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산책 Aug 11. 2020

미안하지만, 당신이 없을 때 파티를 했어

맛있게 먹는 기쁨도 중요해

  신혼 초, 신랑과 나는 둘 다 살림 초보였다. 그는 음식은 응당 여자가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고, 여자는 음식에 대한 기본 소양이 탑재되어 있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지켜보니 음식 만든다고 오래 서 있긴 하나 나오는 음식은 별거 없었다. 신랑은 나를 요리에 소질 없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여자가 요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면서 ‘소금의 양을 줄여라, 조미료를 넣지 말아라’라는 말을 하곤 했다. 


  아이들에게는 과자를 사주지 않았다. 정 먹고 싶어 할 땐 친환경 제품을 파는 상점에서 사 먹였는데 맛있지 않았다.

  친척 모임이 있을 때였다. 우리 집 아이들은 또래끼리 모여서 과자를 모아놓고 먹으면 걸신들린 사람처럼 집어먹었다. 부끄러울 정도로. 금지된 것이 얼마나 사람을 매혹시키는지. 그런 날이면 아이들은 환상의 맛을 보았던 것이다.


  나도 그다지 과자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금지된 것의 유혹에 넘어가 아이들과 한 팀이 되었다. 신랑이 회식으로 늦게 들어오는 날, 아이들과 함께 과자를 사 먹게 된 것이다. 아이들과 나는 그 날을 '파티'라고 불렀다. 아빠가 회식으로 늦게 오는 날이면 아이들은 

- 엄마, 오늘 파티해요?

라고 묻곤 했다. 파티! 과자와 음료수를 차려 놓고, 음악과 함께 둠칫 둠칫 춤을 추며.


  언제부턴가 신랑도 본인이 없을 때 파티가 열린다는 것과 아이들이 자라서 더 이상 먹는 것에 대해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회식이 있는 날에는 본인이 먼저

- 오늘도 파티 하나?

묻기도 하고, 회식 중에 전화를 걸어서

- 파티 중이야? / 파티는 끝났고?

묻기도 한다.

그는 서서히 과자에 대해 관대해졌고, 요즘엔 부러 파티를 하자며 사 오곤 한다.


  신랑은 좋은 의도를 가지고 통제하려고 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나쁜 것을 먹이고 싶지 않아서, 우리 가족이 건강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지나치면 독이 된다고 하는 게 맞으려나? 맛있게 먹는 기쁨도 나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몇 달 전부터는 요리에 양념 소스를 쓸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가릴 처지가 아니다. 뭐 먹을까가 인생 최대의 고민, 아니 제일 빈번한 고민이니까.

아이들은 엄마 음식이 맛있어졌다며 좋아한다.

- 마트 양념에 엄마의 정성 덕분이다.

신랑이 한마디 한다. 그리고 이제야 요리가 늘고 있다며 나 아닌 소스 칭찬을 한다.


  '진작 이렇게 살면 좋지 않았을까? 내가 요리를 해야 한다면 내 마음대로 하게 두던가, 아니면 당신이 요리를 했다면 좋았을 걸.'


  그렇게 생각하다가 지금도 만족스러우니 좋다.


그런 시기가 있었으니 소스 하나로도 맛있게 먹고, 과자만 있어도 파티가 되는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작가의 이전글 여행, 그 고단함이 주는 낭만에 대하여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