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함께하는 책은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이다. 한 번을 읽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출근하면서는 가방에 넣어 두고 퇴근해서는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둔다. 한 쪽도 넘기지 못할 때가 많지만 존재만으로도 평안을 얻는다.
글쓰기 카페에 올라온 장강명 작가의 글을 읽고 책을 알게 됐다. 죽은 비유, 젠체하는 용어, 무의미한 단어를 남용하는 글쓰기 초보자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오웰의 글은 화려한 기교는 없었다. 담백해서 읽는 내내 편안했다. 솔직하고 재미있었다. 고향 친구의 비밀 이야기를 듣는 기분도 들었다. 여러 이야기 중에서 버마 경찰로 일하면서 쓴 ‘코끼리를 쏘다’를 여러 번 읽었다.
그는 어느 날 발정난 코끼리가 난동을 부린다는 신고를 받는다. 마을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살인까지 저지른 코끼리는 이미 안정을 찾아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그는 멀쩡한 코끼리를 전혀 쏘고 싶지 않아 조련사를 데려와 상황을 마무리하려 했다. 그러나 2천 명 넘는 군중이 그와 코끼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결국엔 코끼리를 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소총을 들고 있는 그 순간 그는 백인의 동양 지배가 공허하고 부질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무장하지 않은 원주민 군중 앞에 총을 들고 서 있는 백인인 그는 겉보기엔 작품의 주연이었지만, 실은 뒤에 있는 노란 얼굴들의 의지에 이리저리 밀려나는 바보 같은 꼭두각시였던 것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은 이유는 나도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해서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3년 넘게 배를 탔었다. 주로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곡물을 날랐다. 항해는 17일쯤 걸렸다. 열흘이 넘어가면 바닷새만 봐도 반갑다. 선원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것 중 하나는 땅을 밟는 것이다. 육지가 다가올수록 설렌다. 반면 걱정거리도 생긴다. 그것은 선진국에 갈수록 커진다. 정기적으로 받는 항만국 통제 검사 때문이다. 나라마다 해양 환경을 보호하고 선박 안전을 확보하려고 점검을 까다롭게 한다. 특히, 오염 설비와 서류는 더 엄격히 점검한다. 담배 한 보루와 위스키 한 병으로 부조리와 타협하는 점검관이라면 좋으련만 미국은 그것도 통하지 않는다. 점검관은 덩치만으로도 충분히 위압감을 주고 남는다. 기름기록부 한 쪽을 넘길 때마다 간담은 서늘해진다. 기관실 구석구석을 살펴볼 때면 등골은 오싹해진다. 미처 준비해 놓지 못한 게 걸릴까 봐 가슴은 두근거린다. 점검 시간이 길어질수록 밖에 나갈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든다. 지적이라도 당하면 입항 기간 내내 일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과해야만 반나절쯤 땅 냄새를 맡을 기회가 주어진다.
배타는 일을 그만두고 공교롭게도 해양 오염 단속과 점검을 하는 공무원이 됐다. 처음에는 마냥 좋을 줄만 알았다. 한번은 배에 점검을 갔는데, 예전에 같이 일했던 상사가 있었다. 서류를 달라고 정중히 요청했지만 기분이 묘했다. 그분도 그랬을 것이다. 점검을 마치고 내려오는데, 점령관이 된 듯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오글거리는 일이었다.
바다에 기름이 유출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일부러 버리거나, 실수로 흘리는 것이다. 비용과 시간을 아끼려고 폐유를 바다에 푸거나 기름을 흘리고도 신고를 하지 않을 때가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모든 직원들이 행위자를 잡는 데 동원된다. 주변에 정박되어 있었거나 항로를 지나갔으면 조사 대상이 된다. 수십 척의 배를 점검해야 할 때도 있다. 사고 현장에는 반드시 흔적이 남는다. 증거를 없애려고 기름 자국을 지울수록 확실한 물증이 돼 버린다. 범인의 표정에서도 읽힌다. 묘한 떨림이 있어서다. 혐의 선박이 특정되면 기름을 떠서 분석한다. 기름에도 사람처럼 지문이란 게 있어서 행위 선박을 잡는 데 결정적 자료가 된다. 배들이 외국으로 떠나 버려 조사가 한 달을 넘어가기도 한다. 어렵게 행위 선박을 잡을수록 보람은 더 커진다. 외국적 선박이라면 더 그렇다. 바다 환경을 지키는 데 이바지할 뿐만 아니라 어민들은 피해 보상을 받을 수도 있게 돼서다.
만족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점검을 나가는 게 두렵기도 했다. 특별 단속기간이 되면 더 그랬다. 십오 년 전만 해도 바다에 불법으로 기름을 배출하거나 폐기물을 버리는 일이 많았다. 그런 사람들에게 경각심 주려고 일 년에 두 번씩 대대적으로 단속했다. 아침이 되면 두 명씩 조를 짜서 나가는데, 우리 조 선임은 지역에서 악명 높았다. 해박한 법 지식과 독사눈으로 위법 행위를 샅샅이 잡아냈다. 가끔은 사소한 위반 행위도 넘길 수 없었다. 보는 눈이 많아서다. 조별 단속 실적은 매일 과장에게, 취합된 서 실적은 본청에 보고된다. 보이지 않는 그래프가 매일 올라간다. 실적이 없는 날이면 과장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배에 올라가면 잘못된 게 더 많이 보였다. 나는 큰일이 아니면 빨리 점검을 마치고 내려오고 싶었다. 그들에게 내 점검 시간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서다. 나와 다르게 선배는 에누리가 없었다. 회사에서 보면 원칙주의자이고 능력자였지만 적발된 사람 처지에서 보면 냉혈한이었다. 확인서는 내가 받았다. 마음 내키지 않았지만 직업이니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였다.
십 년 전 어느 날, 나는 해양 오염 신고를 받고 현장에 나갔다.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바다의 엷은 유막 신고도 많았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바다는 이미 제 색깔을 찾아가고 있었다. 자세히 봐야 은색 유막이 조금 보였다. 몇 분만 있으면 파도에 잘게 부서져 없어질 듯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누군가 작은 어선을 수리하고 있었다. 정황상 그 배에서 나왔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다가가 보니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평화롭게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좀 지켜보다가 주의나 주고 돌아갈 요량이었다. 그 순간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다. 신고자가 배의 이름을 말했다는 것이다. 그때 나는 오웰이 평화로운 코끼리를 쏜 것처럼 노인을 적발해야 한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신고자, 사무실 직원들이 내가 그러리라 생각하고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적발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커졌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아버지 같았기 때문이다. 고의도 아니고 환경에도 피해가 없었다. 나는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신고자가 배를 정확하게 봤는지 물었다. 그는 동영상까지 찍었다고 했다. 그로써 내가 할 일은 분명해졌다. 적발하지 않고 돌아가면 내게 돌아올 총알도 두려웠다. 결국 한글도 제대로 모르는 노인에게 확인서를 받아야 했다.
조지 오웰은 코끼리를 쏜 사건으로 서구 제국주의의 본질과 모순을 간파할 수 있었다고 했다. 나는 오웰처럼 거창하진 않지만 그 사건으로 단속 공무원으로서의 고뇌와 어려움을 느꼈다. 법을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하고. 집행해야 하는지 고민해보는 계기도 되었다. ‘코끼리를 쏘다’를 읽을 때마다 그 백발 노인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