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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Aug 02. 2020

나는 그놈과 산다.

 한여름 밤, 기러기 아빠와 모기의 처절한 싸움 이야기

나는 골방에 산다. 그리고 그놈과 산다. 올해 초 다시 인천으로 발령이 나면서부터다. 관사는 ㅇ대학교 주변 빌라촌에 있는 5층 아파트 한 동이다. 두 명이 한집을 쓰는데, 룸메이트가 된 직장 동료가 형이어서 나는 자연스레 작은방에 짐을 풀었다. 집은 일 년 전쯤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하고 엘이디(LED)등으로 바꿔서 예전에 살 때보다는 훨씬 산뜻했다. 그렇다고 지은 지 20년 되어가는 세월까지 숨길수는 없었다.


집구석구석에는 곰팡이가 슬었다. 특히, 화장실이 그랬다. 집안 곳곳에는 먼지가 가득했고, 담배 피우는 중년 남자 특유의 숨길 수 없는 냄새도 배어 있었다. 방충망은 살짝이라도 누르면 터질 것만 같았다. 대부분 이 년쯤 살아서 집 고치는 데 인색하다. 나 역시 그랬다.


잠자리가 바뀌어서 며칠간은 설잤다.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 옆집 개 짖는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보름쯤 지나자 새벽 늦게 들어오는 동료의 소리도 못들을 만큼 깊은 잠에 빠졌들었다. 그 소소한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놈이 나타나면서 부터다.


6월 초순이 되자 한두 마리씩 보이기 시작했다. 깊은 잠에 들어 있다가도 윙윙거리는 소리가 나면 눈이 살포시 떠졌다. 온 신경이 그곳에 집중된다. 점점 다가온다. 얼굴에 앉는 촉감이 느껴진다. 내 빰을 내가 후려갈긴다. 속도는 빨라야 하고, 그놈은 죽어야 하나, 내가 조금은 덜 아파야 한다. 손바닥에 작은 촉감이 느껴진다. 다시 행복해진다. 그놈의 피인지 내 피인지는 모르지만 빨간 액체까지 묻어있다면 더욱 그렇다.


매번 성공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불을 켜야 할 때도 있다. 이 요물들은 내 행동을 예측이라도 하는 듯하다. 스위치를 찾으려고 일어나는 순간부터 숨기 시작한다. 어리숙하고 게으른 놈은 하얀 벽지에 조용히 붙어 있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어두운 곳을 찾아 숨는다. 조그만 방에서 튀어봤자다. 창문을 닫고 있을 만한 곳에 모기약을 집중적으로 뿌린다. 내 소심하면서도 잔인한 복수다.


7월 중순이 되자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 놈들이 무리를 지어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날씨도 더워져 창문을 계속 닫아 놓을 수도 없었다. 선풍기 바람이 모기를 쫓는 데 좋긴 했지만 밀폐된 공간에서 틀고 자면 죽는다는 괴담을 어려서부터 많이 들어 괜히 불안했다. 결국 모기장을 사기로 했다. 그 놈들에게 복수할 생각을 하니 주문하면서부터 행복했다. 내 이산화탄소와 땀 냄새를 맡고도 쳐다만 봐야 하니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물건은 그 다음 날 도착했다. 딱 1인용 크기였다. 모기장을 치고 나니 어린 시절 생각도 나고 캠핑 온 기분도 들었다. 창문을 활짝 여니 한여름이지만 시원한 바람도 간간히 들어왔다. 미리 샀으면 좋았겠다 하면서 잠이 들었다. 새벽 두 시쯤이었다. 윙윙거리는 모깃소리가 입체적으로 들린다. 모기들이 냄새는 나고 들어가지는 못하니 방법을 찾으려고 계속 날아다니는 것이었다. 핸드폰 불로 모기장을 비췄다. 다섯 마리가 앉아 있었다. 결국 다시 불을 켤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 날 방충망부터 손 봤다. 생각대로 빈틈이 많았다. 스카치테이프와 화장지로 구멍이란 구멍은 다 막았다. 그렇다고 그 놈들이 못 들어오지는 않겠지만 하는 데 까진 해야 했다.


나는 또 적응을 해서 두세 마리의 날갯짓쯤에는 깨어나지 않게 됐다. 가끔 모기장에 발이 닿아 있는 틈새를 노려 피를 빨아먹는 지혜로운 놈과 빈틈을 노려 모기장으로 들어와 만찬을 하려다 죽어가는 용감한 놈들만 아니라면 말이다.


오늘(7. 31.)은 아침에 출근을 하려는데, 천장에 모기 한 마리가 보였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그냥 놔두기로 했다. 나는 다음 주 일주일간 휴가여서 목포에 내려온다. 그놈은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수명이 1, 2개월밖에 안 되는 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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