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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Jul 11. 2020

월정사 숲길 여행

선제길을 걸으며.

토요일(2020. 7. 4.) 6시, 전날 급하게 마신 술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몸도 찌뿌둥해 그냥 누워있고 싶어졌다. 구석을 뒹굴다 문득 언제 기회가 다시 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오늘은 오래전부터 그리던 대산 가려 날이었다.


작년 이맘때, 나무와 걷기를 좋아하는 글쓰기 선생님의 기행문을 보고 알게 됐다. 으면 읽을수록 마음은 그곳으로 향했다. 목포에서는 쉽게 갈 수 없었지만 올해 인천으로 발령이 나면서 편이 달라졌다. 격주로 관사에서 보내는 주말은 시간이 자유로운 데다가 거리도 훨씬 가까워다. 요 며칠 회사 일로 머릿골이 아팠던 내게 숲 여행을 선물하고 싶서 잡은 혼자만의 계획이었다.


얼굴에 물만 묻히고 가방을 챙겼다. 남자 둘만 사는 살림이어서 준비하고 말 것도 없었다. 수건, 견과류 두 봉지, 생수, 커피 두 병뿐이었다. 목적지까지는 차로 두 시간 반이 걸렸다. 이른 시간인데도 간간히 길이 막혔다. 처음 가는 길이어서 지루하지 않았다. 출근할 때는 라디오에서 코로나와 정치 뉴스만 들렸는데, 좋은 팝송과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나왔다. 흥미로운 사연의 결말이 나오려는 순간, 터널이 나왔다. 게다가 길다. 처음에는 잡음이 섞여 들리더니 중간쯤 가니 알아들을 수도 없었다. 진행자가 시간을 끌었는지 결과는 다행히 들을 수 . 사소한 것에도 행복해질 수 있는 게 여행의 묘미다.  


평창 국도 들어서자 창문을 내렸다. 한적한 산골이었다. 좋은 향기가 다. 공기가 이렇게 좋을 수 있나 싶었다. 순간 어제 과장님을 태운다고 부랴부랴 방향제(페브리즈)를 엄청 뿌려 댔던 게 생각났다. 아무래도 자연에서 날 수 있는 냄새는 아닌 것 같았다.


10분쯤 더 달려 월정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길 안내판을 보니 지명이 조금 낯설었다. 카페에 들어가 선생님 글을 확인해 보니 상원사에서 홍천군 내면 분소(목맥동)까지 17킬로미터를 걸었다고 되어 있었다. 공원 관계자는 거기는 당일치기로 힘들다며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나 걸으라고 했다. 이 도 쉽게 보지 말고 김밥, 간식, 등산화 같은 것을 잘 챙기라고 했다. 먹을 것을 사 오지 않은 게 후회됐다. 아침도 안 먹어서다. 매점에서 컵라면을 팔긴 했지만 몸과 마음을 치유하러 온 이곳에서까지 인스턴트 음식을 먹기는 싫었다.



등산화로 갈아 신고 2킬로미터쯤 되는 전나무 숲부터 걸었다. 수령이 80년 다는 한아름 나무들이 길가로 빼곡했다. 한참 걷는 선선한 바람에 실려 오는 진한  코끝을 매혹했다. 강하지만 자극적이지 않았다. 까 그 향이었다. 연에서 이런 향기가 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 페브리즈도 이곳을 다녀 가고 나서 만들지 않았을까 싶었다. 


