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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Aug 15. 2020

짬뽕에 미치다.

최고의 짬뽕을 찾았다. 잊혀 가던 추억도 함께.  

세월이 흐르면 많은 기억이 아련해다. 런데 쉽게 잊히지 않는 추억 하나가 있다.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그 잔상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는다. 


36년 전, 7살에 초등학교 들어갔다. 십 리를 걸어 으니, 공부보다는 학교를 오가는 게 더 큰 일이었다. 꽃샘추위가 물러가고 따뜻한 봄기운이 돌던 어느 날이었다. 집에 가 길에 만난 귀만이 자기 집에 가자고 했다. 그곳은 면소재지에 하나밖에 없 중국집이었다.


우리는 탁자가 대여섯 개 있던 식당 구석에 앉았다. 친구 엄마는 난로에 올려져 있 주전자에서 따뜻한 물부터  따라 주었다. 그리고는 녹색 그릇에 짜장면을 담아 내주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짜장 면을 정성을 다해 버무렸다. 서투른 젓가락질로 한 입 가득 넣고 오물거다. 구수하면서도 감칠맛이 났다. 담백하면서 달콤했다. 샛노란 단무지는 새콤함으로 그 맛을 더했다. 한 그릇 다 비우니 온 몸이 따뜻해졌다. 이보다 행복할 순 없었다. 입 주위에 갈색 꽃이 피어 웃음까지 주니 말이다.


그 뒤로 귀만이를 많이 기다렸다. 소원대로 몇 번을 더 가긴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만이 부모님도 장사하는  친구를 계속 데려오는 게 탐탁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다가 몇 달 뒤, 전학까지 가버렸다. 내게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하고 말이다. 그 뒤로도 짜장면은 졸업식이 돼야 먹을 수 있는 귀하면서도 항상 기다려지는 음식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고민이 시작됐다. 짬뽕 맛을 알게 되면서다. 내 고향 정읍에는 유난히 짬뽕 집이 많았다. 바지락 같은 해산물을 가득 넣고 신선한 채소로 맛을 낸 시원하면서도 매콤한 국물은 조금씩 나를 빠져들게 했다. 그러다가 선택이 완전히 기울어진 때가 왔다.


대학에 들어가면 서다. 졸업하 배를 타야 해서 전교생이 1학년 때부터 의무적으로 기숙사 생활을 다. 규율이 엄 데다 1학년 때는 선배들 눈치도 봐야 해서 주로 동아리 방에 숨어서 술을 마셨다.  없고 배고픈 시절이었다. 라면을 끓이고 남은 수프를 안주 삼아 소주 댓 병을 마시곤 했다.


금요일 오후가 되면 외출을 나가는데, 주로 찾는 곳 중에 하나가 중국집이었다. 친구들 대부분 짬뽕을 시켰다. 식사도 해결될뿐더러 훌륭한 안주감도 되고 전날 술까지 마셨다면 해장까지 할 수 있어서다. 아무리 많이 마셨어도 짬뽕 한 그릇 비워 내면 숙취가 풀다. 한 가지 단점도 있었다. 여름에는 하얀 제복을 입는데, 국물이 튀기면 그 날은 옥상에서 별 보는 날이었다. 대학 시절 주말이 기다려지는 이유 중 하나는 허기진 영혼을 달려주는 짬뽕 때문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3년 넘게 배를 탔다. 가끔씩 중국집을 긴 했지만 예전 같지는 않았다. 돈을 벌고 나서 입맛이 고급스러워졌다고 해야 할까! 짬뽕은 더 이상 안주가 되지 못했다. 거기다 40대가  속에서 거부했다. 저녁으로 짜장면이나 짬뽕을 먹으면 밤새 보대꼈다. 어떨 때는 점심에 먹어도 다. 그렇다고 사랑이 완전히 식은 것 아니었다.


출장이나 여행 가면 빼놓지 않고 찾는 게 짬뽕 맛집이었다. 그리고 대부분 후회하기 일쑤였다. 예전 그 맛은 기억 속에나 남은 듯했다. 내 입맛과 속이 변했는데 식당 탓만 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을 찾았다. 집사람이 려간 우리 집 근처 중국집었다. 가게 앞에는 갓 벗겨 놓은 양파가 고무 대야 한가득 담겨 있었다. 택배로 온 아이스박스는 통영에서 보내온 해산물 같았다. 왠지 재료는 신선할 것 같았다. 가게 깔끔했다. 외벽이 투명창으로 되어 있어서 바깥 풍경이 시원하게 들어왔다.


몇 분 뒤 음식이 나왔다. 보기만 해도 걸쭉해 보이는 빨간 국물이 하얀 그릇, 초록색 면과 조화를 이다. 면은 부추로 만들어서 그렇다고 다. 국물을 한 숟갈 떠서 맛다. 얼큰하면서 개운다. 많이 맵지도 자극적이지 않다. 속이 후련해다. 면은 잘 익혀서 부드럽다. 직접 만들어서 그런 것 같다. 여러 종류의 해산물 중에서도 풍성하게 들어간 미더덕이 인상적이다. 씹으면 뜨거운 국물 바다의 향기를 내뿜으며 터진다. 식감도 좋고 긴장감재미까지 준다. 처음 뜰 때는 '아! 이런 맛이', 중간쯤 먹다 보면 '내가 찾던 맛이었어', 마지막 면을 먹고 나서는 '다시 찾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가 내 속이 보대끼지도 않았다.


그 이후로 내가 발령이 났을 때 송별식과 아내 모임을 그 집에서 했다. 맛집을 소개하고 같이 먹었던 사람들이 만족해하면 참 행복한 일이다. 그 집에서도 그랬다. 대학 친구들과 귀만이가 목포에 온다면 그 집에 데려가고 싶다. 그리고 소주 한잔을 기울이고 싶다. 운 날이면 더 생각나는 짬뽕  그릇 비우왠지 그 시절로 돌아갈 것만 같다.              

 

그 중국집에서 딸, 딸 친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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