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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Jun 20. 2020

데릴사위

데릴사위

“아들을 데릴사위로 보냈네.” 어머니는 내 결혼식에서 친척에게 가시 박힌 말을 들었다.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았는지 어머니는 가끔 그 기억을 끄집어 내곤 했다. 장남에 하나뿐인 아들이어서 농담으로 받아들이기 더 어려웠을 것이다.

첫 발령지인 목포에서 상사의 소개로 아내를 만났다. 집사람의 사촌 이모부였는데, 처갓집에 나를 최고로 인간성이 좋고 능력이 탁월한 사람으로 부풀려 소개했다. 그 덕에 장모님은 나를 보기도 전에 사윗감으로 낙점했다.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할 때마다 장모님은 빨리 시집이나 가라며 아내를 떠밀었다. 밀고 당기기를 반복했지만 장모님까지 내 편이니 결론은 이미 나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여자 친구도 그 결과를 받아 들일 수밖에 없었다.

여자 친구 집에 첫인사를 하러 갔다. 아침 일찍 머리부터 다듬고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었다. 과일바구니도 샀다. 초인종을 누르자 여자 친구도 떨리는 듯 부끄럽게 웃으며 문을 열었다. 싸이월드(미니홈피)로 여자 친구의 부모님을 많이 봐서인지 낯설지 않았다. 그렇다고 떨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시청에 다니던 장인어른과 옷가게를 하던 장모님은 정읍에서 농사짓던 부모님과는 다르게 피부는 뽀얗고 기품 있어 보였다. 고급스러운 가구와 커다란 수족관도 조금은 주눅 들게 만들었다. 여자 친구네는 딸만 셋이었다. 그 상사의 허풍 때문이었는지 가벼운 질문 몇 개로 맏사위 시험은 합격한 듯했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됐다.

맛과 해양의 도시 목포 시민답게 장모님은 산 낙지부터 민어회, 병어 찜까지 바다 음식으로 한상 차렸다. 장모님은 체구는 작지만 손이 컸다. 겨울을 나려고 도토리를 모으는 것처럼 제철 생선이 나오면 짝으로 사서 쟁였다. 냉장고는 6개나 됐다. 정읍에서는 명절 때나 맛보던 조기도 거의 매일 상에 오른다. 어머니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이제 장모님이 만든 음식이 최고가 돼 버렸다. 솜씨도 좋을뿐더러 오래 먹다 보니 그 손맛에 익숙해진 듯하다.

집사람은 결혼하고 16년간 목포에서 계속 살았다. 내가 5년 전 인천으로 발령이 나면서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남기로 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부모님만 두고 떠나고 싶지 않은 것도 한몫했다. 장모님도 외로움이 두려웠는지 아내에게 곁에 남아 줄 것을 완곡하게 부탁했다. 아내는 내게 장남 역할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생히 보여 준다. 처갓집의 사소한 일은 물론이고 동생들도 살뜰히 챙긴다. ‘딸을 낳으면 비행기를 타고 아들은 별 볼 일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통계로도 맞다고 한다. 집사람과 나도 그 수치를 맞추는 데 조금은 이바지한 셈이다.

집사람은 시댁에도 소홀하지 않다. 정읍 부모님은 딸보다 며느리를 더 믿고 의지한다. 고민이 있으면 며느리에게 이야기한다. 그러면 대부분 풀린다. 내가 처갓집이 마냥 편하지 않은 것처럼 시댁도 마찬가지겠지만 내 역할까지 대신해 주는 아내가 부럽고 고마울 뿐이다.

나는 올해 초 다시 인천으로 발령이 났다. 가족과 함께 이사하는 고민은 이제 하지 않는다. 나보다 아내를 더 필요로 하는 분들 때문이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67세이지만 아직까지 조그마한 사업을 한다. 그 일도 아내가 있어야 돌아간다. 장인어른은 올해 큰 병에 걸려 수술을 했다. 집사람이 장인어른의 몸이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채고 서울을 오가며 치료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장모님은 큰딸이 아니었으면 병에 걸렸는지도 몰랐을 거라고 고마워했다.

요즘은 격주로 집에 내려간다. 식당 밥을 주로 먹다 보니 장모님이 해주는 낙지 초무침, 홍어애국이 그리울 때가 많다. 장모님도 객지 생활하는 사위가 안쓰러운지 정성이 담긴 보약같은 음식을 차려 놓고 기다린다.

가까이 살다 보니 정읍 집보다는 처갓집에 많이 들른다. 애들도 외갓집을 더 편하게 생각한다. 나는 아내와 다르게 시골집과 처갓집에 모두 무심하다. 전화도 자주 안 하다 보니 집사람이 나무랄 때가 많다. 나는 공평한 게 좋은 거라고 웃어 넘긴다. 장모님에게도 살갑게 대하고 싶지만 성격 탓에 그러지 못한다. 데릴사위로 보냈다는 그 친척의 말은 50점짜리 답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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