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로 찾은 자존감
나를 찾아준 행복한 글쓰기
입사한 지 이 년쯤 지나 일주일 교육을 받게 됐다. 각지에 떨어져 있던 동기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여들었다. 우리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술잔을 나누며 회포를 풀었다. 배우러 온 게 아니라 회사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풀러 온 것 같았다.
교육 마지막 날, 교육생들이 돌아가며 과제를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평가를 받는 것도 아니어서 부담 없는 자리였다. 조금씩 내 순서가 다가왔다. 두근거림은 어쩔 수 없었다. 매일 나가 노느라 준비도 부족했다. 그렇다고 크게 걱정한 것도 아니었다. 말하는 것을 좋아해 발표도 잘할 줄 알았다. 대학 때는 연극을 해서 남 앞에 서는 걸 즐기는 줄 알았다. 10여 년 전, 그때까지는 그랬었다.
발표 자료가 스크린을 환하게 비췄다. 내 머릿속은 순간 구렁텅이로 빠져 들었다. 첫마디부터 헝클어졌다. 교수님과 교육생, 특히 동기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심장은 터질 것만 같았다. 나는 이미 무대에서 대사를 잃어버린 배우가 돼버렸다. 발표에 큰 관심이 없던 이들이 나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쟤가 저렇게 말을 못했었나?' 하는 표정 같았다. 인생에서 가장 잊고 싶은 5분은 그렇게 속절없이 지나갔다. 그리고 긴 시간 감내해야 할 마음의 병이 생겨 버렸다.
회의에 참석하는 게 두려웠다. 크고 작고를 따지지 않았다. 발표하려고 나서면 예전 그 눈빛이 떠 올랐다. 말이 조금이라도 꼬이면 모두가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마냥 피할 수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그런 기회는 더 많아졌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회의가 있으면 할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토씨 하나 빼지 않고 적어 나갔다. 그리고 반복해서 읽고 외웠다. 그래야 겨우 내 뜻을 전달할 수 있었다. 순간은 모면할 수 있었지만 해결책은 아니었다. 한번은 전 직원이 모인 가운데 청장님에게 과 대표로 건의 사항을 말하게 됐다. 시나리오를 잘 적고 외워서 초반에는 술술 풀리는 듯했다. 그러다 내용이 흐트러져 버렸다. 말이 꼬이며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그런 일이 반복될수록 내 자존감은 수렁으로 빠져 들었다.
그래서 배운 것이 스피치였다. 발성 연습을 하고 말하는 기술을 익혔다. 수업 시간에 영화 '킹스 스피치'를 봤다. 영국의 왕이 된 조지 6세 이야기였다. 새로운 지도자를 원하는 국민 앞에서 그는 말더듬이라는 단점을 이겨내고 명연설을 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달변가는 타고 난 게 아니라 많은 준비와 노력으로 만들어진 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남들 앞에서 말하는 재미도 느꼈다. 두려움도 조금씩 사라졌다. 그렇다고 병이 완전히 나은 건 아니었다.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수학 공식만 외워서는 복잡하게 꼬인 문제를 풀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텔레비전 인문학 프로그램에 나오는 말 잘하는 사람들을 눈여겨봤다. 그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글 쓰는 작가였다. 사고의 폭을 넓히고 내 뜻을 잘 전달하려면 글쓰기만 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 쓰는 데 두려움도 적었다. 회사에서 공문서와 보도 자료를 꾸준히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상사와 동료들로부터 나름 잘 쓴다고 인정도 받았다. 그 착각도 말하기처럼 오래가지 않았다.
작년부터 ㅁ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글쓰기를 배웠다. 수업은 수강생들이 매주 한 편씩 쓴 글을 선생님과 함께 고쳐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처음 썼던 글을 지금 읽다 보면 웃음만 난다. 조사는 물론이고 '한 잔'과 '한잔'의 의미도 몰랐으니 수준이 오죽했겠는가. 선생님은 "잘 쓰자면 문법은 물론이고 내가 다룰 문장의 성질도 제대로 알아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잘못된 문장을 쓰면 창피할 정도로 나무란다. 단체 카톡방에서도 띄어쓰기를 지적한다. 그 질책을 받은 만큼 내 글 맷집은 강해지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는 화요일 저녁이 되면, 나는 글감을 찾아 떠나는 항해자가 된다. 목적지는 어린 시절 막걸리 심부름을 하던 고향 마을이나, 청년 시절 배를 타며 외로움에 사무쳐 별을 바라보던 적도가 된다. 때로는 코로나가 퍼져 가는 현재의 도시가 되기도 한다. 갈 곳이 정해지면 해도를 그리듯 차근차근 글을 써 나간다.
농무에 둘러싸인 것처럼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할 때도 있다. 한 문장 쓰는 데 며칠이 걸리기도 한다. 오랜 기억을 끄집어내야 하면 더 그렇다. 산책하거나 운전하면서도 고민한다. 밥을 먹거나 자기 전에도 그래야 한다. 쓰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글은 머리가 아니라 엉덩이가 쓴다고 했던가? 시간이 지나면 안개는 걷히고 해가 뜨듯 토요일쯤이면 글은 모양새를 갖춰 간다. 수업에서 얼굴이 화끈거리지 않으려면 마감인 월요일 오전까지는 계속 고쳐야 한다. 보는 장소나 방법을 달리하면 틀린 글이 튀어나온다. 다음날 보면 더 좋은 문장이 떠오르기도 한다. 보면 볼수록 글은 더 좋아진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한 편이 완성된다. 글을 쓰면서 처음으로 창작의 희열을 느꼈다. 누군가 칭찬해주고 호응해 준다면 그 기분은 배가된다. 특히, 아내와 아들이 해 준다면 더 그렇다.
글쓰기를 배우고 1년 넘게 매주 한 편씩 글을 썼다. 쓰면 쓸수록 글에 힘이 생기는 게 느껴진다. 올해는 글쓰기 공모전에서 입상도 했다. 어머니의 음식을 주제로 한 글이었다. 글을 쓰며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고 눈물을 머금기도 했다. 연락도 자주 안 하던 여동생들에게 상 탔다는 걸 자랑했다. 사실 어머니를 오해했던 감정을 풀고 음식에 담긴 사랑을 공감하고 싶은 게 컸다. 동생들은 가문의 영광이라며 다 같이 기뻐해 줬다. 그 순간은 마치 내가 유명 작가라도 된 기분이었다.
글을 쓰고 나서 내 생각은 더 단단해지고 깊어졌다. 마감일에 맞춰 어떻게든 글을 써냈다. 그러면서 하면 된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남 앞에서 말만 하려면 심장이 벌렁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리던 증세는 확연히 나아졌다. 지금도 어버버 할 때가 많지만 예전처럼 그 상처를 아파하거나 두려워 하진 않는다.
일상을 글로 써가며 내 삶을 정리해 본다. 어린 시절 잊혀 가는 추억을 끄집어내거나 잘못한 일을 반성하며 나 다움을 찾으려 노력한다. 글을 쓰려면 넓고 깊게 생각해야 한다. 남이 되어 보기도 하고 다른 방법은 없었는지 고민도 해 본다. 그러다 보면 타인과의 오해가 풀리기도 한다. 내 안에 응어리졌던 화가 사라지는 건 덤이다. 삶을 가꾸는 데 글쓰기만 한 것이 없다. 자존감을 찾는 데도 마찬가지다. 글쓰기로 얻는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