 뒤에는, 잠 못 드는 밤과 악몽, 그리고 타인의 시선을 견뎌내야 했던 지독한 외로움이 숨어 있었다. 세 번의 졸업식 만에 마주한 아들의 성장은 화려한 영광이 아니라, 이렇게 비틀거리며 속살을 드러낸 아픔 속에 있었다.
아들아, 지난 3년 동안 홀로 이겨내느라 얼마나 외로웠니. 네가 흘린 그날의 눈물은 그동안 쌓인 독을 씻어내는 정화의 시간이었기를 바란다. 이제는 누구의 기대도 아닌, 오로지 너의 행복을 위해 걸어가렴. 부모의 기대조차 너에게 짐이 되었다면, 정말 미안하구나.
이제 악몽은 꾸지마라. 나의 귀하고 따뜻한 아들아. 넌 언제나 우리의 자부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