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문사 송충이
금요일 아침, 불길한 전화가 왔다. 며칠 전부터 감정이 쌓인 상대였다. 그는 다짜고짜 화를 냈다. 예산 편성 논리부터 시비를 걸었다. 결국은 답답해서 이야기를 못 하겠으니 계장을 바꾸라고 했다. 문제는 나보다 계급도 낮고 나이도 어린 직원이었다. 물론 그전에 나도 실수를 했었다. 예산 요구서의 숫자를 틀려서다. 핑계를 댈 수도 있겠지만 결론은 내 잘못이다. 그런다고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 싶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자존심을 살리자니 당장 불이익을 받을 것 같았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지적당한 부분은 수정해 다시 보냈지만 떨어진 자존심을 회복할 방법은 마땅히 없었다. 화장실에서 분노의 칫솔질을 하고 있는데, 그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조금만 더 보충하면 될 것 같다고 좀 전에 짜증을 내서 죄송하다고 했다. 사과를 받긴 했지만 앙금까지 풀린 것은 아니었다.
다음 날도 멍하니 있으면 그 목소리가 떠올랐다. 어쩌다 이런 처지가 됐는지 자괴감이 들었다. 잠도 오지 않았다. 술 생각이 간절했다. 나도 참 단순했다. 할인 받아 산 통닭 네 조각을 안주 삼아 시원한 맥주 두 캔을 마셨더니 잠시 행복해졌다. 그리고 눈이 감겼다.
야식 때문인지 속이 더부룩해 일찍 깼다. 강화도에 가고 싶어졌다. 목포에서는 가기 힘든 곳이어서 예전부터 생각했었다. 관사에서 차로 50분쯤 걸렸다. 날씨는 우중충했다. 유난히 미세먼지도 심했다. 갈 곳도 딱히 정하지 않았다. 북한이 보인다는 평화전망대로 가면서 좋은 곳이 있으면 들를 계획이었다.
강화도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불린다. 이곳도 코로나를 피하지는 못했다. 대부분의 관광지는 문을 닫았다.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어렴풋이 개풍군은 볼 수 있었다. 라디오에서 잡음 섞인 북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즈넉한 곳에서 북한 노래를 들으며 그곳을 바라보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가깝고도 가장 먼 곳이 공존하는 공간 같았다.
다음은 석모도다. 2017년 다리가 연결됐다. 보문사 이정표가 보였다. 검색해 보니 꽤 유명한 절이었다. 다시는 못 올 수도 있어서 안 가면 후회할 것 같았다. 이른 시간인데도 사람이 꽤 많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불교 음악과 불경이 마음을 차분하게 했다. 행사가 있는 듯 경내는 번잡했다. 10시부터 자광 큰스님의 법회가 있다고 했다. 종교를 믿지는 않지만 들으면 좋을 것 같았다. 시간이 조금 남아 절을 둘러봤다. 계단을 오르는데, 내장 터진 송충이 사체가 널려 있었다. 해충이라고는 하지만 살생을 금하는 이곳에서 일부러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심코 내디딘 발걸음에 가장 고통스럽게 죽어 갔을 벌레들이 참 처량했다.
시간이 되자 법회가 열렸다. 큰스님은 법문을 크게 따라 읊으라고 했다. 뒤에서 서성이던 나도 함께 했다. 그 순간 목소리와 함께 내 안에 있던 울분이 토해져 나왔다. 케케묵은 가래가 빠진 기분이었다. 스님 말씀도 좋았지만 그 이유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할 수도 있다. 원효대사도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시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지 않는가! 불교의 기본 사상이라는 연기법과 인연법도 들었다. 나를 만든 것은 조물주가 아니라 부모님의 마음이다. 결국 창조의 근본은 우리 마음이다. 모든 원인을 만들어 내는 요인은 결과에서 나오는 것이니 근원적인 문제는 남이 아니라 자기 탓이라는 것이다. 오랜만에 큰 목소리를 내고 응어리를 비워서인지 허기졌다.
오늘 길에 냉면과 육개장을 파는 곳을 들렸다. 손님들은 짬뽕과 짜장면처럼 갈등을 하며 골랐다. 나는 육개장을 시켰다. 건더기가 푸짐했다. 국물도 칼칼하니 다시 찾고 싶은 집이었다. 배가 부르니 졸음이 몰려왔다. 잠을 쫓아가며 겨우 관사에 도착했다. 샤워를 하고 방에 누우니 극락이 따로 없었다. 정말 오랜만에 깊은 잠에 들었다.
그날 저녁 또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 직원이었다. 또 화를 냈다. 숫자가 틀리다는 것이다. 물론 또 내 잘못이다.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냥 넘긴 것이다. 통상적으로 그렇게 했다. 나는 정중히 사과했다. 그러면서 좋게 말해도 될 것을 왜 그렇게 화를 내냐고 물었다. 그는 또 죄송하다고 했다.
그 다음 날부터 두 번 볼 것을 세 번 보고 계산기도 여러 번 두들겼다. 오탈자가 있는지도 좀 더 자세히 봤다. 회사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보자마자 미안하다고 했다. 예산 철이라 숫자에 너무 예민해져서 그랬다고 했다. 그런다고 그 상처가 온전히 치유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스님 말처럼 모든 원인은 내 탓이다. 요즘 큰스님의 법문을 종종 듣는다. 그러면 마음이 포근해진다. 보문사 송충이처럼 죽고 싶지는 않다. 밟아 죽인 자만 탓할 일은 아니다.
* 송충이가 아니라 매미나방 유충이라고 합니다. 이해를 도우려고 송충이라고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