다람쥐들 뭔가 바라는 눈치로 내 주위를 열심히 오갔다. 나도 굶은 데다 견과류도 내 몫만 있어 살필 처지가 안 됐다. 먹이를 주면 안 된다는 블로그 글도 생각이 났다.  커다란 나무마다 '쉼 없이 달려온 나에게 선물합니다. 온전한 휴식을', '지금이 가장 젊고 아름다운 순간입니다.'란 팻말이 걸려있었다. 지하철이나 화장실에서 숲에 읽는 느낌은 확연히 달랐다. 혀 상투적이지 않고 가슴에 확 와 닿았다.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9킬로미터 숲길을 걸었다. 불교 화엄경에서 나오는 선제 동자에서 유래해 선길이라고 불린다. 선제 동자는 지혜를 구하려고 천하를 돌아다니다 53명의 현인을 만나 결국 깨달음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길을 걷는 이들도 한줄기 지혜의 빛을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뜻에서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숲으로 들어 갈수록 늑했다. 7월 초순인데도 찬 기운이 느껴졌다. 길을 따라 이어지는 계곡물은 걷는 내내 지루하지 않게 경쾌한 백색 소음을 들려줬다. 모진 세월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아름이나 되는 전나무는 그 둘레만큼이나 위풍당당했다. 커다란 나무는 작은 바람에도 조금씩은 흔들거렸다. 동해 바다를 옮겨 놓은 듯한 파란 하늘이 강한 햇살과 어우러져 나뭇잎 사이로 반짝였다. 그 흔들거림에 햇볕은 작은 나무, 풀까지 이르렀다. 생존을 하려고 경쟁하면서도 조금씩은 양보해야 함께 살 수 있다는 지혜를 숲은 알고 있는 듯했다.


한 시쯤 넘어서 계곡 바위에 앉자 잠시 쉬었다. 시간만 있다면 낮잠을 자면 좋을 듯했다. 달달한 커피와 견과류 한 봉지를 곁들여 먹었다. 생각보다 허기지지는 않았다. 히려 몸이 가벼워 좋았다.


걷다 보니 화전민들이 예전에 궜다는 밭이 나왔다. 누군가 감자를 많이 심었다. 전기 울타리가 있는데도 멧돼지가 파다. 전기의 세기가 동물의 식욕을 이기지 못한 듯했다.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려면 반은 내 것이 아니려니 하는 게 편할 듯했다.

축지법을 쓴 듯 지루하지 않게 상원사에 도착했다. 잘 보전된 숲길과 투명한 계곡물을 보며 자연은 인간에게서 멀어져야 하고, 인간은 자연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그 절충점을 찾아 공존하는 게 코로나로 위기에 처한 인류의 숙제일 것이다.


상원사에 도착해 월정사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다람쥐들이 또 나타났다. 어쩌면 동물에게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지도 조금은 나아졌다. 내려가면 맛있는 식사를 할 계획이었다. 다 주기는 아까워 견과류 반은 내가 먹고 반은 줬다. 어찌나 맛있게 먹던지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오후 3시가 되어서야 산채 돌솥 비빔밥으로 식사를 했다. 한 입 끄게 떠서 넣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황홀했다. 생 최고의 비빔밥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김치와 산나물 반찬 8가지가 나오는데 하나같이 정갈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자연의 맛이었다. 내가 챙겨간 최고의 반찬 한 몫했다. 바로 시장(배고픔)이다.


늦은 점심을 먹으니 나른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잠시 눈을 부쳤다. 좋은 공기 마시고, 파란 하늘 보고, 깨끗한 소리 듣고 배부르니 신선이 따로 없었다. 오는 길은 조금 더 막혔다. 라디오를 틀었더니 얼마 전 고인이 된 녹색평론 김종철 선생님 이야기가 나온다. 글쓰기 선생님 추천으로 녹색평론 선집을 읽었었다.

김 선생님은 심각한 생태 위기 속에서 과학 기술 만능주의와 전통적인 진보 사상의 한계를 지적하며, 산업문명을 넘어설 수 있는 ‘생명의 문화’를 재건해야 하고 농본(農本) 주의자로 소농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다람쥐에게 먹이를 줬던 행동이 부끄러다. 내가 선행이라고 여겼던 일이 그 동물을 무력하게 만드는 악행이 될 수도 있어서다. 내가 준 음식을 받아먹은 그 다람쥐는 평생 사람의 음식을 구걸하는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선생님이 강조하신 생명의 문화는 인간이 자연 함께해야 하는데 그 방법을 아직 몰랐던 것 같다.


그다음 날 후유증이 바로 나타났다. 계곡의 물소리가 환청으로 들리고 자주 가던 문학산은 그리 초라해 보일 수가 없다. 다시 한번 그곳에 다면 1박 2일로 글쓰기 선생님이 걸었던 그 길 가고 싶다. 밤하늘의 별도 보고 싶다. 맛있는 도시락도 챙겨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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