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 다닌 지 20년이 다 돼가지만 월요일 아침은 언제나 버겁다. 그날(7.20.)도 그랬다. 열어 봐야 할 문서만 수십 개에다 여기저기서 해달라는 자료도 많았다. 과장님에게 보고할 자료부터 챙기고 급한 일을 처리했더니 오전은 금방 지나갔다. 점심먹고 나서야 여유가 생겼다. 산책하려고 회사를 나섰다.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며 스마트폰을 열었다. 언제 봐도 기분 좋은 '브런치(글쓰기 사이트)' 알림이 떴다. 순간 '라이킷(페이스북의 '좋아요'와 같은 기능)'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적표의 순위를 확인하듯 조심스레 알림을 열었다. 브런치 한식 문화 공모전 담당자였다. '제안하기' 버튼을 활성화해 달라는 댓글이었다. 다음 날이 공모전 발표였다. 입상이 안 됐다면 이런 부탁할 이유가 없었다. 회사로 발걸음을 돌렸다. '제안하기'가 뭔지 잘 몰라서다. 검색해서 겨우 고치고 집사람에게 자랑했다. 이제 정말 작가가 됐다고 허풍도 떨었다. 아내는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상금은 얼마냐고 물었다.
사실, 발표를 엄청 기다렸다. 글에 많은 정성을 기울였을뿐더러 호응도 좋아서다. 공모전 안내 글을 보고 '어머니의 육개장'이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내가 다니던 글쓰기 반 글감도 '음식'이었다. 보통 주제를 받으면 며칠 동안한 줄도 써 나가지 못할 때가 많다. 이번 글은 달랐다. 금요일 집에 내려오는 버스에서 4시간만에 초고를 완성했다. 막힘 없이 술술 써졌다. 가장 잘 아는 내용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어머니에게 전화로 육개장 만드는 법도 물었다. 어머니는 육개장 만드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며 그냥 사 먹으라고 했다.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객지에서 혼자 생활하는 아들에게 따뜻한 육개장을 한 그릇을 먹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전해졌다.
글이 완성되자 아내와 중학교 1학년 아들에게 보여줬다. 무뚝뚝한 아들도 잘 썼다고 했다. 띄어쓰기와 비문을 고쳐서 글쓰기 반 카페에 올렸다. 글벗들의 반응도 좋았다. 댓글이 하나도 안 달릴 때가 많았는데, 이 글에는 여러 개 달렸다. 글쓰기 수업에서도 큰 지적이 없었다. 며칠 후 중학교 국어 선생님인 글벗이 내 글을 수업 자료로 쓰고 싶다고 했다. 기대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공모전에 글을 내고도 여러 번을 고쳤다. 어디서, 언제, 어떤 기분으로 보느냐에 따라 고칠 부분이 계속 나왔다. 그만큼 정성을 기울인 내 글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했다.
몇 시간 후 공모전 당선 안내 메일이 왔다. 장려상이었다. 살짝 아쉬운 감도 있었다. 그래도 글쓰기를 배운 지 2년 만에 받는 큰상이었다. 거기다가 상금까지 받는다. 빨리 다음날이 되길 바랐다. 공식 발표가 되면 글벗들과 직원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내 글을 많은 사람이 볼 것 같아 흥분됐다. 발표만 되면 유명 작가가 될 것만 같았다.
다음날 결과를 보려고 브런치에 수십 번 들어갔다. 발표는 오후 1시가 넘어서야 났다. 글쓰기 반 카톡방에 알렸더니 글벗들이 축하 댓글을 많이 달아줬다. 거기서 끝이었다. 엄청 올라갈 것 같았던 글 조회수는 100회가 겨우 넘었다.
한 브런치 작가가 공모전 결과를 평가한 글을 보고 마음을 다잡았다. 글을 잘 쓰시는 분이었는데, 이번 공모전에서 낙선한 것 같았다. '이번 공모전 대상과 최우수작품을 읽어보니, 우수상과 장려상, 특별상은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라는 글이었다. 심사를 어떻게 했는지 글 수준이 낮다는 것이었다. 읽고 나서 기분이 나쁘기보다는 여기저기 상 받았다고 자랑한 게 창피해졌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단지 일상을 남기고 싶어서다. 가족들과의 추억, 회사에서의 일상과 같은 모든 것들이 글감이 된다. 브런치 작가들의 글을 읽다 보면 내 글이 초라해질 때가 많다. 과연 발행을 눌러도 될까 싶을 때도 있다. 어떻게 하다 보니 구독자도 스무 명이 넘었다. 일기 같이 쓴 글을 여러 사람과 함께 공유한다는 게 창피하기도 하다. 한비야는 "글쓰기는 철공을 갈아서 바늘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지칠 정도로 너무나 더디지만 애를 쓰는 만큼 만드시 좋아진다"라고 했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나면 라이킷 알림과 댓글이 기다려진다. 그 힘으로 글을 쓰기도 한다. 잘 쓰는 것은 어렵지만 꾸준히 쓰는 것은 노력만 하면 된다. 언제가는 내 글도 '바늘'이 될 것이다. 지금처럼만 꾸준히 쓴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