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깊은 바다 Sep 23. 2020

44번째 여름을 보내며

내 인생 44번째 여름은 또 그렇게 지나갔다. 밤새 돌던 선풍기는 밀려난 지 오래고 이제는 이불이 있어야 잘 수 있는 계절이 되어 버렸다. 지나고 보니 견딜 만했지만, 그때는 그놈들 때문에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 고역이었다. 


이번 여름은 관사 골방에서 지냈다. 올해 인천으로 발령이 나면서 방을 배정받았는데, 룸메이트가 형이다 보니 나는 자연스레 작은방에 짐을 풀었다. 집은 일 년 전쯤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하고 엘이디(LED) 등으로 바꿔서 예전보다는 훨씬 산뜻했다. 그렇다고 20년 되어가는 세월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집 구석구석 곰팡이가 슬었는데, 욕실은 유달리 심했다. 집 안 곳곳에는 먼지가 가득했다. 담배 피우는 중년 남자의 숨길 수 없는 냄새도 배어 있었다. 방충망은 살짝이라도 누르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놈들이 들어올 만한 틈도 여러 군데 보였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년쯤 살다 떠날 곳에 내 돈을 쓰기도 애매했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그놈들이 한두 마리 나타났다. 깊은 잠에 들었다가도 윙윙거리는 소리가 나면 살포시 눈이 떠졌다. 온 신경이 집중됐다. 점점 다가와서 얼굴에 앉았다. 내 뺨을 내가 후려갈겼다. 속도는 빨라야 하고, 그놈은 죽어야 하나, 내가 조금은 덜 아파야 했다. 손바닥에 작은 촉감이 느껴지면 흐뭇해졌다. 빨간 피까지 묻어 있다면 더욱더 그랬다.


매번 성공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때는 불을 켜야 했다. 이 요물들은 내 행동을 예측이라도 하는 듯했다. 어리숙하고 게으른 놈은 하얀 벽지에 붙어 있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구석으로 숨었다. 조그만 방에서 튀어 봤자였다. 창문을 닫고 있을 만한 곳에 모기약을 집중적으로 뿌렸다.


7월 중순이 되자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놈들이 무리 지어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날씨는 더 더워져 창문을 닫아 놓을 수도 없었다. 선풍기 바람이 모기를 쫓는 데 좋긴 했지만 밀폐된 곳에서 틀고 자면 죽는다는 괴담을 어려서부터 들어 괜히 불안했다. 결국, 모기장을 샀다. 먹이를 앞에 두고도 밖에서 쳐다만 봐야 할 그놈들을 생각하니 주문하면서부터 통쾌했다.


물건은 다음 날 도착했다. 모기장을 치니 어린 시절 생각도 나고 캠핑 온 기본도 들었다. 창문을 활짝 여니 한여름이지만 시원한 바람도 간간이 들어왔다. 미리 샀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잠이 들었다. 새벽 두 시쯤이었다. 그놈들 소리가 입체적으로 들렸다. 모기장 안으로 들어오려고 주변을 계속 날아다니는 것이었다. 휴대전화로 모기장을 비춰보니 다섯 마리가 앉아 있었다. 결국 다시 불을 켤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 날 방충망부터 손봤다. 스카치테이프와 화장지로 구멍이란 구멍은 다 막았다. 나는 적응해서 두세 마리의 날갯짓쯤에는 잠에서 깨어나지 않게 됐다. 가끔 모기장과 닿아 있는 몸을 노리는 지혜로운 놈과 빈틈을 노려 모기장 안으로 들어오는 용감한 놈만 없다면 말이다.


날씨가 선선해지면서 그놈들은 자연스레 사라져 갔다. 내년 여름이 되면 다시 나타나겠지만 올해처럼 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 올여름 코로나 19가 확산하여 많은 사람이 고통 받고 있는데, 모기와 싸운 것을 글로 쓰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44번째 여름, 그래도 참을 만했다. 


* 7월에 쓴 글을 수정하여 다시 올렸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짬뽕에 미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