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부쩍 네 목소리가 자주 들려온다. 네 얼굴도 자주 아른거린다. 예전에는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네가 곁을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마음으로 듣고, 보는 게 더 잘 들리고, 잘 보인다는 걸.
한 달 전쯤 친구들이 너를 보러 간다고 했을 때, 나도 가려다가 그만두었다. 미안한 고백이지만, 곧 너를 떠나보내야 할 것 같으니 그때 마지막을 함께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였다.
너를 처음 만난 건 일곱 살, 초등학교 입학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 2학년 즈음이었을까, 너희 집에 놀러 갔을 때 보았던 풍경 하나가 유독 선명하다. 백발의 할머니가 계시던 별채 방에서 느릿느릿 걸어 나오던 황토색 고양이. 왜 그 고양이의 걸음걸이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지 모를 일이다.
그 시절에도 너는 참으로 건강하고 씩씩한 아이였다. 네 목소리에는 늘 힘이 실려 있었고, 자신감이 가득했다. 잘생긴 외모에 다부진 체격까지 갖췄으니 '사내대장부'라는 말이 너보다 잘 어울리는 친구는 없었다. 호탕하게 웃어젖히는 네 모습이 가끔은 남자로서 시샘이 날 만큼 부러울 때도 있었다.
성인이 되어 중학교 동창 모임인 ‘소중회’에서 너를 다시 만났을 때도 우리는 금세 예전의 온도로 돌아갔다. 자주 연락하며 지내지는 못했지만, 너는 늘 내 마음 한구석에 든든한 친구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다 1년 전쯤 동선이 어머니 장례식장에서 너를 보았을 때 나는 내심 걱정이 되었다. 내가 알던 기운 넘치던 모습은 간데없고, 너는 유독 조용하고 힘이 없어 보였다. 그날 친구들에게 너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물어보며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만약 그날이 우리의 마지막이 될 줄 알았더라면, 조금이라도 더 이야기를 나누었을 텐데. 힘없는 친구를 보며 조금 더 마음을 쓰지 못한 것이 못내 후회로 남는다.
지난 토요일, 아들의 자취방 이삿짐을 나르고 있을 때 수영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참을 망설였다. 하필이면 다음 날이 당직 근무였다. 핑계처럼 들리겠지만, 상황을 되돌려보려 애써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거라며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하지만 마음 한쪽이 아린 건 어쩔 수가 없다. 조금 더 노력했더라면 네 마지막 길에 꽃 한 송이라도 놓아줄 수 있었을까.
어제 소중회 카톡방에 너의 이름으로 제수씨가 메시지를 올렸다. 너를 좋은 곳에 잘 모셨다는 인사와 함께, 네가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작은 소나무와 푸른 잔디밭이 어우러진 네 영면의 터전을 보며, 그제야 나는 너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을 전했다.
친구야, 이제 내 마음속에서 들리는 네 목소리는 다시 예전처럼 우렁차다. 너는 늘 그렇게 자신감 넘치게 웃고 있어야만 한다. 그곳에서는 부디 아프지 말고, 무거운 짐 다 내려놓고 행복하게 지내렴.
내 친구여, 고마웠다. 그리고 참으로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