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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산책 Aug 09. 2020

당신이 내 이야기를 듣고 웃을 때

그게 뭐라고 난 또 그렇게 좋은지

토요일 아침, 빵을 꺼내다가 에어프라이어에 손을 데었다. 수돗물에 손을 대고 열기를 식힌다.

- 뭐해?

- 에어프라이어에 손을 데었어.

신랑이 지퍼백에 얼음을 담고 수건을 찾아 가지고 온다. 그가 이렇게 챙겨주는 것이 좋다.

- 열기를 빼줘야 해.

그가 지퍼백과 수건을 건넨다.     


며칠 전 동료 모임에서 지인이 손목 위쪽에 커다란 습윤밴드를 붙이고 나타났다. 무슨 일인지 물었다.

집에서 부침개를 부쳐 먹었어. 반죽을 프라이팬 가까이 가져가서 넣는 것이 보통이잖아. 그런데 신랑은 프라이팬을 반죽 근처로 가지고 오더라. 그래서 옆에 있던 나와 부딪혔지.      


갑자기 그 말이 떠올라 신랑에게 말했다.

- 나는 이렇게 조금 데었어도 아픈데 언니는 얼마나 아팠을까?

그가 씩 웃으며 말한다.

- 그래서 내가 부엌에 안 가는 거야.

- 하하. 말 되네.

예전에 나누었던 이야기까지 꺼내 가며 아침 식탁이 대화로 풍성해진다.     


예전에 엄마는 이런 말을 했다.

- 엄마는 00이 엄마가 부러웠다. 00이 아빠는 00이 엄마가 무슨 말을 해도 "응. 그랬어, 응. 그래서?"

라고 대답해주더라. 젊었을 때 엄마는 그게 그렇게 부럽더라고. 아빠는 대꾸도 해주지 않았으니까.     


신랑도 예전에는 '대답 없는 너'였다. 하고 싶은 말을 한가득 신랑 앞에 풀어내면 ‘대답 없는 너’가 되곤 했다. 심지어 지루한 듯 하품을 하기도 하고. 그럼 나는 지금 뭐하러 이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나 싶어서 말수를 줄이던 때도 있었다.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이런 이야기가 화제가 되어 각자 본인의 신랑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을 때 우리 신랑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하니 다들 놀라워했다. 전혀 그래 보이지 않는다나?

친구들이여, 신랑이 내 말에 귀 기울여 준지 얼마 되지 않았다오. 그러니 조금만 기다리시오. (친구 둘은 연하와 살고 있다.)

라며 친구들에게 희망을 선물했다.     


나는 신랑이 웃을 때가 참 좋다. 내 보기엔 잘생겼다만 객관적으로 보면 좀 무섭게 생기기도 했다. 예전에는 신랑의 웃음소리를 잘 들어보지 못했다. (그는 개그 프로그램 보는 것도 싫어한다.) 그런데 지금은 잘 웃는다. 심지어 내 이야기를 듣고 웃을 때, 그게 뭐라고 난 또 그렇게 좋은지.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건 정말 좋은 거다. 내 존재가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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