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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산책 Aug 10. 2020

여행, 그 고단함이 주는 낭만에 대하여 2

해외여행 편

Are you a tourist?

‘-list? list로 끝나면 뭔 전문가 아닌가? 여행전문가? 나 전문가 아닌데?’

- No!

- No? Come here.

여기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 190cm는 되어 보이는 무장한 독일 경찰이 따라오란다. 내가 뭘 잘못한 건가?

‘저한테 왜 이러세요.’


그는 내 여권을 달라고 하더니 살핀다. 해외여행을 몇 번 가보지 못해 깨끗한 여권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여행전문가인지 묻더니 이제 알겠지? 도장이 몇 개 없잖니.


그는 어디를 갈 건지, 얼마나 있을 건지를 묻더니 고개를 갸웃거리고 가도 좋다고 말한다.   

  

뭐지? tourist의 뜻을 찾아본다. ‘관광객’

몰려오는 동양인 중에 나를 콕 집어 여행의 기분 느껴보라고 질문해준 것도 모르고 당당히 아니라고 했으니 어이 할꼬. 그는 영어를 어지간히 못하는 동양인으로 나를 이해하고, 가도 좋다고 한 것이다.     


이 일은 생각할 때마다 식은땀이 날 정도로 아찔하게 부끄럽다. 절대 잊지 못하겠지? tourist!     


첫 해외 여행지는 괌이었다. 첫 해외여행인데 무슨 배짱으로 자유여행을 선택했는지. 우리와 같이 여행 다니는 가족이 있고, 그들과 함께 갔다. 신랑은 배려의 아이콘이다.(나쁘게 말하면 오지라퍼) 그는 괌 출국장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함께 온 가족의 짐을 찾아 형에게 건네줬다. 거기에 있는 8명 모두 해외여행 초보. 모두 어딘가 정신이 빠져있고, 이 안에는 리더도, 영어 실력자도 없다. 택시를 타고 호텔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는데 데스크에서 우리 일행(형)에게 전화가 왔다며 건네준다. 엥! 전화가 왔다고?     


받아보니 그는 한국 사람이었고(일단 다행이다.), 형네 가방을 가지고 있단다. 그렇다면 신랑이 건네준 그 가방은 바로 그 사람의 것? 다시 택시를 타고 가방을 교환하러 가야 한다. 멘붕이다. 형수는 짐도 못 알아보냐며 형을 타박하고, 나는 오지랖으로 다른 사람의 가방을 형에게 건네준 신랑에게 눈을 흘긴다. 그리고는 웃음이 난다. 이 이야기는 또 얼마나 재미있게 각색되어 이 가족을 만날 때마다 즐거운 이야깃거리가 될까 하고.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스위스 취리히에서 렌터카를 잃어버린 사건이다. 읽기만 해도 아찔하지 않은가? 차를 잃어버리다니. 한국에서 그는 운전의 달인이었으나 유럽에서는 완전 쫄보가 되어있었다. 도움이 되어 주고자 주차, 주행 등 다양한 정보를 공부해 그에게 읊어주었으나 그에게 그것은 독이 되고 말았다. 반면 우리와 함께 간 형은 한국에서 그다지 운전을 좋아하지 않았으나 정보가 별로 없으니 딱지를 끊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운전을 즐겼다고.

모르는 게 약이다.

운전이 스트레스였으니 우리의 관계인들 좋았겠는가? 나에게 선물이라고 생각한 여행은 그와 나의 잦은 의견 충돌로 롤러코스트와 같았다. 마지막 여행지인 취리히에서 주차할 때도 이제 막 롤러코스트의 밑바닥을 찍고 다시 상승하기 시작하는 분위기였다. 저녁을 위해 장을 보고 주차한 후 숙소에 들어갔다. 몸도 마음도 지친 나는 침대에 누워 ‘이 여행은 나에게 무엇인가?’를 숙고하고 있을 때 그가 들어와 말했다.


- 차가 없어졌어.

- 진짜? 

농담하는 거 같지 않았다. 실없는 농담을 가끔 하긴 했지만 그도 나만큼 지쳐있었기 때문에 이건 진짜다.   

  

나는 주섬주섬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우린 차를 타고 같이 왔고, 차가 있어야 할 자리에 다른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다행히 풀 보험을 들어 놨지만 그 순간 그것은 위안이 되지 않았다. 이야기의 서두에서 밝혔다시피 나는 ‘tourist’도 모르는 영어 실력자(?)가 아닌가? 신랑은 절망의 눈빛으로 나를 보았고, 나는 가까운 바에 들어가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그 바의 사장은 ‘안됐네’하는 표정을 짓고는 가게 문을 닫더니 어디론가 가버렸다. 우리는 주차 칸 옆 주택의 초인종을 누르고 도움을 청했다. 친절한 스위스인이 경찰서에 전화해 주었지만 전화로는 접수가 안된다는 말과 함께 행운을 빌어주고 집으로 들어갔다.      


바로 그때 경찰차가 지나갔다. 순찰 중인지 우리 주변을 천천히 돌고 있었다. 신랑은 나를 보지도 않고 바로 경찰차로 달려가 말했다.

My car miss!

‘여보, 수동태로 말해야지.’라는 생각이 이 와중에도 드는 건 내가 너무 한 거지?     

그래도 경찰은 신랑 말을 알아듣고, 다른 길에 주차했을 수도 있으니 더 찾아보고 없으면 경찰서로 오라고 했다. 이 나라 불친절한 거 맞지?

마지막으로 근처 베트남 식당에 들어가 도움을 청했다. 그녀는 우리 차가 세워져 있던 곳으로 와서 진지한 얼굴로 함께 걱정해주었다.      


그때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온 형이 신랑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왔다. 그런데 웃고 있다. 왠지. 왠지 모르게 예감이 좋다. 이야기를 듣고 온 신랑도 표정이 풀어져서 나를 불렀다. 

- 00아, 찾았어.

나는 베트남 아주머니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그에게 다가갔다.


차는 바로 한 칸 더 옆 블록에 세워져 있었다. 경찰 아저씨의 말이 맞았던 것이다.


그러니 이 일은 또 얼마나 우리에게 추억(?)이 되었겠는가?

다음 날 아침 아이들이 앞장서서 걸어갔고, 차 옆에 선 순간 말했다.

- 애들아, 움직이지 마. 이 역사적인 공간과 차를 사진으로 남겨야겠어.

그렇게 사진을 찍었고,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숨겨둔 곶감 꺼내 먹듯 이야기를 나눈다.     


그때 우리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해외여행의 경험이 별로 없던 상태에서 먼 곳에 갔고, 그에게는 운전이, 나에게는 영어가 부담을 주었다. 그로 인해 서로 부딪혔고, 또 그것이 화살이 되어 우리의 여유를 앗아갔다.     


그는 이제 이렇게 말한다.

- 00아, 나 이제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때 짜증 내서 미안해. 이번에는 여유 있게 운전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 나도 미안해. 나를 위해 간 건데. 당신에겐 숙제 같았겠네. 이제 나는 원을 풀었으니 어디 가자고 안 할게.


하지만 그는 방학이 다가오면 말한다.

- 우리 어디 안 가?

- 응. 여보. 안 가.     


여행은 참 고단하다. 그 고단함도 즐길 준비가 되어있을 때 여행을 떠나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돌아와 보면, 당시에 즐기지 못했더라도 이렇게 재미있는 추억이 되어 있다. 그와 내가 그리고 아이들이 함께 보낸 시간과 장소가 오롯이 우리의 기억에 남아있고, 시시때때로 꺼내보는 즐거움이 있다. 여행, 그 고단함이 주는 낭만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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